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환 설교요약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 약2:1-9(2007. 8. 22 수요예배 설교)

안희환2 2007. 8. 23. 09:25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 약2:1-9(2007. 8. 22 수요예배 설교)


1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너희가 받았으니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

2 만일 너희 회당에 금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 오고 또 더러운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올 때에

3 너희가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를 돌아보아 가로되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 하고 또 가난한 자에게 이르되 너는 거기 섰든지 내 발등상 아래 앉으라 하면

4 너희끼리 서로 구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

5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찌어다 하나님이 세상에 대하여는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아니하셨느냐

6 너희는 도리어 가난한 자를 괄시하였도다 부자는 너희를 압제하며 법정으로 끌고 가지 아니하느냐

7 저희는 너희에게 대하여 일컫는바 그 아름다운 이름을 훼방하지 아니하느냐

8 너희가 만일 경에 기록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한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거니와

9 만일 너희가 외모로 사람을 취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너희를 범죄자로 정하리라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마라”는 제목으로 함께 말씀을 나누고자 한다.


외모란 사람이 가지고 있는 어떤 조건을 말하는 것임.

세상에서는 이런 조건이 큰 영향력을 발휘함.


돈이라고 하는 조건. 돈 많으면 대접받고 살기 좋은 세상.

학력이라고 하는 조건. 학력이 좋으면 아무래도 더 인정을 받음. 연예인. 연대 나왔대. 뭔가 달라 보이는 풍토.

인물도 조건이 됨. 잘 생기거나 예쁜 경우 그것만으로도 인정을 더 받을 수 있음. 남자는 예쁜 여자에게 관대하다고 함.

성격이라고 하는 조건. 싹싹하거나 부드럽거나 인사를 잘 하는 것도 사람받는 조건이 됨. 어떤 사람은 하고 싶어도 잘 안 되기도 함.


그런데 조심할 것. 외모에 따라 사람을 차별해서는 안된다는 것. 상대방이 언제 어떤 사람으로 변화될 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임.


미국의 남북 전쟁이 나기 바로 전 어느 봄날이었다. 한 소년이 일터를 구하다가 오하이오주에 있는 어느 농장을 찾아가게 되었다. 농장 주인은 튼튼하게 생긴 소년의 모습에 만족하여 아무것도 묻지 않고 그 소년을 채용했다. 단지 그 이름이 짐이라는 것밖에는 몰랐다. 짐은 난로에 땔 나무를 장만하고 젖소를 돌보고 이것저것 허드렛일을 하면서 밥은 부엌에서 먹고 잠은 건초 창고에서 잤다. 그 여름이 지나기 전에 짐과 주인의 딸은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러나 돈도 없고 장래도 없다는 이유로 주인에게 거칠게 거절당하자 짐은 조용히 종적을 감추어버렸다.

35년이 지난 후 어느 날이었다. 농장 주인은 창고를 새로 지으려고 헌 건초 창고를 헐다가 그 옛날 자기 집의 하인이었던 짐이 주머니칼로 서까래에 새겨놓은 이름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James A. Garfield라는 이름 밑에 날짜와 함께 그의 예명 짐이 새겨져 있었던 것이다. 이때에 그는 제 20대 미국 대통령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농장 주인의 딸이 얼마다 대단한 사람에게 시집갔는지 모르지만 농장 주인 입장에서는 후회가 막심했을 것이다.


단적인 예이지만 사람은 언제 어떻게 달라질지 모른다. 현재의 모습으로 함부로 대해선 안 되는 것이다.


아무튼 세상에서는 이런 것들에 의해 대접받는 정도가 다르고 그것을 불공평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절대로 고쳐지지는 않을 것임.


그런데 문제는 교회에서조차도 어떤 조건이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오늘 본문은 그것을 분명히 바로잡아 주고 있다.



1.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말라


“1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너희가 받았으니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


1)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말라


성경 말씀은 분명하다.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말라.”

이 말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조건에 따라 사람을 차별하지 말라는 의미임.

조건에 따라 더 잘해주거나 반대로 무시하지 말라는 것임.


2) 왜 그래야 하는가?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너희가 받았으니”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받았기 때문임.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은 구원의 문을 활짝 열어놓음. 죄 문제를 해결하는 것임.

그리고 믿음은 구원의 조건. 믿음이 없이는 구원받지 못함.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 나를 위한 것임을 믿어야만 함.


행위를 내세우는 이는 구원받지 못함. 엡2:8-9.

율법주의자들. 거짓교사들. 행위를 강조. 저주를 받을지어다라는 표현을 쓸 만큼 강한 경고. 갈라디아서.


진정으로 구원받았기에 행위 혹은 열매가 맺히고 자라는 것이지 행위를 통해 구원받는 것이 아님. 오직 믿음이 구원의 길임.


그런데 이렇게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고 할 때 여기에는 세상의 어떤 조건들이 들어가지 않음. 오늘 본문의 표현에 의하면 하나님이 우리의 외모를 보시고 구원하신 것이 아니라는 것임.


돈이 구원의 조건이라면? 구원받을 사람 없음. 이런 것으로 차별하지 않으심.

