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환 장례설교

장례/ 가족들은 힘을 내십시오 삼하12:16-23

안희환2 2012. 9. 29. 15:10

 

가족들은 힘을 내십시오 삼하12:16-23

 

16. 다윗이 그 아이를 위하여 하나님께 간구하되 다윗이 금식하고 안에 들어가서 밤새도록 땅에 엎드렸으니

17. 그 집의 늙은 자들이 그 곁에 서서 다윗을 땅에서 일으키려 하되 왕이 듣지 아니하고 그들과 더불어 먹지도 아니하더라

18. 이레 만에 그 아이가 죽으니라 그러나 다윗의 신하들이 아이가 죽은 것을 왕에게 아뢰기를 두려워하니 이는 그들이 말하기를 아이가 살았을 때에 우리가 그에게 말하여도 왕이 그 말을 듣지 아니하셨나니 어떻게 그 아이가 죽은 것을 그에게 아뢸 수 있으랴 왕이 상심하시리로다 함이라

19. 다윗이 그의 신하들이 서로 수군거리는 것을 보고 그 아이가 죽은 줄을 다윗이 깨닫고 그의 신하들에게 묻되 아이가 죽었느냐 하니 대답하되 죽었나이다 하는지라

20. 다윗이 땅에서 일어나 몸을 씻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갈아입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경배하고 왕궁으로 돌아와 명령하여 음식을 그 앞에 차리게 하고 먹은지라

21. 그의 신하들이 그에게 이르되 아이가 살았을 때에는 그를 위하여 금식하고 우시더니 죽은 후에는 일어나서 잡수시니 이 일이 어찌 됨이니이까 하니

22. 이르되 아이가 살았을 때에 내가 금식하고 운 것은 혹시 여호와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사 아이를 살려 주실는지 누가 알까 생각함이거니와

23. 지금은 죽었으니 내가 어찌 금식하랴 내가 다시 돌아오게 할 수 있느냐 나는 그에게로 가려니와 그는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오늘 본문의 이야기. 한 가지만 빼고 비슷함.

뭘 빼는가? 자윤형제 가족들은 죄를 범한 것이 아니고 다윗의 경우는 죄를 범했기에.

그것을 빼고는 세상을 살아가는 누가 겪을 수 있는 가슴 아픈 일이 오늘 본문에 등장함.

 

 

1. 병든 가족으로 인한 고통

 

다윗의 아이가 병듦. 중병.

 

인생 가운데 종종 찾아오는 장애물. 그것은 질병임.

 

자윤형제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임. 큰 병.

 

사실 오늘 설교하는데 마음이 많이 무거움. 대체 무엇을 설교할까? 고민하며 기도하는 중에 오늘 본문이 떠오름.

 

그러면서 한 가지 생각이 더 들었음. 지금 내 몸이 아픈 것이 설교하는데는 오히려 유익하다는 생각. 감사함.

 

원점으로 돌아와서

한 사람에게 큰 병이 생기면 우선은 당사자가 고통스러움. 이것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하지 못함. 아프다는 것이 말로 설명되지가 않음.

 

당사자만 고통스러운 것이 아님. 그 가족들이 힘들 수밖에 없음.

아파 누워있는 사람 보면서 마음이 아픔.

몸도 힘들어짐. 그만큼 보살펴야 함.

경제적인 면에서도 힘겨움. 아픈 사람이 있으면 돈이 많이 들어감.

 

건강이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아픈 사람이 생기면 깨닫게 됨. 지금 건강한 사람들은 감사를 잊지 말아야 함.

 

 

2. 고통 중에 부르짖는 기도

 

16. 다윗이 그 아이를 위하여 하나님께 간구하되 다윗이 금식하고 안에 들어가서 밤새도록 땅에 엎드렸으니

17. 그 집의 늙은 자들이 그 곁에 서서 다윗을 땅에서 일으키려 하되 왕이 듣지 아니하고 그들과 더불어 먹지도 아니하더라

 

다윗의 간절함이 잘 드러남.

하나님께 간구함.

밤새도록 땅에 엎드림. 집안의 늙은 자들이 다윗을 일으키려 하는데 듣지 않음.

 

다윗이 어떤 사람인가? 시글락의 위기에서도 굴복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승리했던 사람. 그런데 가족의 중병 앞에서 땅에 엎드려 있는 것임. 너무나도 마음이 아픈 것임.

 

자윤 형제의 질병.

