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을 하고 말았다/ 안희환

제 자신이 인격자라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지만(자신을 잘 알고 있으니) 그래도 무척 조심하는 게 있는데 바로 욕입니다. 욕을 한다는 것은 제 자신을 더럽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기에 아무리 감정이 격해져도 욕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말하는 사람과 듣는 자의 귀를 지저분하게 만드는 욕을 하느니 벙어리로 사는 게 낫다고 생각할 정도니까 결벽증이란 소리를 들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딱 한번 욕을 했습니다. 보통 학교의 각반마다 뒤에서 노는(?) 친구들이 있는데 보통의 경우 체격이 크기에 다른 친구들에게 위압감을 주곤 합니다. 제가 속한 반에도 그런 친구들이 있었는데 그 중 한 친구가 다른 친구를 문짝에 내던지고 때리려하는 모습을 보고 저도 모르게 욕을 했습니다. 어차피 싸움으로 이기긴 어렵겠지만 시작한 김에 큰 소리를 쳤습니다. 뒤에 앉아있는 친구들을 몽땅 묶어서 힘세다고 약한 애를 괴롭히는 나쁜 놈들이라고 한 것입니다. 다행이 잘 수습되었고 큰 싸움은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고등학생 때 욕을 한 이래로 20년 이상 욕을 하지 않았습니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도 입을 지켰습니다. 사실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저 역시 나름대로 한 성깔 하는 사람이고, 혈기 충만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속으로 미운 마음이 들고 들이받고 싶은 생각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잘 버틴 것이 은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욕을 하고 말았습니다. 자세한 사연을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너무 너무 화가 나는 일이 있었고 분을 참지 못한 저는 대뜸 욕을 해버리고 만 것입니다. 욕을 해놓고 곧 후회했지만 이미 떠나버린 기차입니다. 취소하거나 물릴 수도 없습니다. 그저 가슴이 답답하고 속상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죄송했습니다. 이제 다음날이면 주일(일)이라 설교를 해야 하는데 도저히 설교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욕을 한 입으로 멀쩡하게 서서 설교한다는 것이 가증스럽게 여겨졌습니다.
고민하던 저는 김덕준 목사님(교회 부목사님)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내일 오전 예배 때 설교를 하라고 한 것입니다. 김목사님은 펄쩍 뜁니다. 충분히 준비할 시간을 가지지 못했는데 어떻게 설교하느냐는 것입니다. 이윤덕 목사님(청년 담당 목사님)도 마찬가지 반응이었습니다. 다음에는 박영진 선교사님에게 연락했습니다. 박선교사님은 다음 날 다른 교회에 설교하러 가야해서 어렵다고 했습니다. 명지대학교 겸임교수로 있는 이승문목사님에게 부탁했더니 갑작스러운 부탁이라 설교하기 부담된다며 거절하였습니다.
늦은 시간에 더 이상 연락하기 어려웠던 저는 한 가지 결심을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마음으로 교회에 가서 밤새 기도하기로 한 것입니다. 텅 빈 예배당에 홀로 앉아 기도하는데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속에서 탄식이 흘러나왔습니다. 사랑하는 교인들 앞에 설 자격도 없는 제가 설교해야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타들어갔습니다. 제 설교를 들어야 하는 교인들이 불쌍하게 생각되었고 어디론가 도망가고픈 생각이 가득했습니다.
밤을 새울 생각이었는데 체력이 딸려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은 두 시간 정도 눈을 붙였습니다. 설교하면서 제가 욕을 한 것에 대해 솔직하게 교인들 앞에 고백을 했고 자격 없는 저를 위해 기도해달라고 부탁을 드렸습니다. 사실 사역을 내려놓으려 한 적도 여러 번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기도해도 그만 둬도 좋다는 사인이 없어서 가슴앓이를 했었습니다. 이전에 이런 기도했던 것이 생각납니다. “실수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은 딱 한번 실수하셨습니다. 왜 저를 목사로 만드셨습니까?”
자신의 연약함에 가슴이 미어지는 나날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바라보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뿐입니다. 죄 짓고 회개하면 다냐고 조롱하는 불신자들도 있지만 용서하시고 불쌍히 여겨주시는 주님의 은혜가 없다면 저 같은 사람은 설 자리가 없습니다. 따라서 저는 누가 뭐라 하든지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시고 그래도 바보 같은 인생을 용납해주시는 주님이 좋을 수밖에 없습니다. 장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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