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환 특별설교

하나님이 주시는 비전과 그 성취 창13:14-18

안희환2 2012. 4. 18. 05:12

하나님이 주시는 비전과 그 성취 창13:14-18

 

14.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15.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16. 내가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17.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두루 다녀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18.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주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더라

 

웨슬러는 40년 동안 목회 하면서 일년에 25만 마일을 여행했고, 1년에 4000번의 설교를 했고, 400권의 책을 남겼고, 10개국 말을 했다. 83세가 되었어도 15시간 글을 썼고 86세 때 기력이 약해져서 하루에 2번 이상 설교할 수 없다고 부끄러워했다. 86세 때 5시 반에 일어나서 내가 5시 반에 일어나다니 하고 게으른 자기를 한탄했다고 한다.

 

유명한 주경가 윌리암 바클레이는 이런 편지를 받아 본 적이 있다고 간증한다.

"당신은 83세가 되었는데도 신앙이 계속 자라고 있소. 당신은 또 하나의 갈렙이오. 당신의 노년은 사라져 없어지는 것이 아니었고, 더 큰 업적을 위한 전진이었으며 천천히 산을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정상으로 오르고 있소. 노쇠가 아니라 모험과 성취로 가득 찼소. 당신의 청년의 시기는 홀로 서 있었으며 중년에는 홀로 걸었으며 노년에는 홀로 올라가고 있소. 얼마나 멋있는 삶입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이들 모두를 그처럼 힘차게 살도록, 활력을 가지고 살도록 만든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그것을 한 단어로 정리한다면 비전이라고 할 것이다. 이들에겐 비전이 있었기에 생명이 끝날 때까지 달음질할 목표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원하기는 여러분 모두가 비전의 사람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한다.

 

오늘 본문의 아브람이 또한 비전의 사람이었으며 그의 삶을 함께 생각해보면서 우리 모두 비전의 사람으로 세워지는 축복의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오늘의 본문으로 돌아오자. 오늘 본문은 낙심 가운데 있는 아브람에게서부터 시작한다.

 

 

1. 낙심 가운데 찾아오시는 하나님

 

1) 낙심 중에 있는 아브람

 

그러면 아브람은 무엇 때문에 낙심 가운데 있는가?

 

(1) 아브람과 롯의 종들 사이에 생긴 다툼

 

첫째로 아브람의 종들과 롯의 종들 사이에 생긴 다툼 때문이다.

 

“1 아브람이 애굽에서 나올새 그와 그 아내와 모든 소유며 롯도 함께하여 남방으로 올라가니 2 아브람에게 육축과 은금이 풍부하였더라 3 그가 남방에서부터 발행하여 벧엘에 이르며 벧엘과 아이 사이 전에 장막 쳤던 곳에 이르니 4 그가 처음으로 단을 쌓은 곳이라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5 아브람의 일행 롯도 양과 소와 장막이 있으므로 6 그 땅이 그들의 동거함을 용납지 못하였으니 곧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 없었음이라 7 그러므로 아브람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고 또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도 그 땅에 거하였는지라”(13)

 

(2) 아브람에게 양보할 줄 모르는 롯의 태도

 

아브람은 무엇 때문에 낙심 가운데 있는가? 둘째로 아브람에게 양보할 줄 모르는 롯의 태도 때문이다.

 

“8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골육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말자 9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10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들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는고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13)

 

(3) 아브람을 떠나가 버린 롯

 

아브람은 무엇 때문에 낙심 가운데 있는가? 셋째로 아브람을 떠나가 버린 롯 때문이다.

 

“11 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들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 12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거하였고 롯은 평지 성읍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13)

 

아브람과 롯은 오랜 시간 함께 살아왔다. 아버지 없는 롯과 아들 없는 아브람은 그야말로 서로에게 꼭 필요한 존재였던 것이다. 그런데 롯이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아브람을 떠나버린 것이다. 가뜩이나 노년에 적적할 아브람은 이제 맘 나눌 혈육이 다 없어진 것이다.

