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하고 못된 손자 놈이/ 안희환
86세이신 외할머니를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습니다. 오랫동안 제가 불효자 중의 불효자로 지냈기 때문입니다. 간만에 할머니를 만나도 연세 많으신 할머니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계속 하시는 게 싫어서 방에 들어가 책을 읽고는 했으니까요. 그러다 문득 어릴 때 저를 키워주신 할머니께 제가 너무 냉정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할머니가 그토록 좋아하시는 손자인데 제가 너무 배은망덕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후로 할머니께서 하시는 말씀을 귀담아 듣고 제 이야기도 해드리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진지하게 이야기를 주고받고 하는 과정에서 할머니의 아픈 마음을 조금씩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와 함께 저라는 존재가 얼마나 이기적이고 악한 사람인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거꾸로 할머니께서 얼마나 훌륭하신 분이며, 얼마나 큰 희생을 치르셨으며, 얼마나 넓은 사랑을 베풀어주셨는지를 깨달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께서 일찍 돌아가신 후로 홀로 두 딸을 키우셨습니다. 큰 딸이 저의 어머니이시고 작은 딸이 이모이십니다. 아들들도 둘 있는데 친 아들은 아니고 입양하여 키운 분들입니다. 그 분들은 저에게 외삼촌이신데 남이라는 생각이 손톱만큼도 들지 않을 만큼 가깝습니다. 자신이 낳은 자식이 아닌데 둘이나 데려다가 친자식처럼 키우는 것이 힘든 일임에도 할머니는 기꺼이 그 일을 하신 것입니다.
자녀들이 어느 정도 장성한 후 할머니는 다른 사람의 집에서 파출부로 일하셨습니다. 힘들게 번 돈을 할머니를 위해 쓰시지 않고 차곡차곡 모아놓으셨습니다. 그 돈을 계속 모아놓았다면 제법 큰돈이 되었을 텐데 할머니는 그렇게 하지 못하셨습니다. 어렵게 사는 자녀들이 눈에 밟히셨던 할머니가 고생하시며 모은 돈을 자녀들에게 내놓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기를 반복하시니 할머니 수중엔 남는 게 없었습니다.
그리고 노년에 몸에 병을 얻으셔서 일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을 때 부모님 댁(큰 딸)으로 들어오셨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가게 일을 하셨기 때문에 할머니는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살림을 하기 시작하셨고 제 동생이 아내를 잃은 후 그 아이들(조카인 효민과 효리)을 돌보는 일도 맡게 되셨습니다. 다행히 효민이와 효리는 할머니를 참 좋아하고 잘 따릅니다. 할머니는 그 아이들을 많이 예뻐하십니다. 불편한 몸을 이끌고 최선 다해 그 아이들을 보살피십니다.
최근에 할머니를 만나 이야기를 하는 중에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할머니께서 남의 집살이를 하신 세월에 21년이라는 말을 들은 것입니다. 어렴풋한 제 기억으로 10년 정도 파출부 일을 하셨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던 것입니다. 길고 긴 시간들을 외롭게 일하시면서 고생하신 할머니를 생각하니 눈물이 나왔습니다. 그런 할머니를 귀찮게 생각한 제 자신이 못돼 먹은 손자라는 것을 도무지 부인할 길이 없었습니다.
최근에 할머니는 슬픈 일을 겪으셨습니다. 이모 할머니(할머니의 동생)께서 돌아가신 것입니다. 10년이나 어린 동생이 백혈병에 걸려 먼저 돌아가시고 난 후 할머니는 마음이 허해지셨습니다. 꿈에라도 한 번 보고 싶어서 잠자리에 눕기 전에 동생을 부르며 한번 보자고 하시는데 한 번도 나타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저와 만나기 전날 밤에도 동생을 불러보셨다고 합니다.
할머니의 마음에 맺힌 것이 있었습니다. 동생이 백혈병이라는 말을 듣고 자녀들이 주는 용돈을 조금씩 모은 것을 다 털어 100만 원 정도를 겨우 마련하여 그것을 병든 동생 병원비에 보태라고 하였는데 결국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셨기 때문입니다. 평소에 가끔 동생이 찾아오면 택시비라도 줘서 보냈어야 했는데 매정하게 그냥 보냈다고 하시며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연말이기 때문에 정신없이 바쁜 시점이기는 하지만 저는 다른 일 하지 않고 할머니와 마주 앉아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기운도 없으신데 반듯하게 앉으신 채 손자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시는 할머니를 보면서 마음이 무너지는 줄 알았습니다. 정말 다행입니다. 돌아가시기 전에 조금이나마 할머니의 귀함을 느낄 수 있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틈나는 대로 전화도 드리고 찾아뵙기도 할 생각입니다. 그냥 돌아가셨더라면 평생 할머니를 떠올릴 때마다 땅바닥을 칠 뻔 했습니다.
젊을 때 암송한 성경 구절들을 지금도 또렷하게 암송하시면서 말씀대로 살려고 몸부림치시는 할머니.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제게 너무 귀하신 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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