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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를 넘은 '등록금 본전 뽑기'…비싼 등록금에 대한 보상심리?김형원 기자 wo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안희환2 2011. 7. 14. 22:05

도를 넘은 '등록금 본전 뽑기'…비싼 등록금에 대한 보상심리?

입력 : 2011.07.14 16:03 / 수정 : 2011.07.14 16:44

출처=조선일보DB
부산의 한 국립대에 재학하는 김모(23)씨는 최근 황당한 경험을 했다. 캠퍼스 내에서 쓰레기를 마구 버리는 후배를 나무랐더니, “학교 내 청소 아주머니들도 다 우리 등록금으로 일하는 건데, 이렇게 해서라도 본전을 뽑아야 하지 않겠느냐”라는 대답이 돌아온 것이다. 김씨는 “순간적으로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난감했다”면서 “최근 비싼 등록금에 대한 학생들의 반발심리가 엉뚱한 ‘등록금 본전 뽑기’로 돌아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엉뚱한 ‘등록금 본전’뽑기…“학교 비품은 내 것”
대학생들이 비싼 등록금을 ‘만회’하기 위해 학교 내 공공재를 낭비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여기엔 ‘등록금 현실화’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는데도 등록금과 계절학기 수업료는 오히려 오르는데 대한 불만 심리도 들어있다.

서울 어느 사립대의 영문학과에 재학 중인 김모(26)씨는 지난 학기에 등록금으로 380여만원을 냈다. 여기다 여름방학을 맞아 신청한 계절학기 수업료가 50만원이다. 학교 근처에서 자취하는 김씨는 집 쓰레기를 모아놨다가 등교할 때 가지고 나와 학교 휴지통에 버린다. 휴지나 치약도 따로 사지 않는다. 교내 화장실에서 모두 가져오기 때문이다. 김씨는 “쓰레기봉투나 치약 등에 드는 돈이 아까워서라기보다는, 비싼 등록금을 이렇게나마 ‘벌충’해야겠다는 생각에 그렇게 하고 있다”면서 “비단 나뿐만이 아니라 주위의 친구들도 당연한 듯이 그렇게 한다”고 말했다.

서울 어느 여자대학을 다니는 김모(23)씨도 “장마철을 맞아 자췻집 화장실에서 역한 냄새가 나기에 학교 화장실 비품칸에 있는 나프탈렌을 가져왔다”면서 “수퍼마켓에서 방향제를 사기에는 돈이 아까웠다”고 말했다.

교내 휴지와 신문 등을 필요한 이상 가져오는 경우도 빈번하다. 지난해 경남의 한 사립대를 졸업한 김모(27)씨는 “내가 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교내에 비치된 신문을 10부 이상 가져와 깔개 등으로 사용했다”면서 “자취생들이 밤마다 비품을 가져오는 것을 두고 ‘휴지서리’, ‘신문서리’라는 말이 생기기도 했다”고 말했다. 진짜 생활비가 부족해 휴지를 가져가는 경우도 있지만 최근엔 비싼 등록금에 대한 불만 심리가 다분히 들어있다는 것이다.

◆우리 집도 아닌데…전기, 에어컨 마구 틀어
학교 내 비품뿐만이 아니다. 에어컨과 전등 등도 과소비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성균관대학교에 재학하는 김모(24)씨는 “대학교 도서관은 스탠드 방식으로 되어 있는데, 수업을 들으러 가거나 볼 일이 있을 때 그냥 틀어놓고 가는 경우가 많다”면서 “솔직히 집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전기를 마음대로 쓰는 것은 비싼 등록금을 낸 ‘학생의 권리’라는 것이다.

모 사립대의 미술대학을 다니는 정모(21)씨는 지난달부터 학교 시설관리팀에 계속해서 항의전화를 걸었다. 중앙통제식으로 운영되는 에어컨이 저녁 무렵이면 꺼지기 때문이다. 정씨는 “밤늦게까지 남아 작업하는 경우가 많은데, 저녁이면 에어컨이 꺼진다”면서 “학교에서 미대 등록금이 510만원으로 제일 비싼데, 그 돈으로 다 뭐 하는 것이냐고 항의했다”고 말했다. 같은 학과의 하모(22)씨도 “학생들이 쾌적한 환경에서 배울 수 있도록 해주는 게 대학의 기본 역할이 아니냐”고 말했다.

여름방학을 맞아 계절학기를 듣는 김모(26)씨는 “방학이라 혼자 텅 빈 강의실에 들어가서 에어컨을 종일 틀어놓고 공부를 한다”면서 “간혹 에어컨을 켜두고 집으로 돌아가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등록금을 냈기 때문에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14일 오후 모 사립대학교 빈 강의실에서 한 학생이 혼자 공부를 하고 있다. /박조은 인턴기자(숙명여대 국문학 4년)
◆대학생 10명 중 6명 “등록금 만회 위해 학교 내 공공재 마음대로 쓴다”
실제 지난 8일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대학생 534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대학생의 58.8%(복수응답)는 자신이 낸 비싼 등록금을 ‘만회’하기 위해 “학교 내 공공재를 마음껏 쓴다”고 대답했다.

학교 내의 ‘수업 프로그램’을 최대한 활용해 ‘본전’을 챙긴다는 대답도 많았다. 49.1%는 “학교에서 실시하는 무료강좌, 프로그램을 최대한 활용한다”고 응답했다. 44.8%는 “최대한 많은 강의를 신청해서 듣는다”고 대답했고, 22.8%도 “학교시설 보완이나 강좌개설 등을 학교 측에 적극적으로 건의한다”(22.8%)고 답했다. “학교 비품이나 신문, 잡지 등을 집에 가져간다”(20.0%), “내가 신청하지 못한 강의도 몰래 도강한다”(10.3%)는 응답도 눈길을 끌었다.

출처=조선일보DB
한 사립대학 시설지원팀 관계자는 “간혹 미술대학 학생들이 화장실에서 점보롤 화장지를 빼가는 경우가 있다”면서 “이 같은 일이 연이어 발생해 청소하시는 아주머니들이 (화장실 비품칸을) 열쇠로 잠근다”고 말했다. 서울시립대 시설관리팀 관계자도 “비품칸을 잠가놓으면 간혹 케이스 자체가 부서지는 경우도 발생한다”면서 “복도에 CCTV를 설치했지만 크게 효과가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카이스트 기계공학과 박사과정인 박모(27)씨는 등록금을 내지 않고 대신 기성회비와 수업료만 낸다. 이를 합치면 한 학기에 136만원이 든다. 박씨는 “등록금 스트레스가 없는 만큼 ‘보상심리’는 상대적으로 덜하다”라면서 “물론 학부생들은 다를 수 있지만 일단 국비 장학생들은 그런 느낌이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