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환 수요설교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 시편24:1-4(2011. 8. 3 수요예배 설교)

안희환2 2011. 8. 3. 18:15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 시편24:1-4(2011. 8. 3 수요예배 설교)

 

1.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가운데에 사는 자들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2. 여호와께서 그 터를 바다 위에 세우심이여 강들 위에 건설하셨도다

3.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가 누구며 그의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구인가

4.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에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하지 아니하는 자로다

 

 

이사야 35장에는 메시야 시대에 대한 아름다운 노래가 실려있다. 이사야는 이렇게 예언한다.

 

“1 광야와 메마른 땅이 기뻐하며 사막이 백합화 같이 피어 즐거워하며 2 무성하게 피어 기쁜 노래로 즐거워하며 레바논의 영광과 갈멜과 사론의 아름다움을 얻을 것이라 그것들이 여호와의 영광 곧 우리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보리로다 5 그 때에 소경의 눈이 밝을 것이며 귀머거리의 귀가 열릴 것이며 6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벙어리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 7 뜨거운 사막이 변하여 못이 될 것이며 메마른 땅이 변하여 원천이 될 것이며 시랑의 눕던 곳에 풀과 갈대와 부들이 날 것이다

 

그런데 그곳에는 대로가 있고 그 길을 거룩한 길이라 하는데 그 길은 아무나 지나갈 수 없다고 예언한다.

“8 거기 대로가 있어 그 길을 거룩한 길이라 일컫는바 되리니 깨끗지 못한 자는 지나지 못하겠고 오직 구속함을 입은 자들을 위하여 있게 된 것이라 우매한 행인은 그 길을 범치 못할 것이다

 

그곳은 하나님이 계신 곳이요 그러기에 그 길은 거룩한 길이요 그러기에 그 길은 아무나 지나다닐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그 거룩한 길을 마음껏 지나다닐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서실 수 있기를 바란다.

 

오늘 본문에 보면 그 거룩한 길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거하시기에 아무나 머물 수 없는 곳을 묘사하는 구절이 나온다. 바로 여호와의 산이라는 구절이다.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란 제목으로 함께 말씀을 나눌 때 나와 여러분 모두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로 살기 원하는 결단이 있기를 원한다.

 

 

1. 여호와의 산-위대하신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

 

오늘 본문에서는 먼저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찬양하면서 시작되고 있다.

 

1) 위대하신 하나님1-모든 것을 소유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천지만물의 주인이시라는 것이다.

 

1.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가운데에 사는 자들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여러분이여. 사실 세상에는 대단한 것들이 많이 있다. 사람들은 그 일부만 가져도 떵떵거리며 큰소리친다. 누군가 100억쯤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 보라. 그것은 세상의 모든 돈 중에 극히 일부이다. 그러나 그 자체로 엄청한 액수이며 그 정도면 큰소리치고도 남는다. 여러분은 100억이라는 개념이 와 닿는가? 나는 1억이라는 개념도 잘 납득이 되지 않는다.

 

누군가 100억을 쓰는 방법과 버는 방법을 적어놓은 글이 있다. 한번 들어보시라.

 

100억을 쓰는 법

- 초호와 맨션 20

- 수입 스포츠카 약 50

- 자유시간 초코바 33333333

- 콜라 28571428

- 500원 상당의 라면 2000만개 [참고로 이것은 한명을 기준으로 해서 1826410개월 ??일치 식량이며 100억만 있으면 대대손손 손자, 며느리, 손자, 손자, 며느리, 며느리 손자... 손 하나 까딱안하고 살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 2만원 상당의 피자 50만판 [456716일치]

- 10원짜리 껌 10억개 [이론상으로는 100억원어치 껌을 한번에 씹어서 뱉을 경우 집한채 뭉개버리는 건 유()도 아니다]

- 80 만원 상당의 펜더 스탠다드 기타 12500

- 20만원 상당의 40W 마샬앰프 50000

- 일본행 왕복 비행기표 25000

- 통신 사용료 841751개월분

- 200원짜리 오락 50000만판 [여한없이 오락하다가 눈 돌아갈 것이다..]

 

100억을 버는 법

- 일당 8만원하는 노가다판을 뛴다..[3425개월 20일 동안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천둥, 벼락, 우박이 떨어지나 변함없이 해야 하며 그 동안 한푼도 쓰면 안된다.]

