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환 목회단상

일 하기 싫어하는 이들에게/ 안희환목사(예수비전교회, 기독교싱크탱크 대표)

안희환2 2017. 1. 6. 15:21

일 하기 싫어하는 이들에게/ 안희환목사(예수비전교회, 기독교싱크탱크 대표)

 

일 안 해도 먹고 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적어도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이라면 그런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 일 하는 것은 가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꼭 돈을 많이 벌어야 가치가 있는 것도 아니다. 일 자체에 가치가 있다. 일 자체가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주신 기회요 복이다.

 

요한복음 5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베데스다 연못가의 38년 된 병자를 고치시는 장면이 나온다(5:1-9). 너무나도 긴 세월을 누워 지내야만 했던 불쌍한 사람을 예수님이 고쳐주신다. 병자 입장에서는 얼마나 큰 기쁨인지 모른다. 이제는 다른 사람들 손을 의지하지 않고도 스스로 일어설 수 있고 이동할 수 있다. 이제는 마음껏 활동할 수 있게 되었다.

 

예수님이 그처럼 놀라운 일을 행하신 날은 안식일이었다. 유대인들은 그 점을 걸고넘어진다. “16. 그러므로 안식일에 이러한 일을 행하신다 하여 유대인들이 예수를 박해하게 된지라(5).” 그때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하신 말씀이 있다. “17.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5).”

 

그 말씀으로 인해 유대인들이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지만 예수님은 아주 중요한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주셨다. 예수님이 일하시는 분이고 그것은 하나님도 마찬가지라고 하는 것이다. 천지를 말씀으로 창조하신 하나님이 느긋하게 쉬고 계시는 게 아니라 일하신다는 놀라운 말씀이다. 예수님이 수고로이 일하시는 것은 그런 하나님을 닮은 것임을 알 수 있다.

 

이쯤에서 질문을 던질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예수님이 하시는 일이야 말씀을 전파하시고, 제자들을 가르치시고, 병든 자를 치유하시는 일이니 가치 있는 일이지만 보통 사람들이 세상에서 하는 일이란 별 것이 아니지 않느냐고 말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결코 그렇지 않다. 구태여 칼빈의 직업 소명설을 이야기하지 않아도 각자가 자신의 삶의 현장에서 하는 일들은 가치 있고 의미 있는 것이다.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한다. “23.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24. 이는 기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아나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3).” 위의 말씀은 종들에게 하신 것이다. 그 당시에 종들이 하는 일이 뭐 그리 대단하겠는가? 청소하거나 음식을 준비하거나 식사 후 설거지를 하거나 심부름을 하는 등 잡일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조차 주님께 하듯 하면 기업의 상을 받는다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상 받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다.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그 일을 주님께 하듯 하면 된다. 편의점에서 알바를 하는 학생이 그 일을 주님께 하듯 하면 된다. 우편배달부가 편지나 물건을 배달하면서 그 일을 주님께 하듯 하면 된다. 회사원이 회사 일을 하면서 그 일을 주님께 하듯 하면 된다.

 

사람들이 저마다 삶의 현장에서 주님께 하듯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감당하면 그것은 목회자가 교회에서 설교를 하거나 성경을 가르치는 것만큼이나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틀리지 않을 것이다. 아마 그렇게 일하게 되면 대충 할 수 없을 것이다. 마지못해서 혹은 죽지 못해서 일하는 것처럼 인상 찌푸리고 짜증내면서 일할 수 없을 것이다. 주님께 상 받을 일 생각하고 소망 가운데 기쁨으로 일할 수 있을 것이다.

 

요셉은 상처를 깊이 입을 일을 당했다. 형들에 의해 빠져나올 수 없는 구덩이에 던져진 것이다. 그 후에는 돈에 팔렸다. 그리고 마침내 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서 노예살이를 해야 했다. 만약 그때 요셉이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고 자기를 팔아먹은 형들을 저주하며 한숨만 팍팍 쉬고 자기 할 일을 소홀히 했어도 보디발의 신임을 얻을 수 있었을까?

 

요셉이 겨우 가정 총무의 자리에 올라간 후 보디발 아내의 유혹을 물리쳤는데 그 대가로 억울하게 성범죄자의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을 때 분노에 이를 갈면서 눈에 쌍심지를 켰다면 그래도 간수들을 요셉을 신임하고 제반 업무를 다 맡겼을까? 그러고 있는 요셉에게는 왕의 술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을 시중을 들게 하는 일도 맡겨지지 않았을 것이고 후에 풀려나 영광스러운 자리에 올라갈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요셉은 노예일 때 노예로서 해야 할 일을 충성스럽게 감당했고 죄수 신분이 되었을 때는 죄수로서 해야 할 일을 성실하게 감당해나갔다. 그런 요셉의 모습은 노예나 죄수보다 나은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하는 일이 허접하거나 월급이 적다는 이유로 원망과 불평으로 대충대충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큰 도전과 자극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