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들 교회에서 다 나가/ 안희환
예전에 십자군 전도대원으로 활동할 때의 일입니다. 한 목사님을 도우면서 지방에서 머물고 있었습니다. 그 목사님은 열정도 있으셨고 어려운 성도님들을 잘 보살피기도 하는 그런 분이셨습니다. 또한 한 청년의 자취방에 얹혀사는 내게도 많은 관심을 보여주시며 잘 돌보아 주셨습니다. 그래서 기쁜 마음으로 전도하는 일에 전념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 교회에는 전임 십자군 전도대원이 열심히 노력한 덕이 교회학교 아이들이 어느 정도 모여 있었습니다. 전임 사역자는 아이들과 축구를 많이 했는데 축구를 좋아하는 아이들이 주로 모여들어 있었습니다. 보통 다른 교회들은 남학생들보다 여학생들이 더 많은데 그 교회는 축구 덕분에 남학생들이 훨씬 더 많았습니다.
당연한 일이지만 그 아이들은 꽤 시끄러웠습니다. 사실 어떤 때는 정신이 하나도 없어서 무언가에 집중하기도 어려웠습니다. 그래도 아이 하나 잘 세워지면 하나님 나라에도 이 세상에도 유익한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주의를 줘가며 참아냈습니다. 그런 면에서 초등학교 선생님들이나 유치원 선생님들은 정말 대단한 분들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입니다. 목사님과 함께 교회에 있는데 아이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아이들은 주의를 준 잠간만 조용할 뿐 계속 떠들어댔습니다. 나는 속으로 조금만 더 있다가 다 돌려보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큰소리가 들렸습니다. “시끄러워. 교회에서 다 나가”. 목사님이 참다못해 화를 내며 소리를 지르신 것입니다.
아이들은 깜짝 놀라서 조용해졌습니다. 순식간에 조용해지긴 했는데 분위기가 어색했습니다. 나 역시 놀란 나머지 할 말을 잊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하나 둘씩 바깥으로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안녕히 계세요라는 인사를 하지 않은 채 말입니다. 아이들을 따라 나가서 위로의 말을 했지만 반응이 시큰둥했습니다.
일단 아이들을 담당하고 있는 나로서는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또 아이들을 담당하고 있는 상황이 아니라 하더라도 저 아이들이 교회를 등지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있었을 것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 아이들은 다음 주부터 교회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학교 앞에서 기다리다가 아이들을 만나보았지만 시원치 않았습니다. 결국 그 아이들을 되돌리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그 일은 내게 목사님에 대해 섭섭해 하는 마음을 가지게 했습니다. 평소 목사님의 삶을 보아왔기에 아이들을 내치려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래도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에 마음이 불편해지는 것입니다. 장년들이었다면 그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에 그런 내 마음은 더 굳어져 갔습니다. 아마 그땐 내 자신이 너무 젊었기에 비판적인 시각만 더 강했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도 변치 않는 생각 하나는 장년이나 아이들이나 하나님 앞에 똑같이 소중한 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들을 소홀히 여기며 괄시하는 풍조를 가진 교회라면 단단히 병든 교회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많은 교회들에서 어린 아이들이 장년들에 비해 홀대를 받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교회의 아이들이 줄어가는 이유는 출산율 감소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목사님에게서 직접 들은 것입니다. 아이들이 소중하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현실적으로 장년들은 당장 교회에 보탬이 되는 반면에 아이들의 경우 지출만 늘어난다는 것입니다. 죄송한 말이지만 그런 사고 역시 병든 생각입니다. 지출이 늘 수 있고 그 때문에 재정적으로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그 아이들은 교회와 나라의 미래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아이들을 소중히 여기지 못하고 그들을 위해 과감하게 투자하지 못한다면 장래 한국 교회에 젊은이들을 찾아보기 힘들 것이고, 결국은 장년들도 감소하고 말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어른들 보다 아이들에게 더 많은 관심과 정성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들의 미래는 창창하며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멋지게 성장할 때 교회와 나라의 미래에 청신호가 켜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목사님이 다른 교회 부흥회를 갔다가 어른들이 예배드리는 곳은 에어컨이 있고 아이들이 예배드리는 곳은 찜통인 것을 보고 책망을 했다고 합니다(책 내용). 아이들 예배드리는 곳에도 에어컨을 달아주든지 아니면 어른들 예배드리는 곳의 에어컨을 떼든지 하라고 말입니다. 그 교회에서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는 모르지만 목사님이 그렇게 책망을 했다는 내용에 내 속이 다 시원해졌습니다.
각 교단들마다 어린이 부흥을 외치고, 교회학교 성장을 위한 각종 프로그램을 개최하지만 교회의 근본적인 의식이 바뀌지 않는 한 한계에 직면하고 말 것입니다. 엄밀히 말해서 프로그램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이들 한 사람 한 사람을 대하는 중심입니다. 사람은 영물이기에 가슴과 가슴으로 느낄 수 있으며 진정 사랑받고 있음을 느낄 때 찾아오고 싶은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려는 교회가 아니라 미리부터 준비하는 교회이길 원합니다. 아이들에게 확실하게 외면당한 후회할 것이 아니라 지금부터 어른 이상으로 아이들에게 비중을 둘 수 있는 교회의 모습이기를 원합니다. 이것이 구체적으로 현실화 되려면 담임목사님과 장로님들로 구성된 당회의 의식 구조 개혁이 가장 필요할 것 같습니다.
장년들 중에서도 사회 혹은 경제적인 비중에 따라 차별을 하는 썩은 모습을 보이곤 하는데 아이들에 대한 생각이야 오죽하겠습니까? 부디 예수님의 시각으로 사람을 바라보고 어린이들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을 존귀하게 대할 수 있기를 고대합니다. 한 사람의 존엄성(특히 이번 강조는 아이들)에 대한 예수님의 시각을 회복하는 것, 그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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