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다리를 못 쓰시는 원어선생님/ 안희환
불편한 몸을 가지고도 놀라운 일을 이루어나가는 사람들을 보면 감동이 됩니다. 몸이 정상적인 사람들이라 해도 쉽지 않은 일을 불편한 몸으로 이루어낸다는 것은 그만큼의 정신력이 있다는 것이고,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과정이 있었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런 분들을 존경하며 그런 분들을 볼 때마다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중에 아람연구원 원장이신 김두연 목사님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내가 처음 김두연 목사님을 만난 것은 5년 정도 전인 것 같습니다. 후배 가운데 채관병 전도사(지금은 목사가 됨)가 있었는데 우리 교회에서 부교역자로 있으면서 월요일마다 공부를 하러 간다고 했습니다. 알고 보니 원어공부에 열심을 내고 있었습니다(지금은 캐나다 유학중).
(학생들이 점심 먹으로 간 사이에 한 컷)
월요일에 진행되는 과목은 히브리어, 희랍어, 라틴어, 독일어였는데 영어로 된 교재로 공부하며 번역도 영어로 하고 있었습니다. 평소 원어에 관심이 있었던 나는 채관병 전도사와 함께 시흥시에 있는 아람연구원에 공부하러 다녔습니다. 그 덕분에 대학 시절에 공부한 후 많이 잊어버렸던 원어에 대한 감각을 조금이라도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내가 김두연 목사님을 보고 놀란 것은 그 몸 때문이었습니다. 김목사님은 두 다리를 다 못쓰는 분이었는데 목발 두 개를 지탱해서 움직이셔야 했고 계단을 오르려면 양쪽에 젊은 사람 둘이서 겨드랑이에 어깨를 끼고 올려주어야 했습니다. 차마 묻지는 못했지만 궂은 날이나 몸에 무리가 가는 날에는 많이 힘들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사용하지 못하는 다리보다 나를 더 놀라게 한 것은 원어실력이었습니다. 어떻게 공부를 했는지 몰라도 히브리어, 희랍에, 라틴어, 독일어를 능숙하게 가르쳤습니다. 그것 뿐이 아니었습니다. 시리아어, 아카디아어, 아람어, 우가릿어 등 다른 고전 언어 등에 대해서도 능숙했으며 원하는 학생들에게 기꺼이 가르쳐주었습니다. 각 원어들 사이의 연관성이나 어원의 뿌리가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설명할 때면 감탄이 일어났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내가 알고 있는 동기나 선후배들 중에서도 김두연목사님에게 원어를 배우고 유학을 간 사람이 많이 있었습니다. 캐나다로, 미국으로, 독일로, 영국으로 유학을 가기 전 많은 학생들이 김두연 목사님에게 원어 훈련을 받았던 것입니다. 이미 박사학위를 받고 돌아와서 강단에 선 사람들도 많이 있었는데 그들 때문에 김두연 목사님의 가르치는 사역은 더욱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현재 아람 연구원은 내가 목회하고 있는 참사랑 교회 안에 있습니다. 워낙 어려운 공부인지라 대규모로 수강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으며 중도에 포기하는 사람들도 많은지라 대형 세미나실이 아니어도 강의가 가능하기에 우리 교회를 공부할 공간으로 제공한 것입니다. 현재 월, 목, 금요일에 수업이 진행되고 있는데 진지하게 수업을 듣는 학생들의 눈이 반짝이는 것을 보노라면 왠지 내 마음이 뿌듯해지곤 합니다.
내가 김두연 목사님을 보면서 마음이 뭉클한 것은 돈 욕심이 없이 인재를 키우겠다는 일념으로 원어를 가르친다는 것입니다. 월, 목, 금요일 3일을 공부해도 수강료는 4만원에 불과합니다. 그것도 사모님이 틈틈이 간식을 사다주시며 저녁이나 점심엔 밥을 해 먹이시기에 남는 돈은 전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평 한 마디 없이 가르치는 것만으로 기뻐하는 김두연 목사님의 모습 속에서 진정한 선생님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두 다리를 못쓰시지만 그 누구보다 건강하신 김두연 목사님께 박수를 보내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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