- 한달에 10만원 받는 신문배달을 한다.. [83334개월]

- 길에 떨어져있는 10원짜리 동전을 10억개를 줍는다.

- 엄마에게 통신을 안할테니 남는 전화비 5만원을 매달 달라고 한다. [166668개월]

- 버스 요금에서 10원씩 남긴다. 이런식으로 버스를 10억번탄다..

- 레코드를 취입해서 666666장을 판다. , 모두 15000원짜리 CD로 해야 하고, 노래도 자신이 부르고, 연주도 자신이 하고, 프로듀서도 자신이 하고, 작고도 자기가 하고, 매니저, 음반 회사도 자신이 차려야 하며, 레코드 소매점도 자신이 해야 한다.

 

그러니 100억쯤 있는 사람이 큰소리칠만도 하다.

 

요즘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화제가 되고 있는 인물이 있다. 박찬호라는 야구선수이다. 텍사스팀과 5년 계약을 했는데 910억을 받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것을 나누어 보면 하루에 5000만원 정도를 번다고 한다. 그 부모는 아들 자라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박찬호 자신도 자기자신을 보며 뿌듯해 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100억 정도가 아니고 910억 정도가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소유하신 분이시다. 산천초목을 비롯해 우주만물이 다 하나님의 것이다.

 

더구나 인간과 달리 하나님은 잠시 소유하시는 분이 아니시라 영원히 소유하시는 분이시다. 인간은 절대로 영원히 소유할 수 없는 존재이다. 인간의 존재 자체가 유한하기 때문이다. 삼성의 창업자인 이병철씨는 지금 삼성의 주식을 하나도 갖고 있지 못하다. 죽은 자가 어떻게 가질 수 있으며 가진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형대의 창업자 정주영씨도 마찬가지 아닌가? 존재 유한이 소유 유한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 한분만이 모든 것을 소유하실 뿐 아니라 영원히 소유하신다. 위대하신 하나님이신 것이다.

 

2) 위대하신 하나님2- 모든 것을 친히 세우신 하나님

 

더 나아가 하나님의 위대하심은 천지만물을 소유하실 뿐 아니라 그 모든 것을 친히 세우셨다는 데에 있다.

 

2. 여호와께서 그 터를 바다 위에 세우심이여 강들 위에 건설하셨도다

 

-천지창조-창세기

“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3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4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5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1)

 

욥기-창조에 대한 이야기

“4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가 깨달아 알았거든 말할찌니라 5 누가 그 도량을 정하였었는지, 누가 그 준승을 그 위에 띄웠었는지 네가 아느냐 6 그 주초는 무엇 위에 세웠으며 그 모퉁이 돌은 누가 놓았었느냐 7 그 때에 새벽 별들이 함께 노래하며 하나님의 아들들이 다 기쁘게 소리하였었느니라”(38)

 

고난과 시련이 너무 크고 계속되자 하나님께 원망하며 불평하는 욥에게 창조 이야기를 하신 이유는 분명하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도 다 이해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하나님을 다 아는 듯이 말할 수 잇느냐는 것이다.

 

나와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의 창조주이심을 고백한다. 어떻게 그것을 알 수 잇느냐고 세상 사람들이 우리에게 물으면 우리는 분명히 대답한다. 믿음으로 안다고. 사실 믿음의 눈이 아니고는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세계 아닌가? 하나님이 아니신가? 하나님의 창조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믿음의 눈을 가지고 보면 영적인 세계는 우리 육신의 눈으로 보는 이 세상 이상으로 분명한 실체가 된다. 너무 명확해서 부인할 수가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창조도 우리는 믿음의 눈으로 볼 때 비로소 바라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성경은 말씀한다.

“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2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3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11)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 사람들은 일부를, 그것도 잠시만 소유할 뿐이지만 하나님은 모든 것을, 영원히 소유하신다고 했다. 그러나 사람은 절대로 일부도, 잠시도 창조에는 참여할 수 없다. 다만 그 자신이 하나님에 의해 지음 받은 피조물일 뿐이다. 하나님만이 모든 것의 창조주이시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창조주이신 것이다. 위대하신 하나님이 아니신가?

 

3) 여호와의 산-위대하신 하나님이 머무시는 곳

 

그리고 이 위대하신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을 오늘 본문에서는 여호와의 산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서두에서 언급한 거룩한 대로도 마찬가지 개념이다.

