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동 걸리지 않는 자동차/ 안희환

좋은 자동차나 비싼 자동차를 타고 싶다는 생각은 별로 없습니다. 그런 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을 보며 부러워한 적도 없고요. 그러나 적어도 시동이 잘 걸리는 차를 타고 싶다는 생각은 합니다. 어딘가 급하게 가야할 상황에서 시동이 걸리지 않으면 무척 애를 먹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면 발을 동동 구르게 되는데 스트레스를 확실하게 받습니다.
가평으로 집회 인도를 하러 갈 때의 일입니다. 저녁부터 집회기 시작되는지라 점심 식사를 한 후 잠시 있다가 가평으로 출발할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날이 추워진 덕에 제 자동차에 시동이 걸리는 않는 것이었습니다. 9년 된 LPG 자동차인데 날이 갑자기 차가워지면 종종 그렇게 고집부리면서 달리기를 거부하는데 하필 집회를 앞두고 그런 것입니다. 그때 속이 타들어가는 줄 알았습니다.
또 며칠 전의 일입니다. 새벽예배를 가기 위해 집을 나온 후 시동을 켜는데 아무리 자동차키를 돌려도 자동차가 요지부동이었습니다. 부목사인 김덕준 목사님에게 전화를 했더니 본인이 저를 태우러 오든지 대신 새벽기도회를 인도하든지 하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택시 타고 가겠다고 한 후 그렇게 했는데 약간 지각을 했습니다. 집에 갈 때는 찬바람을 맞으며 45분가량을 걸었고요.
다음 날 새벽 자동차는 또 다시 속을 썩였습니다. 전 날 택시비가 상당히 나갔던 저는 돈을 아끼기 위해서 김덕준 목사님에게 전화를 했고 마침 우리 집 근처를 지나가기 전이었기에 차를 얻어 타고 교회가 갈 수가 있었습니다. 기도를 마친 후 타시 그 차를 타고 집으로 갔는데 이전처럼 8시까지 기도시간을 가질 수는 없었습니다.
정말 추운 날, 어두운 시간에, 그것이 시간이 급박한 상황 속에서 움직일 수 없는 자동차를 보며 이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가장 필요한 순간에 아무 짝에도 쓸모없어진 자동차의 모습처럼 인생을 살지는 말아야겠구나 하는 생각 말입니다. 춥지도 않고, 밝은 낮, 그것도 시간이 여유로울 때 시동이 걸리지 않으면 애태우지나 않을 텐데 이건 가장 아쉬운 순간에 굳어버리니 보통 당혹스러운 게 아닙니까? 사람도 그럴 수 있지 않겠는지요?
사람과 사람의 관계 속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이 되어야 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혼자라고 생각하며 고립된 상태로 일생을 살아가도 어려움을 겪지 않는 사람이란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문제는 누군가의 상황이 너무 안 좋고 힘이 드는데 바로 그 순간 함께 있는 제가 그 사람에게 시동 걸리지 않는 자동차마냥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굳어져 있다면 큰일이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자동차가 움직이지 않으면 택시를 타거나 버스를 이용할 수 있지만 사람의 경우 움직여야할 사람, 도와주어야 할 사람이 움직이지 않을 때 얼른 다른 사람을 이용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은 자동차와는 달리 인격을 가지고 있으며 쉽게 대상을 바꿀 수 있는 존재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제 편에서 생각해 보아도 인생의 깜깜한 어둠 속에 떨고 있을 때 정작 힘이 되어야할 사람이 완전히 멈춰진 상태에 있다면 그야말로 갑갑할 것 같습니다.
시동 걸리지 않는 자동차에 대한 이야기를 사람으로 연결하여 말하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분들이라면 그냥 개인적인 작은 경험을 가지고 인생을 되돌아본 자아성찰의 글 한편을 읽었으려니 하고 넘어가주시기를 바랍니다. 아무튼 요점은 이겁니다. 가장 중요하고 절박한 시점에 시동 걸리지 않은 자동차같은 인생을 살아가고 싶진 않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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