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환 특별설교

충성은 참 좋은 것이다 계2:8-11

안희환2 2012. 4. 17. 00:15

충성은 참 좋은 것이다 계2:8-11

 

 

8.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이르시되

9.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비방도 알거니와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탄의 회당이라

10.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11.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1. 어떤 이에게 충성하라고 하시나?

 

오늘 본문에서 주님은 충성하라고 명하고 계신다. 누구에게 그런 말씀을 하시는가? 외형상의 대답은 서머나 교회이다. 그런데 이 서머나 교회는 특징이 있다. 그 특징을 이해하는 것이 어떤 이에게 충성을 명하시는지 파악하는 열쇠가 될 수 있다. 어떤 이에게 충성을 명하시는가?

 

1) 이미 잘하고 있는 자에게

 

첫째로 이미 잘하고 있는 자에게 충성을 명하고 계신다.

 

a. 건강한 서머나 교회

 

서머나 교회는 빌라델비아 교회와 더불어 아주 건강한 교회이다. 주님 보시기에 기쁨이 되는 교회인 것이다. .

 

“9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훼방도 아노니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단의 회라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라는 평가를 받는 것. 이것은 서머나 교회가 영적으로 풍성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하나님께 드릴 것이 많다는 말이다. 이것은 그 교회를 구성하고 있는 성도들이 영적으로 살아있다는 말이며 주님께 이미 충성스런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말이다.

 

그렇게 이미 잘하고 있는 교회를 향하여 잘하라고 하시는 것이다

 

b. 이것은 조금 이상하게 보이지만...

 

이미 충성하고 있는데 왜 충성을 명하시는 것일까? 차라리 충성은 지금 충성을 안 하는 사람에게 요구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계시록을 죽 읽어보면 충성되지 않는 교회를 향한 말씀은 충성하라가 아니다. 무엇인가? 회개하라이다.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해 하신 말씀이다.

 

이것은 조금 이상하게 보이지만 이것이 옳다는 것을 깨달았다.

더 강한 충성의 요구는 이미 충성하고 있는 자에게 할 때 효과적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들은 이미 바쁘지 않습니까? 그들은 이미 많은 역할을 감당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또 일을 맡기면 펑크나지 않겠습니까? 하고 물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바쁜 중에 시간을 쪼개고 정성을 기울이고 온 힘을 동원하여 주어진 일을 감당해낸다.

 

c. 충성하지 않는 이에게 충성을 요구할 때

 

오히려 이것이 큰 유익이 없는 경우가 많다.

 

-부담만 느낀다. 부담은 점차 거부감으로 바뀌고 교회에 대해 흥미를 읽거나 교회를 벗어나고자 하는 안 좋은 생각에 빠져든다.

 

-충성을 요구하는 이의 마음이 상한다. 이것은 내가 여러 차례 경험한 일이다. 상대가 받아들이지를 않는다. 그리고 그것이 반복되면 마음이 상하기만 하고 거기에 에너지를 빼앗겨서 정말 써야할 것에 쓰지 못하게 된다.

 

2) 고통 중에 있는 이에게

 

누구에게 충성을 명하시는가? 둘째로 고통 중에 있는 자에게 명하고 계신다.

 

a. 고통 중에 있는 서머나 교회

 

지금 고통. “9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앞으로 또 고통. “10상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찌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많은 고통을 겪은 초기의 성도들.

원형경기장.

인간 횃불.

사망의 몸.

기타 등등.

 

지금도 힘들고 앞으로 더 힘들 것인데 그 상황 속에서 충성하라고 하시는 것임.

 

b. 이 역시 납득이 안가는 듯이 보임.

 

힘들어 죽겠는데 왜 충성을 요구하시는가? 앞으로도 힘들 것이라면서 충성을 요구하시는 건 또 뭔가?

 

대개의 사람들. 고통스러우면 충성하지 않음.

마음이 상하거나, 몸이 힘들거나, 하는 일이 잘 안되거나, 안간관계가 꼬이거나, 실패를 경험하거나 하면 맡겨진 일을 소홀히 함. 한발 뒤로 물러섬. 그리고 목회자도 그것을 이해한다면서 당연하게 생각함. 그러나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을 오늘 본문에서 가르쳐줌.

 

왜 그럴까?

-충성은 어느 때나 일관된 것이어야 하며...

-힘들 때 문제에 집중한다고 해서 해결에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며...

-힘들 때 충성하던 것을 멈추면 계속 충성하기 어려워지며...

-더 나아가서 신앙이 마이너스로 돌아서게 되는 일이 많음.

 

그렇지 않은가? 이런 의미를 새롭게 깨닫게 되었음.

 

헌신이라고 하는 것.

사렙다 과부에게 마지막 남은 양식을 달라고 요청하는 엘리야.

 

반응은 둘 중 하나임.