 

2)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낙심의 상황

 

그러면 아브람은 왜 이런 낙심의 상황에 빠지게 되었을까? 죄 때문인가? 아브람이 하나님 앞에 범죄해서 하나님이 징계를 내리신 것인가?

 

아니다. 때로 죄 때문에 어려움을 겪지만 모든 어려움이 다 죄 때문은 아니다.

 

3) 낙심 가운데 찾아오신 하나님

 

오늘 말씀에서 위로가 되는 것이 있다. 하나님이 낙심 가운데 있는 아브람을 찾아오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에게 말씀을 들려주시는데 그 말씀을 통해 아브람이 모든 낙심된 상황을 넉넉히 이길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은 낙심중에 있는 당신의 사람들을 버려두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시다.

 

여러분은 어떤 낙심 중에 있는가? 어떤 가슴 아픈 사연을 가지고 있는가? 여러분을 힘들게 하고 지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여러분으로 하여금 한숨을 쉬게 하고 남몰래 눈물 흘리게 하는 고통은 무엇인가? 그저 한없이 바닥에 주저앉아 여러분을 무기력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기억하시라. 하나님이 여러분과 함께 하신다. 지금 여러분에게 소망과 위로의 음성을 들려주고 계시다. 그 음성 듣고 힘을 얻으시기를 축원한다.

 

 

2. 아브람에게 비전을 주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낙심할 만한 상황 가운데 놓여있는 아브람을 찾아오셨다고 했다. 그리고 아브람에게 놀라운 꿈을 심어주신다. 그것을 우리는 비전이라고 부른다.

 

14-17절을 읽어보자.

14.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15.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16. 내가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17.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두루 다녀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여기에서 우리는 비전에 대해 3가지 중요한 질문을 생각해보고자 한다. 첫째로 비전의 주체는 누구인가? 둘째로 비전의 내용은 무엇인가? 셋째로 비전의 성격은 무엇인가?

 

1) 비전의 주체

 

첫째로 비전의 주체이다.

 

여러분 비전의 주체가 누구인가? 비전의 주체는 하나님이시다.

비전은 사람이 가지고 싶다고 해서 스스로 갖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이 주신 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여러분에게 꿈과 비전을 주시는 분도 바로 하나님이시다. 여러분이 진정 비전의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면 하나님 앞에 기도하시기 바란다. 특별히 성령의 충만함을 구하시기 바란다. 성령 하나님은 친히 우리에게 비전을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17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2)

 

2) 비전의 내용

 

둘째로 비전의 내용은 무엇인가?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주셨던 비전의 내용은 두가지이다.

첫째, 네가 바라보는 땅을 다 너에게 주겠다.

둘째,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많아지게 하겠다.

 

엄청난 내용들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 비전의 내용은 개별적인 것 같으면서도 공통적인 것이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시는가? 아브람 개인에게 주신 개별적인 비전같지만 실상은 모든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신 공통의 비전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그런 비전이 우리에게도 해당하는가? 당연하다. 주님은 지상명령을 남기셨다. 이 지상명령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최고로 중요한 명령이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마음에 품고 있어야 할 비전이다. 주님은 어떻게 말씀하셨는가?

 

“18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28)

 

여러분에게 묻는다. 여러분은 이런 비전을 마음 속에 가지고 있는가? 하나님이 주신 놀라운 꿈이 여러분 속에서 불타오르고 있는가? 혹시 세상의 일에 너무 얽매어 정작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고 살지는 않는가?

 

3) 비전의 성격

 

셋째로 비전의 성격은 무엇인가?

 

(1) 상식과 비례하지 않는다.

 

첫째로 비전은 상식 이상의 것이다.

 

아브람은 지금 땅 한평도 가지지 못했다. 그런데 동서남북 바라보는 땅을 하나님이 다 주시겠다고 하신다. 아브람은 지금 자식이 한명도 없다. 그런데 땅의 티끌같은 자손을 하나님이 주시겠다고 하신다. 아브람은 벌써 할아버지 나이가 되었는데 말이다. 이건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를 않는다.