학력. 

인물.

성격. 다 마찬가지임.


이렇게 차별없이 구원을 받은 우리이기에 하나님의 백성답게 사람을 외모로 차별해서는 안 된다고 오늘 본문에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2. 구체적인 차별의 예-부자와 가난한 자.


“2 만일 너희 회당에 금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 오고 또 더러운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올 때에 3 너희가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를 돌아보아 가로되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 하고 또 가난한 자에게 이르되 너는 거기 섰든지 내 발등상 아래 앉으라 하면”


1) 부자


a. 겉모습


금가락지를 낌. 오늘날 금가락지는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지만 예전에는 쉽게 낄 수 없는 것. 부의 상징.

아름다운 옷을 입음. 옷 역시 마찬가지임. 지금도 비싼 옷들이 있지만 예전에는 옷이 지금보다 더 가치 있음. 옷감이 귀하기에. 오죽하면 사형수의 옷을 가지려할까?


b. 부자에 대한 대우


“돌아보아 가로되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

 

회당에서 생기는 일. 회당은 유대인이 예배드리는 장소.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

돌아보아. 특별히 신경을 쓰는 것임. 왜? 부자니까.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 특별히 금으로 만든 자리라도 있는가? 아님.

성경을 강론하는 사람과 가까운 자리. 앞자리. 오늘 식으로 하면 설교자와 가까운 자리.

(사실 앞자리가 좋음)


2) 가난한 자


a. 겉모습


더러운 옷을 입음. 척 보아도 좋지 않은 옷. 지저분한 옷. 냄새가 나는 옷.

실제로 냄새를 풍기는 사람들이 있음. 이런 사람은 어딜 가도 대접을 받지 못함.


b. 가난한 자에 대한 대우


“너는 거기 섰든지 내 발등상 아래 앉으라 하면”


거기 섰든지. 성경을 강론하는 자와 멀리 떨어진 자리.

내 발등상 아래 앉으라. 발 아래 앉으라는 말. 멸시하는 태도.


3) 우리는 어떤 태도를 보이는가?


쉽지 않은 문제임. 은연중에 우리도 끊임없이 외모로 사람을 대우하는 자세가 달라지기 때문임. 부자라면, 학력이 높으면, 인물이 좋다면, 성경이 마음에 든다면 더 잘해주고 인정해주는데 그 반대라면 제대로 대우해주지 못할 때가 있지 않은가?


만약 그런 모습이 있다면 그것이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것이다.


노숙자 대할 때.

거친 아이들을 대할 때.

정신지체인 사람들을 대할 때.

가난한 이를 대할 때.

우리의 태도는 혹시 달라지지 않는가?



3. 외모로 취하는 것은 죄악임.


오늘 본문에서는 그처럼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것이 명백한 죄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4 너희끼리 서로 구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

“8 너희가 만일 경에 기록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한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거니와 9 만일 너희가 외모로 사람을 취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너희를 범죄자로 정하리라”


1) 외모로 취하는 것은 악한 생각.


그리스도인의 특징. 행동 이상으로 마음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

행동으로 죄를 짓지 않고 마음으로 생각만 해도 그것이 죄인 줄 안다는 것.


예수님이 하신 말씀.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는 이미 마음에 간음하였느니라. 음란함이 관용되는 세상. 소돔과 고모라처럼. 그러나 그것은 심판의 대상일 뿐.

미워하는 자는 이미 살인하였느니라. 가족이든, 교인이든, 친구든, 이웃이든 예수 믿는 사람은 사람을 미워해서는 안 됨.


오늘 본문에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는 것은 악한 생각이라고 분명히 말씀함.


2) 죄를 짓는 것.


사람을 외모로 차별하는 것은 죄를 짓는 것이라고 말씀함.

율법이 범죄자로 규정하는 것임.


율법의 역할. 죄가 무엇인지 분별하게 함. 죄를 죄로 드러나게 함. 그런 율법에 따라 사람을 외모로 차별하는 사람은 범죄자가 되는 것임.


3) 외모로 취하는 것이 왜 죄인가?


율법의 가장 큰 계명을 범하는 것이기 때문에.

가장 큰 계명.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 율법의 핵심 중의 핵심.

특별히 오늘 본문은 이웃 사랑에 집중.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사람은 저마다 자기를 사랑함. 자기를 잘 대해주기를 바람.

여러분은 자신이 차별대우를 받을 때 기분이 좋을까? 좋지 않을 것임. 마음이 상할 것임. 화도 날 것임. 자신이 비참하게 생각될 수도 있음. 그렇다면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는 것은 내가 원하는 대접을 이웃에게 그대로 해주라는 말. 내가 원치 않은 대우를 상대에게도 하지 말라는 말.


그런데 사람을 외모로 차별하는 것은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는 최고의 율법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임. 그러니 큰 죄가 되는 것임.



4. 하나님이 사람 대하시는 방법


“5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찌어다 하나님이 세상에 대하여는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아니하셨느냐”

 

1) 가난한 자를 택하심.


하나님은 부자라고 인정해주시고 가난한 자라고 무시하지 않으심.

