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강원도 군사지역을 시찰하던 중 1960년대 연극 '산울림'을 우연히 본 김정일은 "아주 훌륭한 대작이며 연극은 앞으로 우리 혁명을 이끌어 나갈 선전 수단이다"고 치켜세웠다. 이 말을 들은 당 간부들은 말문이 막혔다. '산울림'은 오래전에 만들어진 작품인데 김정일이 최근 만들어진 작품인 양 칭찬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후부터 발생하기 시작했다. 김정일이 연극인들을 대거 평양으로 불러들인 것이다. 영화·예술계에 밀려 예능계에서 최하 말단에서 살아온 연극인들은 갑자기 찾아온 '햇볕'에 감지덕지하고 있다. 연극에 '필이 꽂힌' 김정일은 지은 지 2년도 안 된 국립연극극장이 너무 낡고 좁으니 다시 지으라고 했다. 국가 경제가 말이 아닌데 멀쩡한 극장을 허물고 다시 지으라고 하니 김정일이 제정신이 아니라는 생각이 퍼지기 시작했다.
은하수 관현악단은 2009년 10월 당 창건 64주년 기념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김정일이 후계자 김정은을 치켜세우려고 급조했다. 최근까지 김정일·정은 부자가 함께 참여하는 행사에는 어김없이 은하수 관현악단이 등장해왔다.
은하수 관현악단은 기존의 왕재산 경음악단이나 보천보 전자악단보다 젊고 현대적인 악단이다. 문제는 여성 가수들이 서구식으로 가슴이 깊게 파인 복장을 한 데다 현란한 춤을 추는 무용수들까지 등장한 데 있었다. 평양시민의 배급이 다 끊긴 상태에서 다들 먹고 사는 문제로 골몰하는데 느닷없이 유럽식 악단이 나타나 노래와 춤을 춰대니 사람들은 어이가 없다는 분위기다. 여론이 나빠져 김정은 후계구도에도 악영향을 미치자 지난 6월부터는 은하수 관현악단이 갑자기 쑥 들어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한다.
- ▲ 자료사진/조선일보 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