 

그러나 여러분 기억하시라. 비전은 상식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만약 비전이란 것이 상식선 안에 머물러 있다면 그것이 능력 있고 배경 있고 학력 있는 사람들에게나 해당하지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해당사항도 없을 것이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심어주신 비전

“15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16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17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18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찌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16)

 

엄청난 말씀이다. 그리고 이 말씀을 듣는 이들은 어처구니없게도 엄청나게 별 볼일 없는 사람들이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볼 때 예수님의 이 놀라운 말씀을 감당하기엔 제자들이 너무 형편없어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는 비전이란 것 자체가 상식을 넘어서는 것이 아닌가? 아까도 말했듯 상식 안에 갇혀 있는 비전이라면 그것은 더 이상 비전일 수 없는 것이다.

 

실제로 제자들은 비전대로 살았지 않은가? “20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쌔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거하시니라”(16)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의 능력이나 지혜, 그리고 경험 안에 하나님의 역사를 가두어 놓지 말라.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이나 기대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놀라운 역사를 하나님이 능히 이루신다는 것, 그것을 믿고 살아가시라. 비전은 상식 이상의 것이다.

 

(2) 하나님 중심적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비전의 성격이 무엇인가?

 

둘째로 비전은 하나님 중심적이다. 다시 말해 자기중심적인 야망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이다.

 

비전과 야망의 차이가 바로 이점이라는 사실은 여러분은 기억하시기 바란다. 야망은 내 중심적이다. 하나님도 나를 위해 존재하는 분으로 전락하고 만다. 그러나 비전은 하나님 중심적이다. 하나님을 위해서 내가 쓰임 받는 것이다.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주신 비전은 아브람의 야망이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었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과정이었던 것이다.

 

(3) 시련을 이기게 한다.

 

하나님이 주시는 비전의 성격이 무엇인가?

 

셋째로 비전은 시련을 이기게 한다.

 

농부는 꿈이 있다. 그것은 수확의 꿈이다. 가을날 풍성을 수확하고 알곡을 곡간에 가득 채우는 것, 그것은 농부의 목표이다. 그리고 농부는 그 꿈을 이루기 위해 파종의 수고와 땡볕의 시련을 견딘다.

 

경주자에게는 꿈이 있다. 그것은 첫 번째로 목표지에 도달하는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선착으로 테이프를 가로지르는 것, 그것은 경주자의 목표이다. 그리고 경주자는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다리 아픈 것, 숨이 차는 것, 덥고 피곤한 것, 목이 마르고 먹고 싶은 것을 다 견디면서 달음질한다.

 

사랑하는 여러분. 어디 이뿐인가? 세상만사가 그렇지 않은가? 꿈이 있기 때문에 견딜 수가 있는 것이다. 똑같이 고난당하고, 똑같이 힘이 들고, 똑같이 환경이 열악해도 꿈이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자는 천지차이가 아닌가? 꿈이 없는 자는 무너질지 모른다. 그러나 꿈이 있는 자는 시련 속에서 의미를 찾기에 무너지지 않는다. 시련도 고통도 넘어서야 할 과정으로 보는 것이다.

 

여러분 잘 기억하시라. 꿈과 비전이 명확해지면 고통도 의미 있는 것으로 다가온다. 비전의 힘으로 시련을 이기게 되는 것이다.

 

 

결론

 

결론적으로 말씀드린다.

 

하나님은 우리가 낙심 가운데 있을 때라도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신다. 아니 오히려 그때 우리를 찾아오셔서 위로하시고 용기를 주시는 긍휼의 아버지이시다.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에게 꿈을 주시는 분이다. 이 꿈은 개꿈이 아니다. 잠시 있다가 없어지는 안개와 같은 꿈도 아니다. 참으로 일평생을 달음해서 쫓아가도 될만큼 가치있는 꿈이다. 그것을 우리는 비전이라고 부른다.

 

-비전의 주체는 누구인가?

 

하나님이야말로 그 비전의 주체가 되신다.

 

-비전의 내용은 무엇인가?

 

우리에게는 공통의 비전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 확장이며 하나님 백성이 번성케 되는 것이다.

 

-비전의 성격은 무엇인가?

 

비전은 상식 이상의 것이다.

비전은 하나님 중심적이다.

비전은 시련을 이겨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