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환사랑이야기

판자촌의 희성이, 외국에 가다 / 안희환

안희환2 2006. 9. 18. 01:04

판자촌의 희성이, 외국에 가다 / 안희환

 

  2006-09-16_PM_01_04_13[1].jpg

  

진희성이라는 아이가 있습니다. 아이라고 하지만 사실 희성이는 이제 아이가 아닙니다. 28살이나 되었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제게는 아이처럼 여겨지는 것이 초등학생 때부터 가르쳐왔던 희성이이기 때문입니다. 아마 어른들이 자신들의 자녀들을 볼 때 이런 마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합니다. 부모들 입장이 더하겠지만 말입니다.


희성이는 제가 살던 판자촌에서 자란 아이입니다. 형으로 희연이가 있고 누나로 미연이가 있습니다. 그 부모님들 역시 잘 알고 있습니다. 어릴 때의 희성이는 말이 별로 없고 착한 아이였습니다. 다만 보통의 착한 아이들이 그러듯이 희성이 역시 한번 고집을 부리면 말리기 어려울 만큼 대단했다는 것이 특이한 점일 것입니다. (착하면 고집이 세다는 공식이 어느 정도는 맞는 것 같습니다).


어려운 가정 형편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가정사에 대해 원망하지도 않고, 곁길로 탈선하여 부모님을 가슴앓이 시키지도 않고, 성실하게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는 희성이를 볼 때마다 기특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공부도 열심히 하였고 교회 생활도 최선을 다하였는데 제가 자란 천막교회(성민교회)를 제가 떠난 후에도 잘 지켜주었습니다.^0^.


그 희성이가 중,고등학교를 졸업하였고 직장에 취직을 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참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품 그대로 성실한 직장인으로 일하는 희성의 모습이 눈에 선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직장생활한지 수년이 흘렀고 이제 희성이는 28살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몇 주 전 저를 찾아왔습니다. 외국에 나가기 전에 인사하러 들린 것입니다.


필리핀으로 가려는 중이었는데 공부도 하고 인생 경험도 쌓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더 깊이 만나는 계기를 삼고 싶어 하기도 했습니다. 비행경비랑 체류 경비는 어떻게 하냐고 했더니 직장 다니면서 모아 놓은 것이 있다고 했습니다. 또 그곳에서도 일을 할 생각이라고 했습니다. 혼자 떠난다는 것이 마음에 걸리기는 하지만 인생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 여기기에 격려를 해주었습니다.


이렇게 희성이를 만난 후 얼마 후에 속상한 소식을 들었습니다. 외국에 갈 때 가지고 가려고 노트북을 하나 마련했는데 그것을 도둑맞았다는 것입니다. 값싼 물건도 아닌데 희성이가 의기소침해 하지 않을까 염려가 되었습니다. 제가 주머니 사정이 좋다면 이럴 때 노트북을 새로 하나 사줄 텐데 그럴 형편도 아니고 말입니다. 현재 제가 쓰는 100만원 짜리 저가형 노트북도 할부가 끝나지 않은 상태이니까요^0^.


그러다가 다시 기쁜 소식을 들었습니다. 희성이의 딱한 소식을 들은 주변 사람이 희성이에게 노트북을 사준 것입니다. 참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사람은 이렇게 돕고 살 때 아름다워지는 것 같습니다. 도와준 사람의 마음도 뿌듯할 것이고 도움을 받은 희성이의 마음에는 감사가 넘칠 테니 서로에게 얼마나 큰 유익입니까?


희성이는 지난 9월 5일에 출국을 하였고 지금은 대한민국 안에 없습니다. 아마 힘들고 고달픔 삶의 과정도 겪어야 하겠지만 어느 곳에서도 자신을 잘 지켜나갈 수 있으리라고 신뢰를 하게 됩니다. 판자촌에서의 불편하고 힘들었던 옛삶들이 오히려 큰 도움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기대도 하게 됩니다.


외로울 때, 서러운 마음이 들 때, 물질의 궁핍함으로 힘겨울 때, 인간관계가 복잡해질 때, 언어가 통하지 않아 고통스러울 때, 고향이 한없이 그리워질 때, 하나님이 희성이를 위로하시고 격려하시고 도와주시고 힘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어차피 한번 사는 인생 그렇게 고생도 하고 새로운 경험도 하면서 살아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큰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희성이 스스로도 자신이 그처럼 복받은 사람임을 기억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