오히려 가난한 자를 택하심.


모세를 부르실 때를 생각하면 재미있음. 애굽의 왕자로 즉 부자로 있을 때 부르지 않으시고 광야에서 양을 칠 때 즉 가난할 때 모세를 부르심. 하나님께는 그런 것이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 것임. 그것은 외모이기에. 하나님은 오히려 중심을 보시는 분이시고.


그러면 부자는 쓰임받지 못하는가? 그건 아님.

부자냐 가난하냐는 사실 크게 중요한 것이 아님. 부자든 가난한 자든 그 중심이 중요할 뿐.

아리마대 요셉이나 니고데모 같은 사람들은 자신의 것들로 주님의 장례를 준비함. 가난했다면 그것을 준비할 여력이 되지 않음.


요지는 간단함. 하나님은 가난하다고 차별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


2)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진정한 부가 무엇인지 잘 드러남. 믿음에 부요해야 함.

우리의 삶이 하나님 앞에 내놓을 것을 많이 쌓아둘 때 그것이 진짜 부자인 것임.


부자의 비유. 자기를 향하여 부요하고 하나님께 그렇지 못한 자라는 표현.

어리석은 부자라고 부르심. 돈이 많이 창고에 쌓은 것이 많지만 하나님이 보실 때는 부요한 자가 아닌 것임.


세상적으로 없어보이는 사람도 하나님은 부르셔서 진정한 부요함을 얻게 하신다는 것임.


3) 구원받게 하심.


약속하신 나라. 하나님나라.

유업으로 받는다. 천국에 들어갈 자격을 주시는 것임. 자녀 됨의 권세.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요 1장).


우리가 구원받을 때 돈 가지고 구원받은 것이 아님. 하나님의 은혜일 뿐임.

이 가장 중요한 구원의 문제. 세상에서 가장 급한 구원의 문제. 이것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하나님은 외모로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신 것임.


그리고 우리는 그런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으로서 사람을 외모로 차별하지 않아야 하는 것임.



결론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말라.

외모로 사람을 차별하는 것은 죄악이다.

하나님은 외모로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도 그 하나님을 본받아야 한다.


세종대왕 때에 청렴결백한 정치가로 유명했던 맹사성은 항상 허술한 옷차림의 촌부의 모습을 하고 다녔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를 잘 알아 보지 못했다. 한 번은 성묘차 온양을 다녀오는 길에 비를 만나 용인의 어느 여관에 들게 되었는데, 마침 그 곳에는 영남에서 올라오는 호화로운 선비의 행차가 있었으므로 맹 정승은 방을 얻지 못하고 낭하 한 모퉁이에 쪼그리고 앉아 비를 피하고 있었다.


지루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에 바둑을 좋아하는 선비의 요청으로 대청 마루에 올라 바둑을 두게 되었는데, 서로가 신분을 알 수 없는 초면이르로 상대방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 몰라 망설이다가 맹 촌부가 먼저 제의를 했다. "우리 말할 때 묻는 말에는 마지막에 공을 붙이고 대답 끝에는 당을 붙이기로 하자."고. 그렇게 서로 협약을 하고는 바둑을 시작했다.


맹 정승이 먼저 "어디로 가는공?"하였더니 선비는 "서울로 간당"하고 대답하였다. 관심이 생긴 맹 정승은 다시 묻기를 "무슨 벼슬인공?"하였더니 선비는 "녹사취재 벼슬이당"했다. 그래서 맹 정승은 "내가 힘써 줄공?"하였더니 선비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자네 같은 촌부는 택도 없는 소리당"하고 대답했다.


이렇게 환담을 하다가 선비는 서울로 올라와 고연 녹사취재 벼슬을 얻게 되어 3정승 6판서가 모인 정청으로 신고차 방문을 했다. 6조 판서 앞에서 감히 얼굴을 들지 못하고 쩔쩔매고 있는 선비를 본 맹정승은 "어찌된 일인공?"하고 말을 건냈다. 낯익은 목소리에 선비가 얼굴을 들어 바라보니 금관조복의 좌의정이 바로 그 촌부였다. 전날, 촌부인 줄로만 알고 무례하게 대했던 선비는 정신이 산란해져서 말하기를, "죽어 지어당"하고 맥없이 대답했다. 그 후 이 선비는 맹 정승의 지도로 청백한 관리가 되었다고 한다.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신 하나님. 왕처럼? 아님. 귀족처럼. 아님. 나그네로 나타나심.

나그네를 정성껏 접대한 아브라함.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아브라함이었다면 그러지 않았을 것임.


사랑하는 여러분. 어쩌면 하나님이 우리가 볼 때 아무 것도 아닌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시는지 모른다. 그때 우리가 외모로 사람을 취하는 사람이라면 우리는 우리에게 오는 복을 걷어 차버리는 어리석은 자가 될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목표를 두자. 어떤 교회가 될 것인가 하는 목표. 그 중 하나.

모든 사람이 사랑받는 교회. 모든 사람이 환영받는 교회. 모든 사람이 존귀하게 대접받는 교회. 예수비전교회가 하나님 앞에 그런 교회로 서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