 

사실 성경에서 산은 상당히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산은 크다. 산은 듬직하다. 산은 그 지속성이 대단하다. 어느 누가 산을 무너뜨릴 수 있겠는가? 물론 요즘에는 기계가 하도 발달해서 산을 무너뜨리고 터널을 뚫기도 하지만 옛사람들에게 산은 도저히 허물거나 무너뜨릴 수 없는 거대한 존재였던 것이다.

 

하긴 오늘날도 사람들이 무너뜨리는 산은 작은 산이거나 산의 일부분이지 큰산이나 산 전체는 아니다. 예를 들어 아무리 발달한 기계를 동원해도 한라산이나 백두산을 드러낼 수는 없다. 에베레스트산은 더 말할 것도 없고...

 

그만큼 산은 거대하고 요동치 않는 존재이며 그러기에 하나님을 연상시키는 자연이기도 하다.

 

시편 121편에 시편기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1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2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121)

 

이런 의미에서 위대하신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을 여호와의 산이라고 묘사를 하게 되는 것이다.

 

 

2.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

 

그리고 위대하신 하나님이 거하시는 여호와의 산은 아무나 오를 수 잇는 곳이 아니라고 오늘 본문에 말씀하고 있다.

 

“3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 누구며 그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군고라고 시편기자는 물으면서 그 예로 네가지를 언급하고 있다.

 

4절이다. “4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데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치 아니하는 자로다

 

1) 손이 깨끗한 자

 

누가 여호와의 산에 오를 수 있는가?

 

첫째로 손이 깨끗한 자이다.

 

여러분 손이 깨끗하다는 말이 무슨 말인가?

 

대니엘 웨브스터라는 미국 정치인의 어린 시절에 관한 이야기이다. 웨브스터가 어려서 학교에 다니던 때에 하루는 교칙을 어기어 벌을 받게되었다. 선생이 그를 불러다 세워놓고 벌을 주는데, 손바닥을 때리는 것이 보통 흔하게 쓰이던 "체형"의 방법이었다.

 

대니엘은 두 손이 다 형편없이 더러웠다. 그것 때문에 야단을 더 맞을 것이 분명하였다. 그래서 선생님의 책상으로 불려가는 도중에 오른 손바닥에 침을 발라 양복바지에다 문질러서 닦았다.

"손 내놔라!"

선생님이 호령하였다.

대니엘은 침칠해서 좀 닦은 오른 손을 내놓았다. 그 손을 보자 선생님은 즉시 이렇게 말했다.

"대니엘, 이 교실에서 너의 이 손보다 더러운 손을 찾으면, 이번만은 너를 용서해주마!"

즉각적으로 등 뒤에 숨겼던 왼손을 내 보이며 소년이 말했다.

"선생님, 여기 있습니다."

그 손을 보자 선생님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이렇게 소리쳤다.

"그만하면 됐다. 이번만은 용서해 두지. 네 자리에 가서 앉아도 좋다."

 

손이 깨끗하다는 말은 대니엘의 그 더러운 손을 수돗물로 씻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손이 깨끗하다는 것은 흠 없이 깨끗한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들이 하는 거의 모든 것은 사실 사람의 손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 손이 깨끗하다는 것은 삶 전체를 상징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손은 깨끗하신가? 다시 말해 여러분의 삶은 교회에서나 세상 속에서나 흠없이 깨끗한 삶이 되고 있는가?

 

많은 사람들은 교회와 세상 속에서 서로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 교회에서는 믿음 좋은 집사님인데 집에서는 폭군 남편이요 독제적인 아버지인 사람들이 많이 있다. 교회에서는 열심있는 여전도회 임원인데 집에서는 살림을 팽개쳐 두고 남편이나 자녀의 식사나 건강에 관심이 전혀 없는 주부가 많이 있다. 교회에서는 열심히 봉사하고 성실한데 학교나 집에가서는 뺀질거리는 학생이요 속썩이는 자녀인 아이들이 많이 있다.

 

그럼에도 그들을 칭찬해 준다면 교회는 잘못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교회의 빛이 아니라 세상의 빛이기 때문이다.

