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2.04.25 03:10 | 수정 : 2012.04.25 07:15
"학교폭력 실태 알아야 아이들 구할 수 있어요"
A4 용지 6장 빼곡히 메운 고백… 막내 아들은 '일진 연합' 멤버였다
"첫째가 왕따에 시달리다 중학교 졸업하고 (고교에 진학하지 않고) 홈스쿨링을 했어요. 둘째도 왕따당해 대안학교 보냈고요. 셋째는 학교생활 잘한다고 안심했는데 알고보니 얘는 일진(一陣·폭력조직)이에요. 제가 가슴이 미어집니다."
지방도시에 사는 김정식(가명·47)·박영희(가명·45)씨 부부는 대학 졸업 후 낙향해 3남매를 뒀다. 명문대 안 가도 좋으니 건강하고 착하게 자라길 바랐다. 하지만 삶이 느리게 흐르는 중소도시도 학교는 '정글'이었다.
첫째 딸 소미(가명·18)는 초등학교에 입학한 지 1주일 만에 "선생님이 무섭다"고 울상을 지었다. 학교 가기 싫다는 아이와 한 달쯤 아침마다 전쟁을 치르다 담임을 찾아갔다. "우리 반에 한글 못 떼고 들어온 아이가 셋인데 그중 하나가 소미예요. 다른 아이들을 못 쫓아가요."
한글을 뗀 뒤에도 '바보' 딱지는 안 떨어졌다. 억수같이 비가 오는 날, 같은 반 아이가 자기 우산을 우체국에 두고 왔다며 소미더러 가져오라고 했다. "안 가져오면 안 놀아준다"는 위협에 소미는 비를 쫄딱 맞고 남의 우산을 가지러 갔다. 일요일에 다 함께 놀자고 약속한 뒤, 소미만 쏙 빼고 다른 애들은 다른 장소에 모여 놀기도 했다.
왕따를 피하려고 작은 학교로 옮기면 나아질까 싶어 전학도 보내봤지만 아이가 이미 주눅 든 탓인지 같은 일이 또 반복됐다.
소미는 자기 방에 틀어박혀 소설책만 읽었다. 중학생이 된 뒤 책 읽기 좋아하는 친구가 생겼지만 곧 헤어졌다. 중학교 졸업 후 소미는 "더이상 학교에 다니지 않겠다"고 했고, 엄마도 소미의 선택을 말릴 수 없었다. 엄마가 소미에게 관심을 쏟는 사이, 둘째 딸 보미(가명·15)도 왕따에 시달렸다. 억센 아이들이 "전학생(보미) 때문에 스쿨버스가 좁아졌다"고 구박했다. 단짝이 하나 생겼지만, 세력 있는 아이가 보미와 보미 단짝을 번갈아 따돌렸다.
보미는 일반 중학교 대신 대안학교에 갔지만 한 학기 만에 그만두고 또래보다 1년 늦게 일반 중학교에 진학했다.
지방도시에 사는 김정식(가명·47)·박영희(가명·45)씨 부부는 대학 졸업 후 낙향해 3남매를 뒀다. 명문대 안 가도 좋으니 건강하고 착하게 자라길 바랐다. 하지만 삶이 느리게 흐르는 중소도시도 학교는 '정글'이었다.
첫째 딸 소미(가명·18)는 초등학교에 입학한 지 1주일 만에 "선생님이 무섭다"고 울상을 지었다. 학교 가기 싫다는 아이와 한 달쯤 아침마다 전쟁을 치르다 담임을 찾아갔다. "우리 반에 한글 못 떼고 들어온 아이가 셋인데 그중 하나가 소미예요. 다른 아이들을 못 쫓아가요."
한글을 뗀 뒤에도 '바보' 딱지는 안 떨어졌다. 억수같이 비가 오는 날, 같은 반 아이가 자기 우산을 우체국에 두고 왔다며 소미더러 가져오라고 했다. "안 가져오면 안 놀아준다"는 위협에 소미는 비를 쫄딱 맞고 남의 우산을 가지러 갔다. 일요일에 다 함께 놀자고 약속한 뒤, 소미만 쏙 빼고 다른 애들은 다른 장소에 모여 놀기도 했다.
왕따를 피하려고 작은 학교로 옮기면 나아질까 싶어 전학도 보내봤지만 아이가 이미 주눅 든 탓인지 같은 일이 또 반복됐다.
