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 이사야49:14-21
14. 오직 시온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였거니와
15.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16.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
17. 네 자녀들은 빨리 걸으며 너를 헐며 너를 황폐하게 하던 자들은 너를 떠나가리라
18. 네 눈을 들어 사방을 보라 그들이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 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나의 삶으로 맹세하노니 네가 반드시 그 모든 무리를 장식처럼 몸에 차며 그것을 띠기를 신부처럼 할 것이라
19. 이는 네 황폐하고 적막한 곳들과 네 파멸을 당하였던 땅이 이제는 주민이 많아 좁게 될 것이며 너를 삼켰던 자들이 멀리 떠날 것이니라
20. 자식을 잃었을 때에 낳은 자녀가 후일에 네 귀에 말하기를 이곳이 네게 좁으니 넓혀서 내가 거주하게 하라 하리니
21. 그 때에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누가 나를 위하여 이들을 낳았는고 나는 자녀를 잃고 외로워졌으며 사로잡혀 유리하였거늘 이들을 누가 양육하였는고 나는 홀로 남았거늘 이들은 어디서 생겼는고 하리라
1. 자신들을 잊으셨다고 말하는 하나님의 백성들
여기에 보면 사람들의 탄식이 나온다. 하나님이 자신들을 버리셨다는 것이다. 주님께서 자신들을 버리셨다는 것이다. 이것이 정말 사실이라면 그보다 더 비참한 일은 없을 것이다.
세상이 다 자신을 버려도 하나님이 자신을 버리지 않는다면 소망이 있겠지만 하나님께서 버리시고 잊어버리신다면 그것은 그야말로 끝이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 매달리셨을 때 왜 그토록 절규하셨는지 아는가? 여간한 일을 가지고는 묵묵히 침묵하셨던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선 왜 그토록 처절하게 외치셨는가? 인류의 죄악을 짊어지신 예수께서는 하나님에게조차 버림을 받으셨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주님은 십자가 위에서 절규하셨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2) 그들은 바로 하나님의 백성들임-시온
그런 면에서 오늘 본문의 탄식은 참으로 절망적인 탄식이다.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얼마나 끔찍스런 탄식인가?
그런데 여러분. 이렇게 탄식하는 주체가 누구인지 아는가? 오늘 본문을 보라 이렇게 되어 있다. “오직 시온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탄식의 주체가 누구인가? 시온이다.
시온은 무엇인가? 다윗의 도성이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을 상징적으로 말씀할 때 시온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구원을 체험한 자들, 살아계신 하나님의 백성들이 탄식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완전히 잊어버리셨습니다”
3) 왜?
그러면 시온은 왜 하나님이 자기를 버리시면 주님께서 왜 자신을 잊으셨다고 생각하게 되었는가?
첫째로 고난의 극심함 때문이다. 고난이 심하니까 이젠 버림받았구나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바벨론 포로기간의 고통은 상상을 초월한 고통이었다. 그런 고통의 와중에서 시온은 하나님께 버림받았다고 느낀 것이다. 고통은 사람을 참으로 약하게 하지 않는가?
둘째로 고난의 길이 때문이다. 고통의 세월이 너무 기니까 지쳐버린 것이다. 1,2년이 아니라 70년간 종살이를 하다 보니 밝게 빛나던 소망의 불꽃도 차차 시들어가고 피곤과 무력감만 더 생겨났던 것이다. 고통이 너무 길게 이어지면 한번 하나님을 의지하고 이겨보자 하던 의지와 용기마저 사그라지지 않는가? 그것이 우리의 연약함이 아니던가? 시온이 바로 그랬던 것이다.
셋째로 별로 드러나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길 때문이다. 고통이 심해도, 또 고통이 길어도 순간순간 하나님이 당신의 능력을 나타내시면 그것을 보고 위로를 얻으며 용기를 낼텐데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아서 무너져버리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호전이 되면, 조금이라도 상황이 좋아지는 것 같으면, 조금이라도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 같으면 버텨보련만 늘 똑같아 보이는 권태로움이 사람을 미치게 하는 것이다.
2. 그러나 결코 잊지 않으시는 하나님
1) 여인이 어찌 그 자식을 잊겠느냐?
하나님은 무엇이라 말씀하셨는가? 여인이 젖먹는 자식을 잊는 것과,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2)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잊지 않는다.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간다.
