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패배 노대통령이 책임을 져야 한다/ 안희환
어제 아침 한표를 행사하기 위해 투표장소에 갔는데 차분하게 투표가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흥분된 분위기도 없고 긴장된 분위기도 아니었으며 그냥 일상적으로 하던 투표와 다름이 없이 모든 것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사실 나 역시도 차분한 상태였는데 투표 결과에 대해서 어느 예상을 하고 있었기에 더 그랬던 것 같습니다.
투표 시간이 마감되고 드디어 개표가 되기 시작했을 때조차도 별다른 감정적 변화가 없었습니다. 이변이 일어나지 않는 한 이번 선거는 열린우리당이 완패할 것이라고 대다수의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었듯이 나 역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차츰 뚜껑이 열리면서 선거 결과가 그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는데 예상대로 열린우리당이 완패를 하고 말았습니다.
사실 한나라당이 잘해서 큰 승리를 거둔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내가 이야기를 나누어본 몇몇 사람들도 자신들이 한나라당에 투표를 하는 것은 열린우리당이 밉기 때문이지 한나라당이 예뻐서는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일반적인 정서일 수 있으며 한나라당은 이번 기회에 엉겹결에 표를 얻는 정당이 아닌 진정으로 표를 얻을 이유를 가진 정당으로 서야할 것입니다.
열린우리당의 경우 이번 선거의 대참패로 인해 그 입지가 줄어들 것이고 노대통령의 국정 운영에도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한화갑대표의 말대로 열린우리당을 해체하고 민주당에 들어간다는 것도 어려운 현실입니다. 사면초가라는 것은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열린우리당의 정동영 대표가 선거패배의 책임을 지고 의장직을 사퇴하였습니다. 2월 18일 전당대회를 통해 취임하였으니 104일이라는 짧은 시간 만에 집권 여당의 의장직을 내려놓은 셈입니다. 창당 이후로 2년 5개월간의 기간이 지났을 뿐인데 그 동안 8번째 의장 사퇴를 겪고 있으니 열린우리당의 지도력에 얼마나 심각한 문제가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다음 의장이 누가 될지는 미지수이지만 어느 누구라도 부담감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입지가 현저하게 줄어든 현 상황에서 새로운 의장이 고군분투하더라도 뚜렷하게 업적을 드러낼 수 있는 여지도 없으며 악재가 발생할 경우 오히려 현재 가지고 있는 정치적인 기반 혹은 이미지만 실추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열린우리당은 현재 총체적인 위기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이쯤에서 궁금한 것은 노무현 대통령의 심중입니다. 침통한 심정이야 누구 못지않겠지만 선거 패배에 대한 책임이란 측면에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한 것입니다. 솔직하게 말해서 이번 선거의 패배는 노무현 대통령의 패배이며 열린우리당을 거부한 국민정서는 곧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국민들의 거부 정서가 반영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엄밀하게 말해서 이번 선거 패배의 실질적인 책임자는 정동영 의장이 아닌 노무현 대통령이고, 그렇게 따진다면 사퇴라고 하는 것도 정동영 의장이 아닌 노무현 대통령이 해야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물론 대통령의 임기는 법으로 정해져 있고 반란이나 국익에 현저한 피해를 입힌 경우가 아닌 이상 대통령직을 수행할 권리가 있지만 도의적인 면에서 노대통령도 책임을 져야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 동안 노대통령은 소위 소신이란 기준을 가지고 나름대로의 정치를 해왔습니다. 민주당에서 독립하여 열린우리당을 만들고 노대통령만의 색을 가진 정치를 해보려고 애를 쓴 것입니다. 그러나 그 동안 중요한 것을 잊고 있었는데 그것은 국민들의 정서라고 하는 것입니다. 국민정서를 우습게 여기지는 않았다고 해도 상당 부분 무시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며 일방적으로 국정 운영을 해나갔는데 이번 선거에서 그에 대한 철퇴를 맞은 것입니다.
지금 시점에서 내가 듣고 싶은 것은 정동영 의장의 사퇴의 변이 아니라 진짜 책임자인 노무현 대통령의 책임있는 발언입니다. 자신의 국정 운영이 가지는 문제는 무엇이며 앞으로 어떻게 변화를 시도할 것인지, 선거 패배에 대한 책임은 어떻게 질 것인지를 분명히 밝혀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지금 울고 있을 노대통령에게 무리한 요구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6.1일에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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