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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기 축구 전권 씨의 인생역전 스토리

안희환2 2011. 8. 4. 12:27

묘기 축구 전권 씨의 인생역전 스토리

3년전 공 하나 들고 런던행… 트래펄가 광장에 섰다, 갈채가 쏟아졌고 떴다…
나이키 메인모델이 됐고 호날두에게도 한수 지도…

동아일보 | 입력 2011.08.04 03:15 | 수정 2011.08.04 09:18




[동아일보]







'공 하나에 인생을 걸었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프리스타일축구를 독학한 전권 씨가 영국 런던의 트래펄가 광장에서 많은 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줄넘기를 하며 헤딩을 하는 묘기를 선보이고 있다. 30만 원을 들고 영국행 비행기에 오른 전 씨는 광장 팬들이 올린 유튜브 동영상이 인기를 끌면서 세계적인 프리스타일리스트로 도약했다. 전권 씨 제공

《 고등학교 졸업을 한 달여 남겨둔 2008년 2월 전권 씨(22)는 단돈 30만 원을 들고 영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축구의 나라 영국에서 승부를 걸어야 뭐든 될 것이란 각오였다. 실제로 돈도 없었지만 많은 돈을 가지고 가 배부르게 지내다보면 나태해질 것 같아 편도 비행기 삯을 빼고 30만 원만 챙겼다. 당시 환율로 140파운드. 민박집에서 이틀을 지낼 수 있는 돈이었다. 주위에서는 무모하다고 말렸다. 돌아갈 비행기 표는 물론 이역만리 타국에서 먹고살 돈조차 없는 상태. 어떡하든 살아야 했다. 그래서 광장을 찾았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갈고닦은 프리스타일축구(축구묘기)로 돈을 벌 생각이었다. 유럽은 광장 공연이 발달한 나라. 공연을 잘하면 관광객들이 1, 2파운드씩 던져주고 간다. 런던 중심가 트래펄가 광장으로 갔다. 경찰이 공연을 못하게 해 마지막으로 찾은 곳이었다. 이곳에서 스티븐이란 경찰을 만났다. 축구를 사랑하는 그는 광장 옆 내셔널갤러리 앞에서 공연을 해도 좋다고 했다. 단 조건이 있었다. 공연을 끝내고 축구 기술 하나씩 가르쳐줘야 했다. 》

바로 공연을 시작했다. 관광객 수천 명이 지나가는 곳. 중고등학교 시절 하루 8시간씩 5년간 1만4000시간 넘게 공과 싸워온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관광객들은 환호했다. 나흘 만에 2000파운드(약 430만 원)를 벌어 석 달 치 방값을 미리 해결했다. 한 달 반이 지나자 축구 이벤트를 하는 에이전트로부터 연락이 왔다. 관광객들이 올린 유튜브 동영상을 보고 함께 일하자는 제의가 온 것이다. 지금까지 유튜브 동영상 클릭 수가 252만9000건이 넘는다.

영국 스카이스포츠의 프로그램 사커AM 홍보영상 촬영이 첫 번째 일이었다. 이게 성공을 거두자 에이전트는 '나이키5'라는 광고모델 오디션에 나가볼 것을 제안했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등 전 세계 3000여 명이 참가해 지그재그 막대를 지나고 다양한 장애물을 넘는 오디션에서 당당히 1위를 했다. 광고도 히트를 쳤다. 당시 받은 상금이 약 3200만 원.

이때부터 세계 최고의 프리스타일리스트가 됐다. 2008년 말 이탈리아 인터 밀란과 그리스 파나티나이코스유럽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경기에서 공연했다. 2009년 초에는 나이키 이그나이트라는 광고에서 당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활약하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레알 마드리드)와 카를로스 테베스(맨체스터 시티) 등과 같이 광고를 찍었다. 맨유와 아스널의 가상 경기에서 박지성의 대역을 하는 역할이다. 그때 자연스럽게 호날두와 프리스타일 배틀을 했다. 호날두가 몸 풀면서 묘기를 보이자 도전의식이 생긴 그가 나섰다. 은근히 비웃는 호날두를 상대로 기술을 선보였다. 그러자 호날두가 갑자기 꼬리를 내리고 "계속 해봐라. 그 기술 알려줄 수 없느냐"고 해 JK바운드레인보와 아카1000, 토밸런스, 스핀매직 등 4가지를 전수했다. 호날두는 그를 가리켜 "프리스타일의 전설"이라고 했다. 테베스와 나니도 그의 묘기를 보고 "호날두의 말처럼 최고"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공놀이를 좋아했던 전 씨는 어릴 때부터 축구선수를 꿈꿨다. 축구를 하는 시간만큼은 어느 때보다 행복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대한민국의 현실은 소년의 꿈을 억압하기 시작했다. 공과 함께 어우러지고 싶었지만 현실은 소년의 생각과 동떨어져 있었다.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축구 기계'가 되게끔 강요했다. 절망적이었다. 축구를 바로 그만뒀다. 1년여를 방황하고 있을 때 브라질 호나우지뉴(플라멩구)가 한 스포츠용품업체 광고에서 기가 막힌 축구묘기를 하는 게 눈에 들어왔다.