“여인이 어찌 그 젖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찌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15) 다같이 따라해보자. “그들은 혹시 잊을찌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여러분. 하나님은 전능의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그분의 이름 중 하나가 "엘샤다이"이다. 그런데 전능의 하나님이 못하시는 것이 있다. 그것은 당신의 자녀들을 잊으시는 것이다. 당신의 백성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으시는 것이다. 모든 것이 다 가능한 하나님께서 도저히 당신의 자녀들은 잊어버리지 못하시고 당신의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지 않고는 못 배기시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를 잊지 못하시는 하나님의 성품을 오늘 본문 16절에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16)
하나님이 나와 여러분을 손바닥에 새겼다는 것이다.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손바닥에 쓰는데, 손바닥에 쓰면 지워질까봐 아예 손바닥에 새겨버리셨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심심해서 손바닥에 문신이라도 새기신 것인가? 그게 아니다. 그만큼 우리를 잊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또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다”고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성벽은 보호처이다. 우리의 보호처가 항상 하나님 앞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그러니 그 누구도 무너뜨릴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이 친히 지키는 성벽을 감히 누가 무너뜨릴 수 있겠는가?
3. 하나님의 약속
우리를 당신의 손바닥에 새기셨고 우리의 성벽을 항상 그 앞에 두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절대로 버리지 않으신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아버지이시다. 그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축복하시기 원하신다.
오늘 본문 속에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 마음에 맺힌 소원을 풀어주시겠다는 약속이 담겨져 있다.
그리고 이 소원의 성취는 두 가지로 나타난다. 하나는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고통이 떠나는 것이다. 그리고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는 것도 소망이고 고통이 떠나가는 것도 소망이다.
1) 네 자녀들은 속히 돌아오리라
먼저 이루어지는 소원의 성취는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뿔뿔이 흩어져 있었다. 그들은 나라를 빼앗겼다. 고향에 가고 싶어도 갈수가 없었다. 설사 목숨을 걸고 고향에 돌아간다 해도 맞아줄 사람이 없고 도저히 살아남을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제 그 소원을 들어주시겠다는 것이다. 마음에 맺힌 간절한 소원을 이루어주시겠다는 것이다.
여러분 여러분의 소원 중 간절히 원하는 바는 무엇인가? 여러분이 날마다 눈물로 기도하는 바가 무엇인가? 분명히 기억하라. 하나님께서 그 소원을 이루어주실 것이다. 믿으시기 바란다. 믿음대로 될지어다.
2)고통 주던 자들이 떠나가리라
두 번째로 이루어지는 소원의 성취는 고통을 주던 것들이 떠나가는 것이다.
여러분이여. 여러분은 고통이란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를 잘 아실 것이다. 고통을 겪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여러분에게 묻는다. 육체적인 고통을 간절히 원하는 사람이 혹시 있는가? 있다면 정신병자이다. 다 이런 고통이 떠나가기를 원하지 자신에게 계속 머물기를 원치는 않을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령한다.
나를 괴롭게 하는 고통아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떠나가라.
나를 지치게 하며 스러지게 하는 고통아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떠나가라.
내게 고통을 가져다주는 세력이 사단일진대, 원수 마귀야 내게서 떠나가라.
우리는 이렇게 선언할 수 있다.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 위에서 모든 것을 다 이루어 놓으셨기 때문이다.
결론
결론적으로 말씀드린다.
우리 주님은 나를 위해 이 땅에 오셨다.
나를 위해 조롱과 고난과 멸시와 침뱉음을 당하셨다.
나를 위해 온 몸에 채찍을 맞으시고 피투성이가 되셨다.
나를 위해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셨다.
나를 위해 손과 발에 커다란 대못이 박히신 채 나무 위에 매달리셨다.
나를 위해 벌거벗은 채 수치와 멸시를 당하셨다.
나를 위해 그토록 목마름 속에 신음하셨다. “심히 목마르다”
나를 위해 하나님에게조차 버림받으시고 절규하셨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그 주님이 나와 여러분에게 말씀하신다. 내가 너를 사랑하였다. 죽기까지 사랑하였다. 지금도 사랑하고 있다. 앞으로도 영원히 사랑할 거이다. 나는 너를 결코 버리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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