소미는 자기 방에 틀어박혀 소설책만 읽었다. 중학생이 된 뒤 책 읽기 좋아하는 친구가 생겼지만 곧 헤어졌다. 중학교 졸업 후 소미는 "더이상 학교에 다니지 않겠다"고 했고, 엄마도 소미의 선택을 말릴 수 없었다. 엄마가 소미에게 관심을 쏟는 사이, 둘째 딸 보미(가명·15)도 왕따에 시달렸다. 억센 아이들이 "전학생(보미) 때문에 스쿨버스가 좁아졌다"고 구박했다. 단짝이 하나 생겼지만, 세력 있는 아이가 보미와 보미 단짝을 번갈아 따돌렸다.
보미는 일반 중학교 대신 대안학교에 갔지만 한 학기 만에 그만두고 또래보다 1년 늦게 일반 중학교에 진학했다.
- 23일 점심시간 한 중학교에서 학생들이 담을 넘어 학교 밖으로 나가고 있다.(왼쪽)잠시 후 이들은 학교 생활담당 교사에게 적발돼 다시 교내로 들어왔다.
"축구 하고 온다"고 나간 아이가 흙투성이로 돌아와 24시간 곯아떨어져 잤다. 씻을 때 보면 팔다리에 멍이 잔뜩 들어 있었다. 처음엔 '한창 클 나이니까 그럴 수 있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중학교 1학년 2학기부터 말투며, 눈빛이며, 딱 꼬집어 말할 수 없는 무엇인가가 엄마 박씨의 신경을 건드렸다.
"'너희 학교에도 일진이 있니?' 했더니 '일진 아무나 되는 거 아니야' 하는데, 일진이 대단하다는 말투였다."
전문가들이 일러준 일진의 특징이 영수에게서 그대로 나타났다.
아빠가 영수 손을 붙잡고 학교폭력 전문기관에 찾아갔다. 전문가가 영수를 상담한 뒤 "그동안 친구들과 어떻게 놀았는지 적어보라"고 종이를 줬다. 영수는 그 자리에서 A4 용지 여섯 장을 메웠다. 엄마 박씨는 "그걸 읽어보고 내 가슴이 무너졌다"고 했다. 영수는 자기 학교뿐 아니라 인근 더 큰 학교까지 망라하는 '일진 연합' 멤버였다.
"1학년 1학기 때 같은 학년 일진이 싸움을 걸었대요. 초등학교 때 왕따당한 기억을 떠올리고, 이번에 지면 또 당할까 봐 각오를 단단히 하고 맞붙었대요. 그 아이를 이긴 것까지는 좋은데, 그 집 형이 동네에서 제일 센 '일진 중의 일진'이더래요. 자칫하면 큰일 날 뻔했는데 오히려 그 일을 계기로 일진은 물론 그 집 형하고도 친해졌대요. 그러고 나서 패싸움한 얘기, 자전거 훔친 얘기, 모여서 술 먹고 담배 피운 얘기, 누구 집에 모여서 포르노 본 얘기…."
그날 밤 열린 가족회의 때 첫째 딸이 눈물을 흘렸다. "너는 누나들이 괴로워하는 거 못 봤니? 일진은 사람이 할 일이 아니야."
부모가 영수에게 "내일 당장 서열이 가장 높은 아이에게 찾아가 '나는 빠지겠다'고 말하라"고 했다. 그 뒤 날마다 아침저녁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 주고 데리러 가는 게 3주째다.
엄마 박씨는 "아이 셋 키우기가 너무 힘들어 한때 우울증이 왔다"고 했다.
부부는 최근 막내 아들이 다니는 학교에 찾아갔다. "우리 애가 일진"이라고 해도 교사는 "우리 학교엔 그런 거 없다"고 했다. 아들이 적어준 명단을 내밀어도 "설마 얘들이 신문에 나는 그 일진이겠느냐"고 했다. 교사는 이튿날 아들을 불러 "네 말 때문에 여러 사람이 곤욕 치를 수 있다"고 했다. 엄마 박씨는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대구 중학생이 자살하고 영주 중학생이 자살했어요. 그런데도 학교는 변하지 않아요. 일진도, 피해자도 모두 우리 아이들이에요. (그들이 어떻게 학교생활을 하는지) 알아야 그 아이들을 구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