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환사랑이야기

만우절 거짓말에 속은 후/ 안희환

안희환2 2009. 4. 2. 11:40

만우절 거짓말에 속은 후/ 안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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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병운에게서 문자가 왔습니다. "아무 말 없이 가게 돼서 죄송해요. 저 지금 싱가폴 가려고 인천공항으로 가고 있습니다." 순간 제 마음이 어두워졌습니다. 싱가포르는 병운이의 남자 친구가 있는 곳이고, 남자 친구가 싱가포르에 가기 전 결혼식을 올리고 함께 가려고 서두르다가 양쪽 집안이 발칵 뒤집힌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제게까지 전화가 와서 도움을 청하는 가족이 있었고 결국 결혼이 연기된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병운이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병운아 어떻게 된 거냐?" "인천국제공항으로 가고 있는 중입니다." "부모님에게 허락은 받았냐?" "아니요. 그냥 가는 거에요."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했잖아..." 하면서 제 언성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병운이의 웃음이 터졌습니다. 알고 보니 만우절이라고 장난을 친 것이었습니다. 안도의 숨을 내쉼과 동시에 저는 그만 맥이 풀리고 말았습니다.

 

그로부터 몇 시간이 지난 후 몇 청년들이 이야기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최성호가 다쳐서 병원에 입원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장 내일 시간을 비워서 병원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 역시 한방 먹은 것임을 금방 알게 되었습니다. 성호가 다른 청년들에게 장난을 친 것이었고 그 청년들과 제가 다 속은 것이었습니다. 오늘 완전히 스타일 구기는 날인가 봅니다.

 

그러나가 문득 친구인 하우형 생각이 났습니다. 몇 년 전 일입니다. 저는 우형이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우형아 나 많이 아파. 너무 아파서 병원에 입원했어." 만우절이라 장난을 친 것이었습니다. 기운이 다 빠진 소리로 전화한 것이 효과가 있었는지 우형이는 병문안을 오겠다고 합니다. 저는 희명병원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어떻게 찾아가야 하는지 길 안내도 해주었습니다.

 

한참 시간이 지난 후 우형이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희환아. 나 지금 희명병원에 와 있는데 네가 입원한 병실이 안 나와." 제가 장난을 쳐놓고도 놀라고 말았습니다. 그와 동시에 웃음이 나왔습니다. 저는 우형이에게 말했습니다. "나 지금 집에 있어." 그날 우형이는 뿔이 났습니다. 꽤 먼 거리에서 희명병원까지 왔기 때문입니다. 두 차례에 걸쳐 만우절 장난에 속은 후 바로 위의 사건이 생각났습니다. 심은 대로 거둔다는 말이 맞나 봅니다.

 

만우절에 장난으로나마 거짓말을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는 제 눈에 재미있는 기사가 들어왔습니다. 그 내용을 읽으면서 기사조차도 만우절용 기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대형사고로 운항이 중단된 초음속 여객기 콩코드가 다시 하늘을 날게 되었다는 기사, 모델 출신인 카를라 브루니 프랑스 대통령 부인이 영국 정부의 위촉을 받아 영국인들의 '패션 해결사'로 나선다는 기사 등이 그 예입니다.

 

2003년도에는 더 충격적인 만우절 거짓 기사가 있었는데 빌 게이츠 당시 마이크로소프트 회장 피살 기사입니다. 빌 게이츠가 괴한의 총탄에 맞아 살해됐다고 긴급 보도했는데 그 덕분에 주식 가격이 출렁이고 언론사에 문의 전화가 빗발치는 등 한바탕 소동이 빚어졌었다고 하니 너무 심한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튼 이번 만우절을 계기로 저는 장난을 중단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제가 당하고 보니 마냥 재미있는 만우절 장난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잠시나마 다른 사람들에게 속상한 마음을 안겨줄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 재미있는 일이 하나 줄었다고 해서 아쉬워하지는 않을 생각입니다. 혹시 만우절 장난을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사람이 있다면 다른 사람을 즐겁게 하고 행복하게 만드는 것만 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