그 가족들의 울부짖음을 기억하고 있음. 직장 끝나고 교회 와서 잠을 자며 기도하기도 하던 전진희 집사. 정말 처절하다고밖에 할 수 없는 심무임 권사님의 울부짖음. 또한 가족들과 교인들의 애절한 기도.

 

그것은 사랑의 표현.

 

 

3. 죽고 만 아이

 

18. 이레 만에 그 아이가 죽으니라 그러나 다윗의 신하들이 아이가 죽은 것을 왕에게 아뢰기를 두려워하니 이는 그들이 말하기를 아이가 살았을 때에 우리가 그에게 말하여도 왕이 그 말을 듣지 아니하셨나니 어떻게 그 아이가 죽은 것을 그에게 아뢸 수 있으랴 왕이 상심하시리로다 함이라

 

이레만에 다윗의 아이가 죽음.

그렇게 애절하게 기도했는데...

 

다윗의 신하들 입장에서는 걱정이 태산임.

다윗의 신하들이 아이가 죽은 것을 왕에게 아뢰기를 두려워하니. 얼마나 말하기 힘든 상황인가?

이는 그들이 말하기를 아이가 살았을 때에 우리가 그에게 말하여도 왕이 그 말을 듣지 아니하셨나니 어떻게 그 아이가 죽은 것을 그에게 아뢸 수 있으랴 왕이 상심하시리로다 함이라

 

우리가 기억해야할 것. 우리가 기도하는 것을 응답하시는 하나님.

그러나 모든 기도를 응답하시는 것은 아님.

 

만약 죽음 앞에 있는 이를 위해 기도하는 모든 기도가 응답된다면 죽는 사람은 없을 것임.

하나님께서 특별한 뜻을 가지고 계셔서 생명을 취하신다면 그것을 거부하거나 거절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음.

 

자윤 형제도 마찬가지임. 하나님이 하나님의 품으로 데리고 가심.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 사람이 어쩔 수 있는 게 아님. 의학으로도 어쩔 수 있는 게 아님.

 

 

4. 죽음을 안 다윗의 태도

 

아들이 죽었음을 안 다윗.

19. 다윗이 그의 신하들이 서로 수군거리는 것을 보고 그 아이가 죽은 줄을 다윗이 깨닫고 그의 신하들에게 묻되 아이가 죽었느냐 하니 대답하되 죽었나이다 하는지라

 

병들어 죽어갈 때 울부짖던 다윗. 간절히 기도하던 다윗. 금식하며 매달리던 다윗.

그런데 결과론적으로만 보면 그 기도가 응답되지 않음.

 

그러면 다윗의 마음이 무너져 엉망이 되버렸는가? 그렇지 않음.

 

20. 다윗이 땅에서 일어나 몸을 씻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갈아입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경배하고 왕궁으로 돌아와 명령하여 음식을 그 앞에 차리게 하고 먹은지라

 

일었다는 표현. 땅바닥에 엎드려 있었는데.

몸을 씻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갈아입고. 자신을 단장한 것임.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경배하고. 원망이나 절망에 무너진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높이는 것임.

 

왕궁으로 돌아와 명령하여 음식을 그 앞에 차리게 하고 먹은지라. 기운을 차리기 위한 수고. 보통 사람들이 가족의 죽음에 절망하여 식음을 전폐하는데 다윗은 그러지 않은 것임.

 

전진희 집사님이나 심무임 권사님에게 권하고 싶은 태도. 힘을 내고 일어서야 함.

 

다윗의 행동에 의아한 신하들의 질문.

21. 그의 신하들이 그에게 이르되 아이가 살았을 때에는 그를 위하여 금식하고 우시더니 죽은 후에는 일어나서 잡수시니 이 일이 어찌 됨이니이까 하니

 

다윗의 대답.

22. 이르되 아이가 살았을 때에 내가 금식하고 운 것은 혹시 여호와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사 아이를 살려 주실는지 누가 알까 생각함이거니와

23. 지금은 죽었으니 내가 어찌 금식하랴 내가 다시 돌아오게 할 수 있느냐 나는 그에게로 가려니와 그는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결정지어지기 전까지는 애절하게 매달리지만 일단 결정이 난 후에는 가슴 아픈 사연도 수용하겠다는 믿음의 태도를 보이는 것임.

 

 

결론

 

다윗은 부활을 잘 모름.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부활을 알고 있음. 그렇다면 남은 가족들이 더 힘을 내야할 이유가 분명함.

 

슬프지 않을 수는 없다. 그러나 주저앉지 말고 일어서기를 바란다.

천국의 소망을 누리실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