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환 목회단상

광야는 멋진 곳이다/ 안희환

안희환2 2011. 2. 21. 21:19

광야는 멋진 곳이다/ 안희환

 

 

광야라고 하는 것은 현대인들에게 그다지 좋은 느낌을 주지 못합니다. 풍요로움에 젖어 사는 사람들에게 광야는 낯선 땅인 동시에 거부감이 드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광야 같은 인생을 살라고 하면 고개를 좌우로 흔들면서 도망을 갈 사람들이 많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으며 온갖 편의 시설이 갖추어진 도시라면 모를까 광야에 뭐 하러 갈 것이며 더구나 뭐 하러 그곳에 머물겠습니까?

 

그러나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해보면 광야만큼 좋은 학교가 없습니다. 먼저 광야는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배우는 학교입니다. 물이 없고, 먹을 양식이 없고, 잘 침대가 없고, 화장실이 없고, 칸막이도 없는 곳이 광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한 이후 그 광야를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목말라 죽거나 굶어죽지는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반석에서 물을 내시고 하늘에서 만나를 내리셔서 백성들을 친히 먹이셨기 때문입니다. 애초에 물이 넉넉하고 먹을 것이 넘쳤다면 놀라운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배울 수 없었을 것입니다.

 

광야는 또한 하나님의 지켜주심을 배우는 학교입니다. 광야는 살기 힘든 곳입니다. 낮엔 태양이 살을 태울 듯이 열기를 쏘아댑니다. 반대로 밤에는 한기가 뼛속까지 얼리려는 듯 다가옵니다. 벌레가 있고 전갈이 있고 불 뱀이 있는 광야입니다. 성곽으로 둘러싸인 곳이 아니기에 아말렉같은 노략질하는 부족들에게 공격을 받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절박한 상황 속에서 살 길을 여기고 피할 길을 내십니다. 광야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되고 하나님의 지키심을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광야는 또한 하나님과 가까이 하는 것을 배우는 학교입니다. 광야는 외롭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수다를 떨 수 있는 도시와 달리 적막감이 주변을 둘러싸고 있습니다. 사람은 관계적인 존재인지라 홀로 떨어지면 불안과 두려움을 느낍니다. 그래서 외로움에 몸을 떠는 사람은 손을 내미는 사람에게 쉽게 유혹을 받기도 합니다. 그런 고독의 한 복판에서 하나님을 목말라한다면 외로움은 하나님을 깊이 만나는 통로가 됩니다. 모세가 그랬고 바울이 그랬습니다.

 

제가 성민 교회에서 전도사로 사역할 때의 일입니다. 그때 5층 종탑 방에 살았는데 큰 건물 안에 혼자 살려니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릅니다. 다른 무엇보다 외로움을 극복하기가 너무 어려웠습니다. 5층 종탑 방으로 올라갈 때 그 방 키는 저 하나밖에 가지고 있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방 안에서 저를 기다려주고 있기를 갈망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전혀 불가능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외로움이 저로 하여금 헛된 기대감을 갖게 한 것입니다.

 

저는 귀가 상당히 밝은 편이었습니다. 5층 종탑 방에서 바닥에 귀를 대고 있으면 1층에서 말하는 사람들의 소리를 어느 정도 들을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아래층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리면 제 가슴은 뛰기 시작하였습니다. 누군가 계단을 밟고 올라와 제 방문 앞에 서서 노크하리란 기대 때문이었습니다. 어린 전도사의 방문을 두드리는 사람들이 있을 리 없건만 기다림의 끈을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가장 싫어하는 시간은 예배 후 각각의 모임들이 끝나고 사람들이 흩어질 때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예배를 드리던 시간, 예배 후 각 기관별로 활동하는 시간엔 교회가 떠들썩합니다. 교회 전체가 활기찹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소리는 작아지고 마침내 마지막 한 사람이 교회 문을 나서면 주위가 침묵으로 가득합니다. 그 고요함의 한 가운데 홀로 남아 있게 된 제 가슴 속에는 찬바람이 마구잡이로 밀려들어왔습니다. 그 시간을 견디는 것이 정말 힘들었습니다. 그렇게 5년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돌이켜보면 그 광야 같은 시절이 저에게 큰 복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너무 힘들어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외로움이 사무치면 시를 썼습니다. 일부러 책을 잡고 책속에 빠져 들어갔습니다. 그때 했던 기도와 시 쓰기와 독서가 제 인생 가운데 얼마나 큰 자양분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 속에서 얼마나 많은 것들을 배우고 제 자신이 성장했는지 모릅니다. 스스로가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한 채 그저 참고 견디며 하나님을 찾는 동안 그 모든 일들이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뉴튼의 시 가운데 제 마음에 큰 감동을 주는 시가 있습니다.

 

주님께 간청하였네.

믿음과 사랑과 은혜 안에서 자라게 해주시고,

구원의 기쁨을 깨달아

더욱 진지하게 그분의 얼굴을 구하게 해달라고.

그 분은 내 기도에 응답하셨네.

하지만 거의 나를 절망에 몰아가시는 것으로.

 

혹시 나를 예쁘게 봐주시면

즉각 응답해 주시리라 기대했고,

그 분의 사랑의 능력으로

나의 죄를 가리워 평안을 주시리라 믿었네.

 

하지만 그 분은 내 마음의

숨겨진 죄악들을 모조리 들추어내시더니,

지옥의 분노한 세력들이

사면에서 내 영혼을 공격하게 하셨네.

그래! 마치 그 분 자신의 손으로

나의 고뇌를 심히 더하게 하시려는 것 같았어.

내가 세운 그럴듯한 계획들을 싹싹 지우시더니

나의 조롱박을 깨버리고 나를 낮추셨지.

 

“주님 왜 이러세요!” 나는 떨며 울부짖었네.

“벌레 같은 저를 쫓아다니며 죽이실 작정이세요?”

그때 주님께서 대답하셨네.

“이것이 믿음과 은혜를 요청하는 기도에 대한 응답이란다.”

“내가 주는 시련이

이기심과 교만에서 너를 자유롭게 하고

세속적인 기쁨을 추구하려는 너의 계획을 부수며

오직 내 안에서 모든 것을 찾게 한단다.”

 

저는 이렇게 광야를 고통의 장소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저주의 장소이거나 멸망의 장소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광야의 시간을 죽지 못해 사는 시간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마지못해 하루를 연명해가는 지루한 시간이라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저는 말합니다. 광야는 정말 멋진 곳이라고. 광야만큼 매력적인 장소는 없다고. 광야의 시간만큼 복이 가득 채워진 시간은 없다고. 아직도 광야가 두렵긴 하지만 이제 미워하지는 않습니다. 광야는 우리 주님께 한 걸음 더 가까이 가는 터널인 까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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