 

어디 가정에서 뿐인가? 세상에 들어가 살면서 예수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흠없이 깨끗한 삶을 살아가야 한다. 뇌물을 단호하게 거절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자리는 담대히 거절해야 하지 않겠는가? 처음에는 미움 살지 몰라도 후에는 참그리스도인으로 인정받게 될 것이다. 곳곳에서 다가오는 불의와 유혹은 물리쳐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살 때 하나님의 능력도 도움도 우리의 것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 보시기에, 사람들 보기에 깨끗한 삶을 살았고 그 덕분에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은 대표적인 인물 중 하나로 히스기야 왕이 등장한다.

 

-히스기야의 성전 정결

“1 히스기야가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이십 오세라 예루살렘에서 이십 구년을 치리하니라 그 모친의 이름은 아비야라 스가랴의 딸이더라 2 히스기야가 그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3 원년 정월에 여호와의 전 문들을 열고 수리하고 4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을 동편 광장에 모으고 5 저희에게 이르되 레위 사람들아 내 말을 들으라 이제 너희는 성결케 하고 또 너희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을 성결케 하여 그 더러운 것을 성소에서 없이하라”(대하 29)

 

-우상제거

“1 이 모든 일이 마치매 거기 있는 이스라엘 무리가 나가서 유다 여러 성읍에 이르러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유다와 베냐민과 에브라임과 므낫세 온 땅에서 산당과 단을 제하여 멸하고 이스라엘 모든 자손이 각각 그 본성 기업으로 돌아갔더라”(대하 31)

 

-위기에서의 구원와 존귀/앗수르라는 강대국이 쳐들어 왔을 때

“20 히스기야왕이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로 더불어 하늘을 향하여 부르짖어 기도하였더니 21 여호와께서 한 천사를 보내어 앗수르 왕의 영에서 모든 큰 용사와 대장과 장관들을 멸하신지라 앗수르 왕이 얼굴이 뜨뜻하여 그 고국으로 돌아갔더니 그 신의 전에 들어갔을 때에 그 몸에서 난 자들이 거기서 칼로 죽였더라 22 이와 같이 여호와께서 히스기야와 예루살렘 거민을 앗수르 왕 산헤립의 손과 모든 적국의 손에서 구원하여내사 사면으로 보호하시매 23 여러 사람이 예물을 가지고 예루살렘에 와서 여호와께 드리고 또 보물로 유다 왕 히스기야에게 드린지라 이 후부터 히스기야가 열국의 눈에 존대하게 되었더라”(대하 32)

 

삶이 흠없이 깨끗할 때 하나님께는 영광이요 우리에게는 축복이요 불신자에게는 빛으로 드러난다.

 

그런데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 오늘날 교회의 비극이다. 세상을 교회를 보면서 자신들과의 차이를 발견할 수 없는 것이다.

 

여러분은 어떠하신가?

 

혹시 교회에서만 신자이고 세상 속에서는 불신자가 아닌가? 하나님 앞에 예배드릴 때만 아멘 하고 세상 속에서는 노멘하지 않는가? 세상 사람들보다 정결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똑같이 아니 그보다 더 심하게 냄새를 피우며 살아가지는 않는가?

 

분명히 기억하시라. 그 손이 깨끗한 자가 여호와의 산에 오른다는 사실을 말이다.

 

2) 마음이 청결한 자

 

누가 여호와의 산에 오를 수 있는가?

첫째로 손이 깨끗한 자라고 했다.

 

둘째로 마음이 청결한 자이다.

 

마음이 청결하다고 하는 것은 외면적 행동뿐 아니라 내면적으로도 자세를 바로는 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동기의 순수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은 얼마든지 겉과 속이 다를 수 있는 존재이다. 가난한 사람을 위해 구제하는 듯이 보이면서도 실상은 가난한 사람들에겐 관심이 없고 자신의 명예에만 관심이 있을 수 있다. 온갖 격식을 갖추어 수많은 예배를 드리면서도 오래 믿은 자라는, 장로라는, 권사라는 체면으로 예배할 수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선량하고 부드럽게 행동하면서 속으로는 사악하고 날카로울 수 있다. 사람들이 지켜볼 때는 거룩한 모양을 하면서도 아무도 없는 은밀한 곳에서는 온갖 죄악을 저지를 수 있다.

 

순종하는 것도 그렇다. 겉으로는 순종하는 것 같은데 마음으로는 이미 불순종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아시는가? 순종은 마음으로부터 이루어져야 하는데 자신의 위치나, 체면, 관계 때문에 마지못해 순종하는 것처럼 자신을 보이는 것이다.

