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사회의 가벼움/ 안희환
어느날 자장이 공자에게 물었습니다. "한마디로 살아가는데 가장 필요한 미덕을 가르쳐 주십시오." 공자는 대답했습니다. "모든 행실의 근본은 참는 것이 제일이다" "어째서 참아야 하는 겁니까?" "천자가 참으면 나라에 해가 없고, 제후가 참으면 땅이 커질 것이고, 벼슬아치가 참으면 그 지위가 올라가고, 형제가 참으면 집이 부귀하고, 부부가 참으면 일생을 같이 해로하고, 벗끼리 참으면 서로 명예를 떨어뜨리지 않고, 자신이 참으면 화와 해가 없다"
자장이 공자에게 다시 물었습니다. "참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공자의 대답했습니다. "천자가 참지 않으면 나라가 빈터로 변하고, 제후가 참지 않으면 몸조차 없어지고, 벼슬아치가 참지 않으면 법에 걸려 죽게 되고, 형제가 참지 않으면 각각 분거하게 되고, 부부가 참지 않으면 자식을 외롭게 하고, 벗끼리 참지 않으면 정의가 멀어지고, 자신이 참지 않으면 근심이 없어지지 않는다"
고대의 이야기라고 흘려듣기에는 너무 중요한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별히 서로가 서로를 참지 못한 채 극단적인 말과 행동을 일삼는 현 사회를 보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너무 가벼운, 너무 조급한, 너무 인내심이 없는, 너무 감정적인, 너무 즉흥적인 세상의 흐름이라고 말한다면 과도한 표현이 될 것인가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사람들은 확실히 참을성이 모자랍니다.
어쩌면 인스턴트 문화에 너무 많이 길들여져서 그렇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돈을 넣고 단추만 누르면 이미 마실 수 있는 차가 나오니 진득하게 물을 끓이고 끓인 물을 찻잔에 붓고 차가 물에 우러나기를 기다리는 게 숨 막히는 것입니다. 햇반이라고 해서 전자렌지에 넣고 약간의 시간만 들이면 밥을 먹을 수 있으니 가마솥에 밥을 하면서 뜸 들이는 긴 시간을 견뎌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인간관계조차도 인스탄트식으로 대한다는 점입니다. 번개라는 말이 있듯이 즉석에서 만나 오랫동안 사귄 사람처럼 친하게 굴고 밀접하게 붙어있다가 다음 순간 전혀 모르는 남남으로 흩어지기도 하는 문화를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심각한 것은 가족 간에도 이런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즉 서로를 향해 오래 참아가며 피차가 다듬어져가기 보다는 손쉬운 이혼을 선택한다는 것입니다.
나는 우리나라의 이혼율이 이렇게까지 높아졌다는 것에 대해 충격을 받고 있습니다. 내가 대학을 다닐 때만 해도 미국의 이혼율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그렇지 않은 우리나라에 대해 자부심을 느꼈었는데 이제는 그 자부심이 수치심으로 바뀌었습니다. 어쩔 수 없는 정황 속에서 이혼한 이들에게는 할 말이 없습니다. 차라리 홀로 되어 덜 고통스러운 것이 나을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지금 이렇게 높은 이혼율은 그 때문만이 아니라는 게 문제입니다.
서로 인내하지 못한 채 당장에 끝장을 보려는 태도는 가정에서만이 아닌 사회 전반에서 보이고 있습니다. 술김에 친구를 찔러 죽인 일도 있었고, 노사간에 너 죽고 나 죽자는 식의 전투적 상황도 자주 보게 되고, 상대를 깊이 대해보기도 전에 상대를 적으로 규정한 채 공격하는 인터넷 문화도 보편적인 현상이고, 심지어는 부모와 자식간에도 서로를 참아내지 못한 채 끔찍한 일을 벌이기도 하는 것입니다.
좀더 무게가 나가는 사회였으면 좋겠습니다.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 사회전반을 지배하고 그것이 우리의 문화로 아예 자리잡아버린다면 이 나라는 소망이 없습니다. 진득하게 생각하고, 무겁게 결단하며, 꾸준하게 실행하고, 차분하게 결과를 기다리는 무거운(?) 사회분위기를 만드는 것은 과연 불가능한 것인가요? 당장에 어떻게 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티끌모아 태산이라고 조금씩 조금씩 사회분위기를 바꾸어나가는 운동이 시급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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