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환의 칼럼

눈먼 한국인이 미국 차관급 고위공직자 되었었다

안희환2 2006. 3. 22. 14:01

실패가 실패자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 안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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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들을 대상으로 한 집회의 강사로 계속 활동하고 있습니다(특권이라 생각함). 그때마다 젊은이들에게 강조하는 것 중 하나는 인생의 과정 속에서 겪게 되는 실패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몇 차례의 실패로 인해 스스로를 실패자로 규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실패가 자신을 실패자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실패자로 규정하는 것이 진짜 실패자가 되게 하는 요인이기 때문입니다.


종종 다음의 예를 듭니다. 누군가가 있는데 999번을 실패했다고 가정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1000번째 일어서더니 성공을 했다고 할 때 그가 실패자인지 혹은 성공자인지를 묻는 것입니다. 그러면 모두가 그 사람이 성공자라고 대답을 합니다. 반대로 또 다른 사람이 있는데 두 번 실패를 하고 넘어진 채 일어서지 못했다면 실패자냐 혹은 성공자냐 하고 묻습니다. 그러면 모두가 실패자라고 대답을 합니다.


이때 나는 젊은이들에게 툭 던지듯이 말합니다. 너희들은 모두 바보가 아니냐고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999번 실패한 사람은 성공자이고 2번 실패한 사람은 성공자이냐고 묻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묻겠다고 하고 똑같은 질문을 합니다. 그러면 같은 대답이 나옴과 동시에 내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이해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실패의 숫자로 따지면 앞의 사람은 뒤의 사람보다 997번을 더 실패한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이 실패했느냐, 혹은 얼마나 많이 넘어졌느냐 하는 것이 아니고 그것으로 인해 주저앉아버렸느냐 아니면 다시 일어섰느냐 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많은 젊은이들이, 그리고 어른들도 한번 혹은 여러 차례의 실패 경험에 기가 질려 맥없이 주저앉아버린다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있는 거대한 가능성을 스스로 소멸시켜버린다는 것입니다.


한 사람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이 사람은 아직 어린 열 살 때 아버지를 잃었습니다. 그 다음해에는 친구들과 축구시합을 하다가 공에 눈을 맞았는데 그만 소경이 되고 말았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사랑하는 아들이 불의의 사고로 소경이 된 것에 충격을 받은 어머니가 화병에 걸리고 2년 후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극심한 고통과 좌절의 순간이 반복적으로 찾아온 것입니다.


그러나 시련은 이것으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너무 힘겨운 나머지 여러 번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던 이 사람에게 또 하나의 큰 시련이 찾아옵니다. 유일하게 남은 혈육이었던 누나가 공장일로 무리를 하다가 과로사를 한 것입니다. 이제 이 사람에게는 일가친척이 아무도 없는 상태가 되었고 아물기도 전에 상처 위해 또 다른 상처가 생긴 채 고통스러워해야 했습니다. 더 이상 세상 속에서 소망을 가질 수 없는 상태가 된 것입니다.


바로 이런 상황 속에서 이 사람은 어느 목사님을 만나게 되었고 그 목사님의 도움으로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신앙 속에서 상처가 치유되고 삶의 용기를 얻은 그는 더 이상 자살에 목을 매지 않았습니다. 가지고 있지 않은 한 두가지가 아닌 이미 가지고 있는 많은 것들에 주목하면서 꿈을 가지고 노력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비록 힘겨운 과정이었지만 예전처럼 자포자기하는 심정은 아니었습니다.


최선을 다해 공부한 그는 연세대학교 교육학과를 차석으로 졸업하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72년도에는 미국 피츠버그 대학으로 유학을 떠났는데 소경인 상태이지만 워낙 열심히 공부한 덕에 3년 반만에 박사학위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노스이스턴 일리노이 대학의 교수로 활동하고 있는 강영우 박사의 일화입니다. 미국의 부시 대통령은 그런 강영우박사를 장애인정책보좌역(차관급)으로 발탁했었습니다.


강영우 박사는 두 아들에게 늘 다음과 같은 좌우명을 가르쳤다고 합니다.  "포기하지 말라, 자신감을 가져라, 긍정적으로 생각하라." 그런 아버지의 교훈 속에서 자란 두 아들은 탁월한 인물들이 되었고 강영우 박사에게 기쁨이 되었습니다. (큰 아들은 하버드 의대를 나오고, 작은 아들은 듀크대학에서 법학박사학위를 받음). 그 아버지의 그 아들들입니다.


만약 강영우 박사가 인생의 고통 속에서 스스로를 실패자로 규정한 채 목숨을 끊었더라면, 설혹 목숨을 끊지 않았더라도 자포자기 속에서 무너진 채 일어나지 못했더라면 지금의 강영우 박사는 없었을 것입니다. 힘들지 않은 것도 아니고 고통스럽지 않은 것도 아니고 수많은 문제들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그런 상황 속에서도 생명이 붙어있는 한 아직 실패자가 아니라 선언하면서 새롭게 도전하는 대한국인이 많이 일어나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