 

`위클리프 성경 번역회'라는 선교 기관은 글이 없는 곳까지 들어가 말을 만들어 주면서 성경을 번역하는 사업을 한다. 남미의 어느 부족에게 한 선교사가 들어가 말을 만들고 성경을 번역하는데 `순종'이라는 단어가 막혔다. 그러던 어느날 그 마을의 한 아버지가 아들에게 심부름을 시키는 장면이 눈에 띄었다. 그 일을 꼭 해야 한다고 하면서 "네 모든 마음으로"라고 강조하였다. 그리고 심부름 가는 아들에게 "네 마음을 나누지 말라"라고 조심시켰다. 이 선교사는 `순종'이라는 말을 "마음을 나누지 않고 모든 마음으로 따라가는 것"이라고 번역하였다.

 

참 잘된 번역이다. 마음이 따라야 진정한 순종이기 때문이다.

 

사실 세상에서는 마음이란 게 그다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마음을 읽을 수 없기 때문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이나 사람이 나타내는 업적, 그리고 결과에 의해서 평가하고 판단하는 세상 속에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서로가 속이고 속으며 살아가는 것이다. "네가 그럴줄 몰랐어"하는 소리를 자꾸만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속지 않으신다. 은밀한 중에 이루어지는 모든 것을 다 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속일 수 없었던 아나니아와 삽비라

“1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그 아내 삽비라로 더불어 소유를 팔아 2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그 아내도 알더라 얼마를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 3 베드로가 가로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4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임의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 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5 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엎드러져 혼이 떠나니 이 일을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하더라 6 젊은 사람들이 일어나 시신을 싸서 메고 나가 장사하니라”(5)

 

기억하시라. 하나님은 우리 마음 속에서 이루어지는 수많은 작업들을 다 읽으신다.

 

그러기에 진정으로 하나님을 안다 하는 자들은 자시의 행동 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까지도 돌아본다.

 

어찌보면 마음이란 것이 행동보다 우선하다. 마음이 받침되지 않은 행동은 위선이며 마음이 있으면 행동도 따라오기 때문이다.

 

주님은 죄를 말씀하시면서 행동보다 동기와 마음에 초점을 두고 말씀하셨다.

“27 또 간음치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28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5)

 

사랑하는 여러분이여. 부디 마음을 청결히 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란다. 매일같이 자복하는 기도로 자신의 심령을 씻으시고 하나님 앞에 자신의 마음을 가꾸어 나가실 수 있기를 바란다.

 

무엇보다 성령으로 충만해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란다. 사람이 성령으로 충만하면 그 속에서 온갖 부정적이고 잘못된 것들이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3) 뜻을 허탄한데 두지 않는 자

 

누가 여호와의 산에 오를 수 있는가?

첫째로 손이 깨끗한 자라고 했다. 둘째로 마음이 청결한 자라고 했다.

 

셋째로 뜻을 허탄한데 두지 않는 자라고 오늘 본문에 말씀하고 있다.

 

뜻을 허탄한데 둔다는 것은 영원히 누릴 수 있는 것이 못되는 것, 참으로 가치가 적은 것, 궁극적으로 유익이 되지 못하며 오히려 자신을 망하게 하는 것에 마음을 빼앗긴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실상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도 그 뜻을 허탄한데 두는 사람들이 많다. 영원한 것, 궁극적인 것, 가치있는 것이 아닌 쓸모없는 것들에 인생을 마구 낭비하는 것이다.

 

시랑하는 여러분이여. 술자리는 여러분의 인생에 도움을 주는 자리인가? 아니면 망하게 하는 자리인가? 여기저기 흥청이며 즐기는 것은 가치있는 것인가 아니면 쓸모없는 것인가?

