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이의 눈물/안희환
민영이는 간호사가 되어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지금은 임시직이지만 몇 개월 후 정식 직원으로 채용되기로 약속이 되어 있기에 더 즐거운 마음으로 환자를 돌보는 중입니다. 게다가 민영이를 정말 기쁘게 하는 일은 이제 자신이 번 돈으로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무언가 해 드릴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 동안 부모님에게 은혜만 입었지 도움이 되는 일이 없었는데 이제 자신의 힘으로 돈을 벌어 부모님을 섬길 수 있게 된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물론 일이 쉽지는 않습니다. 삼교대 근무인지라 피곤하기도 하고 환자들의 마음을 맞춰주는 것도 만만치가 않습니다. 여러모로 눈치를 보아야 하는 일들도 있고 몸이 피곤해지기도 합니다. 그래도 취업난이 다른 어느 때보다 심한 요즘 이렇게 마음껏 일할 수 있는 삶의 터전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하는 마음으로 민영이는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민영이에게 하늘이 무너지는 듯 한 소식이 들렸습니다. 아버지가 많이 아프시다는 것입니다. 간에 문제가 생겼는데 간경화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간암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의사 선생님이 앞으로 6개월밖에 살 수 없다고 사형선고를 내린 것입니다. 원래 간이라고 하는 것이 미련함의 첨단을 걷는 장기인지라 아프다는 자각증상을 느끼면 이미 수습할 수 없는 단계인 법인데 민영이 아버지가 바로 그런 상태가 되었습니다.
민영이는 아버지 이야기를 하면서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눈가에 눈물이 맺히는 정도가 아니라 굵은 물방울이 뚝뚝 떨어질 만큼 서럽게 울었습니다. 이제야 딸 노릇 좀 할 수 있겠다며 좋아했는데 앞으로 어떻게 하냐며 울고 있는 민영이를 보며 마음이 아팠습니다. 민영이 아버지와 어머니는 오래 전 헤어진 상태이며 민영이는 아버지 손에 자랐기에 그 마음의 아픔이 더욱 클 것인데 저는 그런 민영이를 보며 슬퍼졌습니다.
그 날 저녁 민영이는 밤차를 타고 대전으로 내려갔습니다. 다음 날 민영이는 아버지의 상태가 어떤지 확인한 후 제게 연락을 주기로 했고 저는 민영이의 연락을 기다렸습니다. 오후가 되어도 연락이 없기에 전화를 했는데 받지 않았습니다. 두 번 세 번 전화를 해도 받지 않기에 마음이 쓰였습니다. 잠시 후 제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민영이의 전화번호가 아니었습니다. 실망한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는데 민영이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자신의 휴대폰을 두고 와서 다른 사람 휴대폰으로 연락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민영이에게 아버지의 상태가 어떤지 확인한 후 병문안을 갈까 하고 물었습니다. 민영이는 무척 반가워했습니다. 실은 아버지에게 제 이야기를 했는데 꼭 보고 싶다고 했다며 전해주었습니다. 저는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고 마침 아내가 시간을 낼 수 있기에 3시경 대전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대전에 다녀오려면 하루가 다 가겠지만 그래도 누군가에게 힘이 되어줄 수 있다는 생각에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대전을 향해 가는 도중에 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곧 이어 걷잡을 수 없을 만큼의 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날부터 장마가 시작된다는 말을 듣긴 했어도 설마 했는데 일기예보가 맞은 모양입니다. 큰 비에 이어 안개도 끼기 시작했습니다. 고속도로에 차가 많았던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속도를 제대로 내기가 어려웠는데 앞이 거의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운전하면서 긴장을 풀 수가 없었는데 그 때문에 몸이 피곤해졌는지 눈이 금방 침침해졌습니다.
7시쯤 되어 대전의 충남대학교 병원에 도착하였습니다. 병원 라운지에서 우리 부부를 본 민영이는 반가워서 어쩔 줄을 몰라 합니다. 꿈만 같다고 합니다. 병실이 있는 6층으로 올라가니 민영이의 언니와 형부가 나와서 인사를 합니다. 병실에 들어가니 민영이 아버지께서 반갑게 인사를 하십니다. 민영이 아버지는 키가 크고 잘 생긴 외모에 신사다운 풍모를 지니고 계셨는데 제 아내가 하는 말이 민영이가 꼭 아버지를 닮았다고 합니다. 민영이 아버지의 얼굴은 새까맣게 변해있었습니다.
병실에서 민영이 아버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용기가 될 수 있는 말도 조심스럽게 해드렸습니다. 마지막으로 민영이 아버지를 위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를 해드렸습니다. 좋아하시는 민영이 아버지를 보니 대전까지 내려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는 길이 멀기 때문에 오래 있지 못했고 식사를 대접하겠다는 말씀도 거절해야만 했기에 미안한 마음이 있었지만 힘내시라는 인사 말씀을 드리고 병실을 나왔습니다.
민영이는 아래층까지 배웅해주면서 계속 감사하다는 말을 했습니다. 차를 타고 서울로 오는 중에는 문자를 몇 개나 보내어 감사하다는 말을 했습니다. 아버지도 너무 좋아하셨다며 기뻐하는 민영이의 모습에 저도 기뻤습니다. 문제는 서울로 올라가느라 운전을 하는 중에 몸이 많이 힘들었다는 점인데 피곤해하는 저를 보며 아내는 빨리 면허를 따야겠다고 합니다. 꼭 이럴 때만 면허를 딴다고 말하다가 서울로 되돌아가면 까맣게 잊어버리는 아내의 건망증에 꿀밤을 주고 싶었습니다. 12시경이 되어 집에 도착하였습니다.
다음 날 역시나 장거리 운전을 한 후유증이 나타났습니다. 이상하게도 오랜 시간 운전을 하면 며칠 동안 몸이 많이 아픕니다. 운전하고 제 몸의 체질하고는 상극이라도 되는 것 같습니다. 끙끙대며 하루를 보내고 있는데 민영이기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아버지가 연락해보라고 해서 전화를 했는데 서울에 잘 도착하였는지 확인하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또 한번 제가 내려와 줘서 감사하다며 인사하는 민영이를 보며 역시 사람은 어려울 때 힘이 되어주는 것에 감격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민영이는 일단 직장을 그만둔다고 합니다. 자기가 아버지 곁에서 돌봐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처음으로 얻은 직장을 그만둔다고 하는 것이 무척 서운한 일일 수 있지만 아버지를 저토록 소중하게 생각하는 민영이의 모습에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민영이를 위해서, 그리고 민영이 아버지를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를 드립니다. 부디 저 아름다운 부녀가 행복하게 해달라고... 하나님이 민영이의 고운 눈에서 눈물을 닦아달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