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플레 3개를 먹어치운 토요일 밤의 행복/ 안희환
어느 토요일 밤이었습니다. 저는 해야 할 일을 마쳐놓고 배가 고픈 나머지 냉장고 문을 열어보았고 냉장고 안에서 저를 반기는 요플레를 보았습니다. 이마트에서 8개를 묶어서 할인 판매하는 것을 사다둔 것인데 배고픈 제 눈에 얼마나 먹음직스럽게 보였는지 모릅니다. 저는 저를 반기는 요플레 하나를 얼른 꺼내서 맛있게 먹었습니다.
배고픈 한 밤중에 먹는 요플레 맛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냉장고를 다시 열었고 요플레 하나를 더 꺼냈습니다. 요플레는 순식간에 제 목구멍을 넘어 뱃속으로 들어갔고 금방 바닥이 드러나고 말았습니다. 저는 냉장고 문을 또 열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요플레가 제 양식이 되었습니다. 결국 토요일 밤에 4개의 요플레가 저의 제물이 되었습니다.
요플레 3개를 해치운 후 행복감에 젖어 있던 저는 어린 시절의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그때의 저는 요플레 3개는커녕 한 개도 먹을 수 없는 처지였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시장에 가서 장사를 하기도 했고 신문을 돌리기도 했을 만큼 집안 형편이 어려웠는데 그 덕분에 간식 같은 것은 구경하기가 어려웠습니다. 하는 수없이 배가 고플 때면 무나 당근을 뽑아 먹거나 개구리를 잡아 그 다리를 구워먹곤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한번은 어렵게 요구르트 하나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손톱으로 요구르트 입구에 작은 구멍을 낸 후 살짝 빨아먹었는데 그 맛이 얼마나 기가 막히게 좋았는지 모릅니다. 작은 요구르트를 한 번에 먹어치우기엔 너무나도 아까웠기에 저는 요구르트를 대접에 따랐습니다. 그리고 요구르트가 담긴 대접에 물을 부었습니다. 찬장을 뒤져 설탕을 찾아내서 대접에 넣었습니다. 그리고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대접의 요구르트(?)를 다 마셨습니다. 그 후로 저는 요구르트를 어렵게 구할 때마다 대접을 애용하곤 하였습니다.
그로부터 세월이 많이 지났습니다. 저는 이제 요구르트를 마실 때 대접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마시는 일도 없습니다. 오히려 요구르트에 빨대를 꽂아서 쪽 하고 들이킵니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몇 개씩 먹곤 합니다. 그리고 위에서 말한 토요일 밤에는 요구르트보다 비싼 요플레를 하나도 어니고 3개씩이나 맛있게 먹어치우는 사치를 기꺼이 감행하였습니다.
제 삶을 들여다보면 지금도 부자는 아닙니다. 아주 작은 전세방에서 살고 있으며 상당한 빚도 가지고 있습니다. 아내는 결혼 후 잠시 쉰 외에는 지금까지 직장을 다니고 있으며 최근 한 동안에는 어린이집 비용 때문에 작은 아들 효원이를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은 채 집에서 데리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이니 누가 저를 보고 부자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어쩌다 구한 요구르트 하나도 물을 탄 후 아껴 먹던 제가 요플레 3개를 거침없이 먹을 수준이 되었으니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뱃속으로 넘어간 요플레를 생각하며 안타까워하기는커녕 다음에 또 사먹어야지 하는 생각을 할 수 있는 제 처지에 감사한 마음을 가집니다. 그렇게 뿌듯해 하는 저를 보며 알맹이가 빠진 채 껍데기만 남은 요플레 케이스 3개가 저쪽에서 웃고 있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행복이란 것이 그리 멀리 있는 것도 아니고 뭔가 대단한 것을 얻어 내야야만 느낄 수 있는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일상적인 삶속에서 현재 자신이 누릴 수 있는 작은 것 하나에서도 행복을 찾을 수 있으니까요. 그것을 발견하지 못한 채 없는 것만 찾아내고 그것을 세기 시작한다면 행복은 이카루스의 날개보다 더 튼튼한 날개를 단 채 멀리 날아가 버리고 말 것입니다.
자다가 눈을 뜨면 보이는 아이들의 귀여운 모습과 아내의 사랑스러운 자태 속에서, 보글보글 끓는 찌개를 함께 떠먹는 식사 시간 속에서, 잘 꾸며진 산책길을 마음껏 걸을 수 있는 튼튼한 두 다리 속에서 행복의 의미를 찾을 수도 있지 않은지요? 얼었던 바닥을 힘차게 뚫고 나오는 새싹을 볼 수 있는 시력이 있기에, 공원에 몰려든 비둘기 떼에게 줄 수 있는 과자와 그 과자를 던져줄 수 있는 팔이 있기에 감사할 수 있지 않은지요?
행복은 공기처럼 우리의 주위를 채우고 있습니다. 원하는 사람은 누구라고 행복의 공기를 들이킬 수 있습니다. 복잡하고 힘겨운 삶의 일상들을 잠시 잊고 깊은 심호흡을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지금 가지고 있으나 인식하지 못하기에 누리지도 못하고 기뻐하지도 못했던 존재들을 찾아내는 숨바꼭질을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저처럼 요플레 3개를 한 번에 먹어보시는 것은 또 어떨는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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