 

이런 말을 하면 어떤 사람들은 반문한다. “아니 목사님. 예수 믿으면 그렇게 재미없이 살아야 합니까?”. 그들에게 묻고 싶다. “그게 그렇게 재미있습니까?”. 내가 보기에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은 정말 재미있는 것이, 정말 우리를 기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경험해보지도 못한 사람이다. 태양빛을 경험하지 못하고 네온싸인만 아름답다고 말하는 사람이다. 신앙생활은 재미있는 것이다. 말씀에 순종하는 생활은 행복한 것이다. 주를 위해 충성하는 것은 세상이 가져다주는 그 어떤 기쁨과 비교할 수 없는 기쁨의 원천이다. 문제는 알지도 못한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여러분이여. 세상의 영광과 재미는 안개와 같은 것이다. 꽉 찬 것 같지만 해가 뜨면 스르르 사라져버리는 허무한 것들이다. 세상의 유익과 기쁨은 이슬 같은 것들이다. 영롱한 듯 하지만 곧 말라버리든지 땅에 떨어져 사라져버리고 만다. 세상의 명예와 소망은 풀의 꽃과 같은 것이다. 뜨거운 바람이 불면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는 법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한다.

"6 말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외치라 대답하되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가로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 같으니 7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8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 하라"(40)

 

"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1 2)

 

나는 부디 여러분이 허탄한데 뜻을 두지 않기를 소원한다. 정말 가치있는 하늘의 일에 여러분의 뜻을 둘 수 있기를 소원한다.

 

4) 거짓 맹세하지 않는 자

 

누가 여호와의 산에 오를 수 있는가?

첫째로 손이 깨끗한 자라고 했다. 둘째로 마음이 청결한 자라고 했다. 셋째로 뜻을 허탄한데 두지 않는 자라고 오늘 본문에 말씀하고 있다.

 

넷째로 거짓맹세하지 않는 자이다.

 

거짓맹세하지 않는다는 것은 자신의 말을 지키지 않는 불성실한 태도를 갖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요즘은 성실한 사람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자기가 한 말에 대해서 책임을 지지 않는다. “이제는 정말 열심히 주님을 섬기겠습니다하고는 그 말을 지키지 않는다. “이번에는 꼭 갈게요. 열심히 봉사할게요하고는 나타나지를 않는다. 한두주 지키면 잘 지키는 것이다. 그만큼 신실성이 없고 책임감이 없는 것이다.

 

물론 사람이 연약하기 때문에 그럴 수는 있다.

 

베드로도 그랬다.

 

-예수님의 부인예고와 베드로의 장담

“27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이는 기록된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들이 흩어지리라 하였느니라 28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29 베드로가 여짜오되 다 버릴찌라도 나는 그렇지 않겠나이다 30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이밤 닭이 두번 울기 전에 네가 세번 나를 부인하리라 31 베드로가 힘있게 말하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찌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이와 같이 말하니라”(14)

 

-멀찌기 예수를 따라가는 베드로

“53저희가 예수를 끌고 대제사장에게로 가니 대제사장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이 다 모이더라 54 베드로가 예수를 멀찍이 좇아 대제사장의 집 뜰안까지 들어가서 하속들과 함께 앉아 불을 쬐더라”(14)

 

-예수를 부인하는 베드로

“66 베드로는 아래 뜰에 있더니 대제사장의 비자 하나가 와서 67 베드로의 불 쬠을 보고 주목하여 가로되 너도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거늘 68 베드로가 부인하여 가로되 나는 네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겠노라 하며 앞뜰로 나갈쌔 69 비자가 그를 보고 곁에 서 있는 자들에게 다시 이르되 이 사람은 그 당이라 하되 70 또 부인하더라 조금 후에 곁에 서 있는 사람들이 다시 베드로에게 말하되 너는 갈릴리 사람이니 참으로 그 당이니라 71 베드로가 저주하며 맹세하되 나는 너희의 말하는 이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72 닭이 곧 두번째 울더라 이에 베드로가 예수께서 자기에게 하신 말씀 곧 닭이 두번 울기 전에 네가 세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기억되어 생각하고 울었더라”(14)

 

야곱도 그랬다.

 

-벧엘에서의 서원

“18 야곱이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베개하였던 돌을 가져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19 그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 이 성의 본 이름은 루스더라 20 야곱이 서원하여 가로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사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주사 21 나로 평안히 아비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22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28)

 

-무사히 돌아와서는 벧엘로 가지 않고 숫곳에 머무는 야곱

“17 야곱은 숙곳에 이르러 자기를 위하여 집을 짓고 짐승을 위하여 우릿간을 지은고로 그 땅 이름을 숙곳이라 부르더라”(33)

 