나도 힘든데, 나도 없는데 더 힘들라고 하는 말입니까? 헛소리 마시오. 난 못합니다”.

예 나도 힘든 것은 사실이지만 말씀에 순종해보겠습니다. 그렇게 하지요

 

사렙다 과부는 힘든 와중에서도 순종하는 것을 선택하였음.

그것은 그 가정의 복임.

 

순종하지 않았다면...잠깐은 좋음.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는 체험하지 못함. 문제는 그러고도 그걸 안타가워하지도 않는다는 것. 더 좋은 게 있다는 것을 알지도 못하니까.

 

 

2. 충성이 좋은 이유는 무엇인가?

 

1) 충성할 때 진정한 기쁨이 있다.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다면...결국 사람은 하나님의 뜻 안에서 각자에게 주신 사명을 충성스럽게 감당할 때 가장 행복할 수 있음. 그것은 목회를 말하는 것이 아님. 삶의 다양한 분야가 있는 것이니...

 

그런데 왜 어떤 이들은 충성하면서 기뻐하지 않는가?

하나님이 맡기신 일이라는 확신의 결여.

기꺼이 하는 게 아닌 억지로 하는 태도.

하나님이 아닌 사람에게 보이려는 의도.

이 모든 것들이 진정한 기쁨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 방해 요소.

 

2) 충성하는 자를 인정해주신다.

 

아내 사별 후 구스 여인을 취한 모세.

잘한 행동은 아님. 이방 여인이기에...

모세에게 약간의 불만이 있었던 아론과 미리암. 이것을 기회로 모세를 공격함.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손을 들어주심.

두가지 이유

a. 하나님이 모세의 권위를 세우심. 아론이 형이고 미리암이 누나이고 모세는 미리암 덕분에 살아나기도 했지만 하나님이 권위자로 세우신 것은 모세임. 그러기에 그것을 인정하고 따라야 하는데 반기를 들었으니 문제가 되는 것임.

b. 모세의 충성됨을 하나님이 인정하심. “4: 여호와께서 갑자기 모세와 아론과 미리암에게 이르시되 너희 삼 인은 회막으로 나아오라 하시니 그 삼 인이 나아가매5: 여호와께서 구름 기둥 가운데로서 강림하사 장막문에 서시고 아론과 미리암을 부르시는지라 그 두 사람이 나아가매6: 이르시되 내 말을 들으라 너희 중에 선지자가 있으면 나 여호와가 이상으로 나를 그에게 알리기도 하고 꿈으로 그와 말하기도 하거니와7: 내 종 모세와는 그렇지 아니하니 그는 나의 온 집에 충성됨이라”(12:4-7).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아도 이해할 수 있다.

왕에게 신하들이 있다.

한 명은 충성되다. 왕이 맡긴 것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

한명은 뺀질거린다. 자기감정에 따라, 형편에 따라 안 할 때가 있다.

이 둘이 충동할 경우 왕은 누구의 손을 들어줄까?

 

참으로 충성된 다윗. “다윗이 어디를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시니라

 

3) 충성할 때 하나님의 축복이 있다.

 

한 사람을 소개하겠다. 여자 분이다. 이 여자는 시카고의 부잣집 딸로 태어났다. 그녀는 의사가 되기 위해 의과 대학에 입학을 했다. 그런데 척수장애로 학업을 포기하고 좌절하게 되었다. 그녀는 충격을 이기기 위해 여행을 떠났다.  

 

그녀는 영국 런던에 있는 빈민굴에 갔다가 평생 처음 보는 광경에 충격을 받았다. 빈민굴에 사는 사람들이 맨 땅에서 그냥 먹고 자는 것을 보고 우리 집에서 기르는 애완동물보다 못하구나하고 생각했다. 그는 집에 돌아와 성경을 읽으면서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6:8)”라는 말씀에 감동을 받고 남은 인생을 가난한 사람들의 친구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했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시는 사명을 발견하는 순간이었다.

  그녀는 부모님이 물려주신 돈으로 시카고에 헐 하우스(Hull House)’라는 곳을 마련했다. 그곳에 가난한 청소년들을 전부 모아서 가르치고 자립할 수 있게 도와주는 일을 하게 되었다. 그 일은 다른 사람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많은 청소년들의 인생을 바꾸어 주었던 것이다.

 

이 여자가 누군지 아는가? 1931년 노벨 평화상을 받은 제인 애덤스(Jane Adams ; 18601935)라는 분이다.

 

만약 척수장애라는 것에 절망하여 자신의 인생을 비관만 하고 있었다면 어찌되었을까? 이 몸으로 시집은 어떻게 가나? 내가 하고픈 일도 못하는데 이런 세상 살아서 뭐하나? 하는 고민만 하고 있었다면... 그냥 맥 빠진 인생을 살다가 끝났을 것이다. 그러나 사명을 깨닫고 충성을 다했을 때 하나님이 갚아주신 것이다.

