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환 자작시

담임목사직을 사임하려 했었다/ 안희환

안희환2 2013. 5. 4. 14:23

담임목사직을 사임하려 했었다/ 안희환

 

 

교회가 더 중요할까? 아니면 나와 내 가족이 더 중요할까? 엉뚱하고 바보 같은 질문이지만 이 질문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했었다. 뇌종양 수술을 받으면서이다. 수술 후 회복의 기간이 얼마나 걸릴지 확실하게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나는 교회를 위한 방안을 마련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당회를 소집했다.

내가 제안한 내용은 만약 내가 6개월 내에 회복이 되지 않을 경우 담임목사직을 사임하겠다는 것이었다. 내가 교회의 개척자이기 때문이 몸이 건강하지 않아도 사임하라고 압력을 받을 상황은 아니었다. 그럴 경우 우리 가족의 생계는 유지되겠지만 교회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차라리 열정적으로 사역할 수 있는 담임목사가 새로 오는 것이 낫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이야기를 하지 말자는 장로님들에게 아니라고 미리 대비를 해놓아야 한다고 설득해서 결정을 해놓았다.

만일의 경우에 세울 후임자도 결정을 해놓았다. 뒤늦게 결정하려고 할 경우 시간이 지연될뿐더러 자칫하면 분열의 빌미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많은 교회들이 후임자 청빙을 앞에 두고 다툼과 분열 속에 허우적거리는 것을 보았기에 미리 정리를 해두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래서 예수비전교회로 오게 된 목회자가 심우성 목사님이다. 사실 심목사님을 알고 지낸 기간은 꽤 된다. 몇몇 교회의 부교역자로 사역하던 심목사님은 자신이 사역하는 부서의 수련회 때마다 나를 강사로 불렀다. 그때 말씀을 전하러 간 것이 주목적이었지만 정말 목숨 걸고 사역한다는 느낌이 드는 심목사님을 보고 감동을 받았었다.

평안교회의 안희성 목사님은 나와 친척이다. 심목사님이 그곳에서도 사역을 했었는데 안희성 목사님을 통해 심목사님의 자세가 얼마나 훌륭한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청년회 새벽예배를 따로 만들고 안양에서 화곡동까지 매일 새벽예배를 인도했던 이야기는 내게 충격 그 자체였다. 그러니 청년회가 부흥하고 청년들이 변화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때부터였다. 심목사님을 불러 같이 사역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은.

그 후 심목사님은 캐나다와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했고 풀러에서 제자훈련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에 온 지 두 달이 되기 전에 심목사님이 한국에 온 것을 안 나는 우리 교회에서 함께 사역하자고 했다. 물론 후임자로 생각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런 이야기를 미리 해봐야 유익이 없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결국 심우성목사님은 우리 교회에 부임을 했고 최선을 다해 사역을 하고 있다. 뇌종양 수술을 받기 위해 입원하고 수술하는 동안 마음 편하게 있을 수 있었던 것은 심목사님이 충분히 내가 없는 공백을 채울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너무나도 사역을 잘했다. 설교에 있어서도 탁월했는데 한 성도는 은혜를 넘어 감동이 된다고 했고 그 말을 들으면서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수술 후 내 몸은 기적적으로 회복되어 갔다. 옆에서 지켜보던 간호사가 기적이라고 했다. 시력이 너무 좋아져서 안경을 벗고 다니게 되었다. 수술 후 얼마 안 가서 부산까지 운전하고 가서 설교했다. 춘천에도 직접 운전하고 가서 설교했다. 제주도의 열방대학이야 비행기타고 가서 설교했지만 그곳에 있는 동안 차를 렌트해서 몰고 다녔다. 외국의 일정들도 별 문제 없이 진행해가고 있다.

어느 날 심우성 목사님이 자신을 부를 때 어떤 의도가 있었는지 알고 깜짝 놀란 모양이다. 농담 삼아 내가 말했다. “내가 회복이 너무 빨라서 다시 담임을 하게 됐네. 아깝지?” 정말 좋은 동역자를 붙여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웬만한 것은 심목사님께 다 맡긴 상태로 올 한 해는 다른 교회도 탐방하면서 여유 있게 지내기로 했다. 그래도 다른 일들로 여유 있는 삶이 거의 불가능하지만 말이다.

나를 간병하면서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직장을 찾던 아내는 내 회복에 한시름 놓았을 것이다. 회복이 안 될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일을 진행한 내게 믿음이 없다고 비판해도 나는 할 말이 없다. 그러나 이것 한 가지는 분명히 말할 수 있게 됐다. 나와 내 가족의 안위보다는 교회가 더 우선이라는 것. 무슨 일이 있어도 교회에 부담이 가거나 피해가 가는 일을 하지 않겠다는 것. 요즘 날마다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