-야곱의 시련

“1 레아가 야곱에게 낳은 딸 디나가 그 땅 여자를 보러 나갔더니 2 히위 족속중 하몰의 아들 그 땅 추장 세겜이 그를 보고 끌어들여 강간하여 욕되게 하고 3 그 마음이 깊이 야곱의 딸 디나에게 연련하며 그 소녀를 사랑하여 그의 마음을 말로 위로하고 4 그 아비 하몰에게 청하여 가로되 이 소녀를 내 아내로 얻게 하여 주소서 하였더라”(34)

 

-뒤늦게 약속 이행하는 야곱

“2 야곱이 이에 자기 집 사람과 자기와 함께한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 중의 이방 신상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케 하고 의복을 바꾸라 3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나의 환난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나의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단을 쌓으려 하노라 하매 4 그들이 자기 손에 있는 모든 이방 신상과 자기 귀에 있는 고리를 야곱에게 주는지라 야곱이 그것들을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 묻고 5 그들이 발행하였으나”(35)

 

사랑하는 여러분. 전혀 넘어지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그게 상습적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여러분의 입으로 한번 하겠다고 했으면 끝까지 그것을 지키는 성실한 사람이 되시기를 바란다. 이 교회에는 그와 같은 사람들이 필요하며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을 통하여 큰일을 이루시고 그 사람을 놀랍게 사용할 것이다.

 

음악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작곡가 바하는 라이프치히에 있는 성 토마스 교회의 오르가니스트로 일하고 있었다. 그는 주일마다 부르는 성가대의 노래를 새로 작곡하는 일을 했다. 그러나 그가 작곡한 노래들은 출판되지도 못했고 별도의 작곡료를 받은 바도 없었다. 절망적이고 열받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 일을 집어치우지 않았다. 그는 매주일 꾸준히 사명감과 신앙으로 그 일을 계속했다.

사랑하는 여러분이여. 바보같은 바하인가? 아니다. 훗날 바하의 음악 세계를 이룩하는 데 있어서 보수도 없이 매주일 작곡했던 그 곡들이 기초가 되었다. 바하가 만든 265개의 오르간곡과 263개의 합창곡과 162개의 피아노곡, 그리고 그 외에도 수백 개의 오르간곡들은 그가 날마다 주일마다 꾸준히 작곡했던 성실과 신실성이 낳은 작품들이었던 것이다. 누구든지 일을 맡는 것은 쉽다. “앞으로 어떻게 하겠습니다하고 말하는 것도 쉽다. 그러나 그 일에 신실과 성실을 다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한 차례의 충성은 쉽지만 일생 충성은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어려운 가운데서도 성실함을 보일 수 있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란다. 여러분이 한 한 약속에 대해서 분명히 책임을 질 수 잇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란다.

 

 

결론

 

말씀을 맺으려고 하다. 여러분이 오늘 들은 말씀을 오해하지 마시기를 바란다. 마치 행실로 구원받는 것처럼 말이다. 구원은 우리의 행실로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행위로 구원받을 수 있을 만큼 완전한 사람은 결코 없기 때문이다. 오직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받는 것이다.

 

문제는 구원받은 백성이라고 하면서 여호와의 산에 오른 자로 살아가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정말로 구원받은 자라면 그렇게 살아갈 수 없다. 하나님이 계심도 알고 우리의 인생이 하나님 앞에서 판가름 날 것도 아는데 어떻게 마구잡이로 살아갈 수 있겠는가?

 

행위를 통하여 구원받는 것이 아니고 믿음으로 구원받지만 정말 구원 받은 자는 행위도 변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을 기억하시라. 나무가 달라지면 열매도 달라지는 것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세상은 거짓과 진리가 뒤섞여 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차이가 없어진다. 그러나 속지 마시라. 마침내 알곡과 쭉정이가 구분될 날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부디 여러분이 구원받은 백성이라면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로 살아가시기를 결단하시고 기도하시라.

 

-여러분의 삶을 깨끗이 하라. 세상에 물들지 않는 여러분이 되시라.

-여러분의 마음을 정결케 하라. 하나님의 은혜로 여러분의 심령을 가득히 채우시기를 바란다.

-부디 허탄한데 뜻을 두지 마시라. 여러분의 인생이 허탄해지지 않도록 영원한 것이 뜻을 두시라.

-거짓맹세하지 않는 여러분이 되시라. 하나님과 사람 아에서 한 여러분의 말을 성실히 행하시기를 바란다.

 

나와 여러분 모두가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가 될 수 있기를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