 

물론 모두가 노벨상을 받을 수는 없다. 그러나 이 땅 사는 동안에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다양한 결과들을 보게 될 것이다. 더 나아가 노벨상보다 더한 상을 받게 될 것이다.“10하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4) 충성할 때 은혜를 갚을 수 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겐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

상급이 없어도 이미 충성할 이유가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

인간이 해결할 수 없는 죄의 문제 해결. 날 위해 고난당하신 예수 그리스도. 나는 이것 하나만으로도 충성할 수 있다.

 

바울의 충성. “나의 달려갈 길과 하나님께 받은 사명...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찬송가 141. 1. 4. 5.

 

어떤 분이 교회를 방문했다. 그 교회에서 노벨상을 수상했다는 물리학자를 소개받았다 물리학자는 마침 교회 청소를 하고 있었다. "당신은 이름난 물리학자인데 교회 청소를 하고 계십니까?" 그러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내 안에 계신 그분이 청소하게 하십니다."

 

방문객은 다시 물었다. "당신은 어떻게 물리학자가 되셨습니까?" 그는 또 이렇게 대답했다. "내 안에 계신 그분이 나로 물리학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분은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는 사람. 은혜를 알고 작은 일에 충성하는 사람.

 

분명히 말한다. “내가 왜 이런 일을 해야 해. 내가 교회에 청소하러 왔어?” 이러는 사람은 은혜도 모르는 사람이고 충성도 모르는 사람이다. 이기적인 교인일 뿐이다.

 

충성함으로 내가 받은 그 놀라운 은혜를 갚는데 무엇을 못하겠는가?

 

결론

 

말씀을 맺고자 한다.

 

귀있는 자는 들으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11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여러분에게 들을 귀가 있기를 축원한다.

주님은 말씀하신다. 귀있는 자는 들으라고...들을 귀가 있기를 바란다.

 

 

정리해보자.

 

1. 어떤 이에게 충성을 명하시는가?

 

a. 이미 잘하고 있는 자에게

그렇지 않은 이에게 명하시는 것은 회개. 지금 충성하는 이에게 더욱 충성할 것을 요구할 때 그것이 잘 받아들여짐.

 

b. 고난 중에 있는 자에게

지금 고난 중에 있고 앞으로도 고난 받을 자에게...즉 고난은 충성을 중단할 이유가 못됨을 말씀하고 있다.

 

2. 충성은 왜 좋은 것인가?

 

a. 충성할 때 진정한 기쁨이 있음. 존재의 의미를 찾는 것임.

 

b. 충성할 때 하나님이 인정해주심. 하나님은 충성된 자를 기뻐하심.

 

c. 충성할 때 하나님의 축복을 받음. 저 천국에서도 영원한 상급이 있음.

 

d. 충성할 때 은혜를 갚을 수 있음. 이 얼마나 가치있는 일인가?

 

 

충성은 참 좋은 것이다.

 

유재명 목사님.

안산 빛나 교회. 장로교 합동정통. 개척 18. 졸업 후 바로 개척. 1300여명의 성도들.

 

십자가 없이. 강대상 없이. 흘러들어오는 물과 씨름하며 목회 시작. 예배드리지도 못하고 물을 퍼낸적이 여러번. 열심히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첫 번째 대가. 아내가 병을 얻음. 기둥에 걸어놓은 시계가 물이 차서 돌아가지 않을 만큼의 습기. 그곳에서 기도하다가 아내가 결핵 능막 때문에 시골로 요양. 자신도 무릎 관절. 허리 디스크, 목 디스크. 올 수 있는 것은 다 옴.

 

그런 와중에서 정말 하나님을 전적으로 인정하면서 몸부림치는데 목사님들이 와 보심. 아내 어디있냐고? 시골 갔다고. 일년도 안된 아이를 끌어안고 목회하는 것을 아신 목사님 한 분이 우시더니 봉투를 주심. 그리고 말씀하심. “더 빨리 이사가. 안그러면 여기서 죽어”. 그제서야 이사가도 되는 줄 처음 알게 됨.

 

하나님께 기도. “절 보고 이사가라네요. 절 이곳에 하나님이 보내셨잖아요. 저 이사 못가요. 저 이사 못가요. 저 여기서 죽을래요. 이곳이 가득차기 전에는 절대로 이사 못갑니다.” 밤이 맞도록 기도함.

 

하나님이 그 지하실을 채워 주심. 5층으로 이전. 눈 감으면 평안 눈 뜨면 불안.

통곡. 50m 떨어진 교회 목사님이 찾아옴. 좀 살살하라고.

 

성전 부지 좀 주세요.

