안희환 목회단상

공로의식에 빠진 추한 사람들/ 안희환

안희환2 2008. 4. 8. 16:49

공로의식에 빠진 추한 사람들/ 안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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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을 하는데 어떤 자세와 의식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느냐가 성숙한 신앙인이 되느냐 여전히 어린아이 같은 신앙인이 되느냐를 구분하게 됩니다. 그 구분의 기준이 무엇이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를 말할 수 있겠지만 중요한 것 한 가지가 공로의식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는가 아니면 은혜의식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는가 일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은혜에 대해 많은 강조를 하고 있다는 것을 모를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종교 개혁 속에서도 [오직 은혜]라는 것이 무척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고요. 찬송가 가사 가운데도 은혜를 강조하는 내용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 한다는 말은 교회 안에서 일상적으로 들을 수 있는 말이고요.

 

문제는 은혜라는 말을 참 많이 사용하며 듣고 있지만 은혜란 개념이 의식 속 깊이 파고들지 못한 이들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입으로는 은혜를 말하는데 은연중 마음속에서는 공로를 생각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즉 구원받은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고, 삶속에서의 도우심이 하나님의 은혜이고, 믿음을 지킬 수 있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고, 주님 앞에 충성하며 봉사할 수 있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인데 겉으로 말할 때는 은혜라고 하면서 실제로는 자신의 공로라는 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은혜의식이 아니라 공로의식을 가진 사람들은 그 특징을 분명하게 드러냅니다. 첫째로 누군가가 자신을 알아주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정말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한다면 자신은 빠지고 하나님만 영광을 받게 해야 하는데 그래도 자기가 뭔가 했다고 생각하기에 사람들이 자신을 칭찬해주고 높여주기를 은근히 혹은 노골적으로 기대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섭섭함을 잘 느낍니다. 알아주기를 원하는 마음이 있으니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결과입니다. 어디 다른 사람들이 내가 원하는 만큼 알아주고 칭찬해주고 박수를 쳐줍니까? 원하지 않았다면 그러리라 하겠지만 원하는데 해주지 않으니 섭섭한 마음이 드는 것입니다. 섭섭 마귀의 종이 되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의기소침해지는 것입니다.

 

셋째로 원만과 불평의 종이 되곤 합니다. 섭섭함의 단계에서 그것이 해소되지 않을 때 섭섭함은 상황에 대한 불평과 사람에 대한 원망으로 성장해갑니다. 여기까지 가면 교회 공동체의 사역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수고하고 고생해도 알아주지 않는데 뭐 하러 애를 쓰나 하는 회의가 그 마음을 지배하게 되는 것입니다.

 

넷째로 기고만장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자신이 무언가 대단한 일을 했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을 사람들이 알아줄 경우 신이 난 상태가 되어 우쭐거리게 되는 것입니다. 겉으로 겸손한 척, 안 그런 척 가장할 수는 있지만 속으로 웃음을 지으며 큰 만족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하나님이 아시고 본인도 알 수 있습니다.

 

저는 교회의 중직들이 공로의식에서 벗어나 은혜의식에 사로잡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는데, 하나님께서 도우시지 않았다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는데 왜 자신이 무언가를 성취한 것처럼 건방을 떠는 것입니까? 부족하고 미련한 자신을 사용하여 큰일을 이루게 하신 하나님 앞에 납작 엎드려야 하는 것 아닌가요?

 

공로의식에서 벗어나 은혜의식에 사로잡혀야 하는 이들은 또한 목회자들입니다. 특히 교회가 성장하여 큰 교회가 되면 자신이 섬기는 하나님을 어느새 망각하고 자신이 대단한 능력이 있어서 큰 교회를 이룬 것처럼 거들먹거리며 목에 힘을 주는 이들도 있는데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나의 나 된 것은 내가 아니요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한 바울보다 더 대단한 인물이라도 되는 듯 착각하는 것입니다.

 

큰 교회 목사로서 은퇴를 하는 상황에서 큰 액수의 퇴직금과 상당한 액수의 활동비와 고급승용차와 넓은 주택을 제공해주지 않는다고 섭섭해 하거나 불평하는 목회자가 있다면 그는 은혜의식이 아닌 공로의식에 중독된 삯군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심지어는 대우 문재로 인해 교회에 분란을 일으키고 돈 문제를 가지고 당회에서 줄다리기하는 추태를 보이기도 하는데 그것을 바라보는 주님의 가슴이 찢어지게 아프리란 생각이 듭니다.

 

구원해주신 것이 은혜이고, 불러서 사용해주신 것이 은혜이고, 교회를 성장시켜주신 것이 은혜이고, 교회를 통해 먹고 산 것이 은혜이고, 자녀를 교육시킨 것이 은혜이고, 목사로서 대접받은 것이 은혜인데 어찌하여 마지막 순간에 자신의 공로를 부각시키면서 추한 탐욕을 드러내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은혜의식을 잃어버리고 공로의식에 자신을 내맡긴 삯군들의 줄에 서지 않도록 자기를 쳐서 복종시켜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