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환 장례설교

일찍 부름 받는 게 징계가 아니다 왕상14:12-13

안희환2 2012. 10. 1. 00:26

일찍 부름 받는 게 징계가 아니다 왕상14:12-13

 

12. 너는 일어나 네 집으로 가라 네 발이 성읍에 들어갈 때에 그 아이가 죽을지라

13. 온 이스라엘이 그를 위하여 슬퍼하며 장사하려니와 여로보암에게 속한 자는 오직 이 아이만 묘실에 들어가리니 이는 여로보암의 집 가운데에서 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향하여 선한 뜻을 품었음이니라

 

사람들은 복을 원함.

그 복 가운데 다양한 것이 있음.

건강

물질

아내나 남편

 

그 중에 빠지지 않는 것. 장수. 즉 오래 사는 것.

지금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오래 사는 것과 관련이 있음.

 

사람은 오래 살기 원함.

게놈 프로젝트. 오래 살기 위한 길이라고 난리가 났었음.

진시황이 사람들을 보내어 얻고자 한 것. 불로초. 오래 살고 싶은 것임.

어느 지역의 장수촌에서 사람들이 오래 사는 비결이 나왔다고 하면 따라해 보는 사람들. 그만큼 수명에 대한 갈망이 있는 것임.

 

하나님이 장수를 복으로 주시기도 함.

 

그러면 어린 나이 혹은 젊은 나이에 죽는 것은 징계인가? 조금 더 강하게 말하면 저주인가?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예수님. 정말 짧은 생애.

세례 요한 역시 짧은 생애.

요시야 왕. 역시 장수와는 거리가 먼 사람.

 

요나단. 다윗의 친구. 다윗의 헤브론에서 유대의 왕이 되었을 때 30. 요나단도 그 정도에 세상을 떠난 것임. 역시 빠른 죽음.

 

그런데 요난단을 말할 때 부정적으로 말하지 않음. 정말 멋있는 인물.

요시야왕. 나라를 개혁. 위대한 인물.

세례 요한. 신약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인물 중 한 분. 예수님의 평가. 여자가 나은 자 중에 가장 큰 자.

 

예수님에 대해서는 더 말할 것도 없음.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해보면 사람이 얼마나 오래 살았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음. 어떻게 살았느냐 하는 것임.

 

짧은 생애를 산 김자윤 형제.

그의 삶에 대해서 생각을 했음.

청년의 모습을 기억함. 주일 오전 예배를 드린 후 조용히 빠져나감. 종종 졸던 모습을 기억함. 그러다가 결혼. 여전한 모습.

큰 고통이 찾아옴. 약해져가는 몸. 그 모든 과정을 생생하게 기억함.

그런데 감사한 것. 기도가 깊어지기 시작함. 예배가 살아나기 시작함. 전심으로 찬양하는 모습. 후에는 어머니, 아내와 함께 열심히 전도하던 모습을 뚜렷하게 기억함.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봄. 고난이 정말 나쁜 것이었을까? 아님. 하나님께 가까이 가게 하는 계기. 냉랭한 신앙에서 불길처럼 타오르는 신앙이 되게 한 원동력.

 

자윤 형제의 삶을 떠올리면 열정적으로 하나님 앞에 살아가던 모습이 떠오름. 참 귀하구나 하는 생각.

 

자윤 형제가 세례 요한 같은 인물은 아닐 수 없음. 요시야 왕처럼 대단한 영향력을 가진 위치에 있었던 것도 아님. 요나단처럼 왕자도 아니었음. 그러나 자운형제의 삶은 참으로 가치 있는 삶이었음.

 

아까 말했음. 얼마나 오래 살았느냐보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살았느냐 하는 것이라고. 모든 인생은 결국 하나님 앞에 서야 하기 때문임.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인물.

아비야.

여로보암왕의 아들임.

그런데 중병에 걸림.

여로보암이 자신의 아내를 아히야라는 선지자에게 보냄. 아들에 대해 묻고자해서임. 살릴 방도를 찾기 위해서임.

 

그런데 선지자를 통해 들려온 메시지는 최악의 메시지.

 

12. 너는 일어나 네 집으로 가라 네 발이 성읍에 들어갈 때에 그 아이가 죽을지라

 

그러면 아비야는 하나님께 벌을 받아서 그렇게 된 것인가? 아님.

13. 온 이스라엘이 그를 위하여 슬퍼하며 장사하려니와 여로보암에게 속한 자는 오직 이 아이만 묘실에 들어가리니 이는 여로보암의 집 가운데에서 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향하여 선한 뜻을 품었음이니라

 

여로보암의 집 사람들이 악함. 다 악함. 딱 한 명만 빼고. 바로 아비야. 아비야가 다른 이들보다 먼저 죽는데 악해서 그로 인해 벌 받아 죽는 것이 아님. 실상은 집안에서 가장 선한 사람.

 

백성들이 그를 위해 슬퍼함.

자윤형제의 경우 백성들은 아니지만 성도들이 슬퍼함. 그만큼 귀하게 생각했던 형제이기 때문임.

 

 

결론

 

여러분들 앞에서 분명히 선언한다. 자윤형제의 삶은 비참하지 않다. 오히려 아름답다.

맥없기 길게 늘어진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불꽃처럼 타오른 삶이다.

 

남편의 그런 삶에 자부심을 가지기 바란다.

아들의 그런 삶에 긍지를 지니길 바란다.

 

그런 자랑스러운 마음을 품을 수 있다면 자윤형제를 추억할 때마다 불쌍하다는 생각이 아니라 참 귀하다는 생각이 마음을 채울 것이다.

 

이제 사는 것은 남은 자들의 몫이다. 자윤형제를 불쌍하다고만 생각한다면 죄책감만 커진다. 우울함만 깊어진다. 그러나 그 가치를 볼 수 있게 될 때 비로서 아름다운 추억들을 떠올리며 감사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더 열심히 하나님 앞에서의 삶을 살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