종교부지 650. 국민일보에 난 광고. 103. 1억 빌려서 계약. 5개월 동안 중도금 지불. 마지막 8억을 지불, 23천 건축위원장에게 들려보냈는데 전화. “목사님 큰일났어요. 사기꾼이 갖고 날랐어요.”

 

사기꾼이 두 군데 계약. 양쪽 교회에서 돈 받아 감. 교회는 8억 날림. 빚만 42천 남음.

 

5개월간 몸부림치며 기도. 교회 분위기는 말이 아님.

 

그런 상황에서 하루는 제자훈련을 시키러가는데 전화 옴. “목사님 어느 집사님이 물에 들어가서 안 나와요.” 장난인줄 알음. 이따가 전화하자.

 

아파트 밑에 도착해서 올라가기 전 전화.

여름 성경 앞둔 6. 남자 집사님들이 성경학교 의논하러 가자고 시화호에 갔다가 배를 타고 돌다가 6명이 다 죽음. 신문방송에 3일 나옴. 사체 3구는 건지고 3구는 찾고 있다고.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짐. 많은 돈이 들고 교회의 상처 목사의 상처는 견딜 수 없음.

 

멀쩡한 사람들 다 나감. 힘없는 사람들만 남음. 없어도 될 것 같은 사람들은 꼭 붙어있음. 목회 해보니 그들이 재산임. 그들이 교회를 지킴.

 

불면증으로 2년간 시달림. 성도를 만날 염치가 없음. 남자만 죽고 과부댁만 남았는데. 그 후로 3년간 웃지 않고 설교.

 

교회에서 행사를 못함. 과부댁들이 울기 때문에.

 

성도 만날 염치가 없음. 말씀이 죽었음. 강대상에서 울면서 했던 기도. “하나님 오늘 나 무슨 설교해요?” 그렇게 몸부림쳐 기도하다가 한 말씀 주시면 설교. 성도들은 딴짓하고 설교를 듣지 않음. 당신 같은 목사가 무슨 설교냐 하는 의미.

 

1년 이상 시달리니 아내 곁으로 안 감. 1딸이 품으로 들어옴. “아빠 뭐 물어볼 것 있어? 왜 아빠는 엄마하고 함께 안 자.” 그 아이 끌어안고 미안해. 아빠는 원해야 함께 자는 거거든. 그런데 죽을 것 같아 도망갈 것 같아.” 딸이 아빠를 안고 울음. “아빠 위해 기도해 줄래.” 아이가 울며 기도. “우리 아빠 죽으면 교회 어떻게 해요. 우리 가족 어떻게 해요.”

 

울다 울다 너무 울어 눈에 진물. 울다 지쳐 스러지면 소금기. 눈썹이 붙어서 떨어지지 않음. 이것이 목횐가? 이것이 사는 것인가? 어떤 성도도 5개월간 심방 요청도 기도 요청도 안 함. 남아 있는 성도. 은혜 받으려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는지 두고 볼려고 팔짱끼고 있는 것임.

 

하루는 울고 또 우는데 지쳐 일어날 힘도 없는데 집사님 한분이 기어오더니 이렇게 말함. “기도해주세요.” 너무 반가워서 손을 잡고 고마워요 집사님. 무슨 기도해줄까요?” “목사님 미안해요. 저 교회 옮길려고요.” 미운 게 아니라 이해됨. 그 손 잡고 집사님 좋겠네요. 갈 수 있어서. 나도 이 교회 싫다. 이 교회는 왜 이렇게 문제가 많니? 나고 가도 싶어.”

 

가장 가고 싶은 것은 목사. 그 집사님 끌어안고 30분간 울음. “집사님 간데요. 나도 갈래요. 하나님 나도 보내주세요. 하나님이 가라고 하셔야 가죠. 하나님이 가라고 안 하시면 갈 수 없잖아요. 하나님 나도 가고 싶어요. 나도 보내주세요.”

 

그 집사님 지금도 있음. 장로임직 받으심.

 

어느 날 아내와 저녁을 먹는 중에 아내에게. “여보 내가 당신 사랑한다.” “고마워요.” 나이 먹으니 감동도 없어요. “당신 사랑하지만 난 손가락 하나 못 잘라줘”. “안 잘라달렐테니까 밥이나 먹어요.” “그렇지만 여보. 교회만 부흥된다면 내가 뭐라도 줄 수 있어. 하나님이 교회만 부흥시켜준다면 다 줄 수 있어.” 그 마음 가지고 18년간 몸부림 침. 하나님이 그 교회를 일으키심. 지금은 강력한 교회로 서 있음.

 

이 교회 든든한 교회. 목사님의 누가 뭐래도 헌신. 그리고 목사님을 따라 헌신에 동참했던 성도들.

 

반 목회. 교사는 작은 목회자. 헌신자가 되면 때로 힘들어도 마침내 구원의 역사가 있을 것이다. 부흥의 역사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