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자로 살지 정치는 왜 해가지고?/ 안희환
모든 면에서 뛰어나면 좋겠지만 그것은 소수의 사람들에게나 주어진 특권일 뿐 보통 사람들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다. 아니 보통 사람들에게는 어느 한 가지 면에서 뛰어나게 되는 것 자체가 무거운 짐일 수 있고 오히려 탁월한 사람일 경우에도 모든 면에서 뛰어나기는 어렵다고 하는 것이 맞는 말일 것이다.
.
송강 정철은 조선시대의 문학가이면서 정치가로서 활동했던 사람이다. 그런데 두 가지 분야 모두에서 뛰어난 인물은 아니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송강 정철은 문학에 있어서는 매우 뛰어난 인물이지만 정치에 있어서는 역량이 모자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문학적으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천재적인 면모를 지니고 있지만 정치적인 감각에 있어서는 상황 파악을 제대로 못할 만큼 둔한 인물이 송강 정철인 것이다.
.
먼저 뛰어났던 문학적 재능에 대해 생각해보려 한다. 송강 정철은 중종 31년 돈녕주 판관인 정유침의 4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는 매형인 계림군이 관련된 을사사화가 일어났을 때 어머니를 모시고 순천으로 내려가다가 김윤제를 만나게 되는데 김윤제의 마음에 들게되어 그 문하에서 글을 배우게 되었다. 송강 정철이 문학가로서의 발걸음을 내딛는 중요한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문학에 있어 탁월한 재능을 가지고 있던 송강 정철은 뛰어난 작품들을 남기게 된다. 관동별곡, 성산별곡, 사미인곡, 속미인곡 등의 네 편의 가사를 지었는데 그 작품들은 가사 문학의 최정점에 있다. 시문집인 송강집도 남겼는데 수준 높은 가사와 시조 등의 작품으로 인해 송강 정철은 조선시대 최고의 작가이면서 한국 역사상 위대한 작가 중 한명으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
그처럼 문학적으로 뛰어난 송강 정철이 정치적인 면에 있어서는 실수를 반복한다. 송강 정철은 근본적으로 포용적인 성격을 가지지 못한 사람이었는데 그로 인해 한번 충돌이 생기면 기를 쓰고 상대방을 공격하는 거친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 성향은 조선시대의 절대자인 임금을 향해서도 나타났는데 송강은 신성군을 세지로 책봉하려던 선조에게 광해군을 책봉해야 한다고 고집을 부리다가 미움을 사서 귀양살이를 하게 된다.
.
송강 정철은 자신의 생각과 다른 모습을 보이면 정적만이 아닌 같은 당파에 속한 사람을 향해서도 공격적인 태도를 보였다. 할 말이 있으면 반드시 해야 했고, 누군가가 잘못하면 아무리 가까운 사이여도 용납하지 않았으며, 화를 입을 것이 확실한데도 돌진하는 송강에게는 친한 사람이 생길 수가 없었다. 결국 그는 절박한 상황으로 곤두박질할 수밖에 없었고 가난하고 비참하게 지내다가 강원도 송정촌에서 58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난다.
.
송강 정철의 예가 아니어도 우리나라의 현대 역사 속에서 학자로서 이름을 날리다가 정치인이 된 후 한없이 추락해버린 사람들을 여럿 만나볼 수 있다. 학생들만이 아니라 지성인들, 그리고 범국민적으로 존경을 받으며 커다란 영향력을 발휘하던 이들이 그것으로 만족하지 못해 세속적인 권력을 손에 넣으려 정치에 발을 디뎠는데 그것이 수렁인줄을 몰랐던 이들이 많은 것이다.
.
어쩌면 학자로서의 명성이 정치에 있어서도 그대로 연결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 순진함이 그런 결과를 가져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얼굴이 필요한 정치권에서 이용 가치가 있기에 손짓을 했는데 자신이 정치를 개혁할 적임자라고 생각해서 정치권에 뛰어든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권모술수에 능한 정치인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상아탑의 고상함이 통하리라고 생각했다면 그것은 착각이요 어리석음이다.
.
송강 정철이 문학에만 전념하고 정치에서 한 발을 뺐다면 더 많은 존경도 받고 더 큰 영향력도 발휘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정치권에 이용을 당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임금의 노여움을 사 가난하고 억울한 삶을 이어가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한국 현대사에서 정치로 뛰어들었던 학자들이 마지막까지 강단을 지켰다면 더 훌륭한 지도자로 자리매김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안희환의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겨레신문 조현 기자의 기독교 공격은 도를 넘었다/ 안희환 (0) | 2011.08.27 |
---|---|
수준 떨어지는 기자들도 있다/ 안희환 (0) | 2011.08.12 |
귀족노조는 집단이기주의를 버려라(SC제일은행노조)/ 안희환 (0) | 2011.06.27 |
이 나라엔 대학생들만 있는가?(반값 등록금)/ 안희환 (0) | 2011.06.11 |
북한의 적나라한 실상을 보여주는 다큐. [김정일리아]/ 안희환 (0) | 2011.06.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