중학교 2학년(울산 현대중) 때부터 혼자서 프리스타일축구에 매달렸다. 공을 자유자재로 가지고 놀며 다른 사람이 할 수 없는 기술을 연마하는 게 좋았다. 국내에 프리스타일축구 전문가가 없어 인터넷 동영상을 보며 따라했고 그 기술을 더 발전시키는 재미에 빠졌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하루 8시간씩 공과 어우러졌다. 학교 운동장이나 공터 빈 공간이 훈련장소가 됐다. 오후 6시부터 다음 날 오전 2시까지 훈련했다. 몸무게도 61kg에서 51kg으로 줄어들었다. 주위에서 "공부나 해라"라는 말도 들었지만 그렇게 하면 너무 재미없고 싱거운 인생이 될 것 같았다. 축구공 하나만으로도 세계 최고가 될 수 있을 것이란 막연한 자신감이 있었다.





2008년 국내에서 열린 한 프리스타일축구대회 때 심사위원으로 참가한 브라질의 호나우지뉴(왼쪽)와 포즈를 취한 전권 씨. 전권 씨 제공

중학교 3학년 때부터는 울산 현대 프로축구단 관계자의 눈에 들어 프로축구 경기에 공연을 다녔다. 유럽에서 '프리스타일축구 전도사' 우희용 씨(47)가 활약하고 있었지만 국내에서는 아직 프리스타일축구 문화가 자리 잡지 않아 반응은 미미했다. 하지만 2002년 한일 월드컵을 기점으로 팬들이 생겨났다. 2003년부터 인터넷에 전권축구프리스타일 카페를 만들어 운영했다. 프리스타일을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모아 기술을 전수하기 시작했다. 현재 회원은 9만 명이 넘는다.

전 씨는 영국에서 이룬 성공을 기반으로 새로운 꿈에 도전한다. 최근 서울 강남 대치초등학교에서 묘기축구를 결합한 실전 기술축구를 어린이들에게 전수하기 시작했다. 다음 달 3, 4일에는 서울 신촌 예스에이피엠에서 2대2 축구대회와 프리스타일 배틀 대회를 연다. 10×7m 경기장에서 2대2로 승부를 벌이는 축구가 기술을 높여주고 골목과 광장에서 쉽게 축구하는 문화를 만들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세계적인 프리스타일축구 선수와 국내 동호인들이 참가하는 묘기 배틀은 어린이들에게 꿈을 전해 줄 수 있다는 생각이다.

또 전 씨는 해외 14개국을 다니며 축구라는 상품을 어떻게 요리해야 팬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지를 몸으로 배운 것을 토대로 대학에서 본격적으로 공부를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지난해 말 '자기 추천'으로 한국외국어대 국제스포츠레저학과에 응시했고 당당하게 합격했다. 그의 도전정신과 2010년 초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열린 세계 프리스타일축구대회에서 2위를 한 성적이 큰 역할을 했다. 축구공 하나로 인생 역전을 이룬 셈이다.

김병준 인하대 교수(스포츠심리학)는 "전 씨는 기존의 틀에 갇혀 있지 않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으로 세계를 향해 도전해 성공한 모범적인 사례"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최근 유튜브와 트위터, 페이스북 등 글로벌 쌍방향 시대에 맞게 자신의 능력을 가늠하고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도전해 좋은 결과물을 얻었다"고 설명했다. 미디어 환경이 바뀌어 자신의 능력을 세계 수준과 견줄 수 있고 그에 대한 피드백이 바로 오기 때문에 제대로 준비해 도전하면 성공 확률도 커진다는 분석이다. 역대 최고의 실업률 속에서 좌절하는 젊은 세대들이 본보기로 삼을 만하다는 평가다. 전 씨의 축구묘기 동영상은 유튜브(youtu.be/re55xh3GMNc)에서 볼 수 있다.  

▼ 호날두에게 전수한 기술 4가지 ▼





전권 씨가 2일 서울 중구 명동 예술극장 앞에서 '스핀 매직' 묘기를 선보이고 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프리스타일축구는 안고 서고 눕고 엎드리는 등 갖가지 신체 동작에서 머리와 발, 가슴, 등, 어깨 등 모든 신체 부위로 공을 땅에 떨어뜨리지 않고 튀기는 일종의 묘기축구다. 전권 씨가 2009년 초 당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활약하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광고를 찍다 전수한 기술 4가지를 소개한다.

▼JK 바운드 레인보

드리블하며 가다가 상대가 나타났을 때 제치는 기술. 공이 바운드되는 타이밍에 상대를 향해 한 발을 넘긴 뒤 수비가 한쪽으로 쏠리는 사이 다른 발로 바운드되는 공을 띄워 자신의 등 뒤로 올려 수비수 뒤로 향하게 헤치고 나가는 기술. 경기 현장에서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다. 전권 씨가 만들어 그의 이름 약자 JK를 따 명명됐다.

▼아카 1000

오른발 아웃사이드로 볼을 띄워 곧바로 오른발 무릎 바깥쪽 옆쪽으로 옮긴 뒤 다시 오른발 인사이드로 옮기는 기술. 왼발 쪽도 마찬가지. 경기 상황에서 상대를 속이고 치고 나가는 기술이다.

▼토 밸런스(발끝으로 공 세우기)

발끝에 공을 세워 놓고 떨어지지 않게 하는 기술. 전후좌우 균형을 맞추는 능력이 중요하다. 경기 현장에서 유용하게 쓸 일은 없지만 보기에 멋진 기술.

▼스핀 매직

공을 리프팅하면서(띄우면서) 땅에 닿아 있는 발등 인사이드를 맞게 해 반대쪽 인사이드로 튀게 한 뒤 그쪽 발로 스핀을 주면서 계속 공중으로 띄워주는 기술. 역시 경기 현장보다는 보여주는 기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