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자꾸 울어댄다/ 안희환
요즘 눈이 계속 안 좋았다. 시야가 흐릿할 때가 많았고 사물을 보는 것이 불편했다. 글씨를 읽는데 작은 글씨는 알아보기가 어려웠다. 숫자들이 겹쳐져 보여서 4자리 숫자가 3자리 내지는 2자리 숫자로 보였다. 덕분에 시간을 보는 데도 애를 먹어야했다. 안경을 맞춘 지 오래 되었기에 눈에 잘 안 맞는가보다 하는 생각을 했다. 그 동안 몸을 피곤하게 굴렸기에 과로 때문에 눈이 침침한가보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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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을 맞추려고 하다가 일단 병원에서 눈 검사를 해보기로 했다. 아내와 함께 강남성심병원으로 갔다. 시력 검사를 하는데 병원에서 렌즈로 시력교정을 해주는데도 왼쪽 눈의 시력이 올라가지 않았다. 의사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더니 정밀 검사를 해보자고 했다. 정밀 검사를 했는데 이상이 나타났다. 화면상 하얗게 나와야 하는 부분이 검게 칠해져 있는 것이었다. 오른쪽 눈이 더 심했다. 그런데도 왼쪽 시력에 더 문제가 생긴 것은 검은 부분이 눈동자 중앙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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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는 내게 겁주려는 것은 아니라며 뇌 검사를 해봐야겠다고 했다. 기계로 눈을 찍었을 때 검은 색이 그렇게 나타나는 것은 뇌종양일 때라고 했다. 생각해보겠다고 했더니 아니란다. 당장 검사를 해보라고 한다. 진료실 밖으로 나와서 아내에게 이야기했다. 강남성심병원에서 뇌 검사를 하지 않고 일단 다른 곳에서 한 번 더 검사하기로 했다. 시립병원이라서 비용이 싸면서도 서울대학교 의료진이라 그래도 신뢰가 가는 보라매병원으로 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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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타고 돌아오는 동안 아내가 눈물을 주르륵 흘린다. 왜 우냐고 했더니 그냥 눈물이 난단다. 우는 아내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짠했다. 집으로 돌아왔는데 집안에서 아내가 또 눈물을 흘린다. 나를 보면 자꾸 눈물이 나온다고 한다. 뇌종양으로 판결난 것도 아니고 설혹 뇌종양이라고 해서 다 위험한 것도 아닌데 너무 우는 아내를 보니 울컥 하고 뭔가가 속에서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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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무렵이 되어 만나기로 했던 시인들 세 분이 나를 찾아왔다. 빵과 커피를 사가지고 왔기에 커피 좋아하는 아내에게 잠간 내려오라고 문자를 보냈다. 아내가 내려왔다. 시인들과 함께 인사를 나눈 것까지는 좋았는데 아내가 사람들 보는 앞에서 또 눈물을 주르륵 흘린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울지 않으려 했는데 내 얼굴을 보는 순간 눈물이 흐른다는 것이다. 놀라서 어쩔 줄 모르는 시인들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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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조카를 봐주느라 함께 나가지 못하고 나와 세 분의 시인들이 함께 밥을 먹으러 갔다. 임병곤 시인님이 날 보고 복이 많다고 한다. 무슨 말인가 했더니 아내가 나를 많이 사랑하고 있으니 복이 아니냐고 했다. 듣고 보니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다. 별 일 아닌 것에도 나를 위해 울어줄 사람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아내의 애틋한 마음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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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실 의사가 뇌종양일 때 이런 현상이 나온다는 말을 했을 때 놀라기는 했지만 금방 마음이 가라앉았다. 아직 뇌종양으로 결정 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또 뇌종양이라고 해서 다 위험한 것도 아니지 않는가? 설혹 최악의 상황이 된다 해도 감사함으로 받아들일 생각이다. 지금까지 최선을 다해 살았고 후회될만한 것은 그다지 떠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마음에 걸리는 것은 아내이다. 아내가 슬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21살에 시집와서 한 남자의 아내로, 두 아이의 엄마로 고생하며 살아왔는데 그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 것은 못 봐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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