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환여행의추억

경찰에게 사비로 월급 주는 왕 / 안희환

안희환2 2005. 10. 25. 16:03
경찰에게 사비로 월급 주는 왕 / 안희환
말레이시아 기행(2)
 
 
 

▲파항주의 왕이 타던 리무진     © 안희환  

말레이시아에 와서 새로운 것을 많이 보게 되었는데 그중 하나는 왕 제도이다. 말레이시아의 왕 제도는 입헌군주제인 영국을 닮은 모습이 있다. 그 유명한 “군림은 하되 지배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그대로 지키는 것이다. 정치적인 권한을 가지고 통치하는 이는 총리이고 왕은 다만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국민들 위에 자리 잡고 있을 뿐인 것이다.

이런 말레이시아의 제도는 말레이시아의 역사적인 상황에서 그 요인을 찾아볼 수 있다. 말레이시아는 영국의 식민지였고 영국의 식민지에서 벗어난 후에도 영국을 멀리하거나 증오하기보다는 영국의 많은 것들을 차용하였다. 그중 하나가 바로 입헌군주제의 모습인 것이다. 일제의 식민지 생활에서 벗어난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본에 대해 적개심을 가졌던 것과는 다른 양상이다.

그러나 엄밀하게 따져서 말레이시아의 왕 제도의 영국의 제도와는 확실히 다르다. 먼저 영국의 왕은 하나인데 반해 말레이시아는 각 주마다 왕이 있다. 내가 처음에 머문 꾸안탄의 경우 꾸안탄이 속한 지역은 파항주인데 파항주의 왕이 따로 있다. 파항주의 왕은 먼젓번 왕비와 사별하고 두 번째 왕비와 함께 살고 있는데 60살이 넘은 할아버지 왕이다. 파항주 안에서 많은 이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고 있다.
 
▲왕궁 박물관 앞에서

이렇게 파항주에 왕이 있듯이 다른 주에도 왕이 있고 모든 주의 왕들이 5년에 한번 모여서 전체 왕을 뽑는다. 전체 왕의 임기는 5년이며 5년의 임기가 시작되면 말레이시아의 왕궁에 거하다가 5년 임기가 끝난 후 자신의 주로 돌아가서 왕의 역할을 한다. 각 주마다 왕이 있다는 것도, 각 주의 왕들이 모여 말레이시아 전체의 왕을 투표로 뽑는다는 것도, 그 왕의 임기에 제한적인 기한이 있다는 것도 영국에서는 볼 수 없는 일인 것이다.

말레이시아의 왕 제도에는 영국과 다른 또 하나의 독특한 특징이 있다. 그것은 경찰이 정부의 통솔 하에 있는 것이 아니고 왕의 통솔 하에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왕궁 근처에는 경찰이 늘 상주하고 있으며 경찰들은 왕의 친위대 역할을 한다. 무력이라는 측면에서 경찰이 군대에 미치지는 못하겠지만 경찰력을 가진 왕은 상당한 정도의 무력도 갖추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파항주 왕의 두번째 왕비     © 안희환


그렇다면 경찰은 정부의 공복이라 볼 수 없는데 경찰은 공무원도 아니며 정부로부터 월급을 받지 않는 것인가? 그렇다. 경찰들은 무보수로 일하는가? 그렇지 않다. 다른 누군가가 월급을 주는가? 그렇다. 누가 경찰들의 월급을 주는가? 바로 왕이다. 각 주의 왕이든 전체의 왕이든 왕은 엄청난 재력가이고 자신의 사비로 모든 경찰의 월급을 주는 것이다. 영국과는 확실히 다른 말레이시아의 왕 제도인 것이다.

각 지역에 자연적인 재해가 나고 큰 어려움이 닥쳤을 경우에 정부의 고위 관료보다 왕이 먼저 나타나고 국민들은 그런 왕에게 존경과 사랑을 표하기를 머뭇거리지 않는 말레이시아. 확실히 다른 나라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문화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대형 상점 등 큰 건물의 전면에서 찾아오는 모든 이를 따스한 미소로 맞이하는 왕과 왕비의 대형 사진은 말레이시아의 독특한 문화적 산물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