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환사랑이야기

화평케 하는 사람 히 12:14

안희환2 2011. 5. 28. 23:52

화평케 하는 사람 히 12:14

 

14.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인류 역사상 전쟁과 폭력은 그칠 날이 없었고, 평화는 인류가 그렇게도 되뇌어 온 것임에도 불구하고 한번도 완전히 실현된 일이 없었습니다.

"인류 역사가 기록된 이후 오늘까지 전 역사의 8%만이 평화의 시기였고 92%가 전쟁이 있었던 해라고 합니다.

 

서해상에서 남과 북이 대치하다가 서로 함포 사격을 가하는 치열한 교전을 벌였습니다. 천안함. 연평도. 남과 북의 정치가들은 저마다 통일을 외치고 평화를 외치건만 그 길은 아직도 먼 것처럼 느껴질 뿐입니다.

 

남북이 경제 협력을 한다고 비료를 보내고, 옥수수를 보내고, 그토록 그리던 금강산 관광의 길이 열려 온 국민은 마치 한반도가 평화의 길로 들어섰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또 다시 싸움이 일어난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건에서 평화를 위한 인간적 노력이 얼마나 허망하며 이율배반적인 지를 느끼게 됩니다. 누구나 싸움을 좋아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누구나 행복하고 평화롭게 살기 바랍니다. 그러나 그런 인간의 소원과는 달리 이 땅에서 우리가 누리는 평화는 마치 꿈을 꾸듯 우리 곁을 스쳐만 갈 뿐입니다. 오히려 평화를 이룬다는 명목하에 군비를 증강하여 긴장을 조성하고 무력으로 상대를 제압하여 내 앞에 복종시키려는 유혹을 받습니다. 거기에 평화는 없습니다. 지배와 복종이 있을 뿐 진정한 평화는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영원히 평화를 맛볼 수 없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길이 열려 있습니다. 화해와 평화의 길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평화와 화해의 길이 있습니다.

 

자기 몸을 십자가에 못박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하나님과 우리를 화해 시켰고 우리는 죄로 인한 형벌의 공포에서 해방되어 자유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담대히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는 평화의 왕으로서 요한복음 14:27에서 '내가 평화를 너희에게 남겨두고 간다. 나는 내 평안을 너희에게 준다. 이것은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은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이 주는 평화란 힘에 눌려 억지로 기초한 것일 뿐 참 평화가 아니다. 그것을 '로마의 평화'(Pax-Romana)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평화인 듯 보이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성서는 오늘의 인간과 세계를 향하여 새로운 평화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신약성서의 여러 가지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평화라고 말합니다.. 그는 교회들에 보내는 편지마다 '은혜'(charis)'평안'(eirene)을 기원하였고 그리스도가 죄인을 위하여 이루신 의롭다 인정하는 사업을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적대관계를 폐기하고 성립한 평화 eirene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하나님을 부를 때 '평화의 하나님' 이라고 말합니다.. 이것들은 물론 바울에게서 시작된 표현이 아니고 구약의 하나님 신앙에 깊이 뿌리박고 있습니다. 구약에는 평화케 하는 하나님 기대가 많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지리적으로 '열강사이의 다리'로 불리어지는 팔레스틴은 잦은 전쟁에 시달려서 주고받는 인사말이 '샬롬'이었습니다. 이런 신앙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의 사건으로 깊은 연관을 얻게 되어 바울사도에게서 새로운 의미를 띠어 나타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적대관계를 화해 시켰다고 가르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계신 가정은 화목합니다. 그 사회는 사랑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돈을 많이 벌어다 wrj나 뭐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외식을 자주 나가거나 하면 가정이 편할줄 압니다. 그러나 예수가 없는 가정의 평화는 거짓 평화입니다. 언제 그것이 깨져 태풍이 돨 지 모릅니다. 사랑의 주님이 계신 곳에만 평화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지극한 사랑, 용서가 실천되는 곳에 진정한 평화가 있습니다. 거기에 기쁨이 있고 진정한 안식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만이 이 세상에서 가장 값진 선물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화평케 하시는 주님입니다.

 

주재용교수는 '샬롬에는 화해, 자유, 희망의 세요소가 있다'고 말합니다.

 

진정한 "평화는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의 화해가 없이는 이룩될 수가 없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사람이 됩니다. 그는 하나님과 화해한 사람이고 동시에 화해케 하는 직분을 맡은 사람입니다. 인간과 세계 안에 있는 장벽을 무너뜨리는 것은 화해의 역사로써만이 가능합니다.

 

평화는 자유가 인정될 때 이루어 집니다. 이 자유는 자기로부터 자유하는 것이고 이것은 자기를 비우는 것입니다. 양보하고 이해하고 사랑할 때 우리는 상대편을 얽매는 것이 아니라 자유케 해주는 것입니다. 부부간에도 서로를 내 방식대로 얽어 매려하면 거기에 평화는 깨집니다. 서로의 존재와 가치와 형편을 인정해주고 자유를 줄 때 그 가정은 행복합니다 사회도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국민의 자유가 억압받으면 그 국가는 평화가 깨집니다. 우리는 그것을 유신정권과 군사독재의 압박 속에서 뼈저리게 느껴왔습니다.. (2)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기에 자기를 전부 내어주신 것이 예수님의 삶의 자세였고 십자가의 모습이었다. 성도가 고난에서 자유할 수 있고 죽음에서 자유할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안에 있을 때입니다. 평화는 이 자유의 바탕 위에서 이루어져야 진짜입니다.

 

평화를 원하는 사람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미래를 포기하면 않됩니다. 부부간에 형제간에 이웃간에 포기하지 않고 소망의 눈으로 볼 때 기다릴 수 있고 참을 수 있고 사랑할 수 있고 평화가 있는 것입니다. 서로에게 소망이 없는 부부는 남보다 못한 눈으로 서로를 대합니다. 내일에 대한 소망이 없는 나라는 망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죄로 인해 미래가 없고 오직 죽음만이 눈앞에 있던 우리에게 예수님은 자신을 대속제물로 주심으로 구원의 소망을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복음은 우리들의 화목과 평화를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간의 화해와 평화, 인간 상호간의 평화를 위한 것입니다. 주님은 산상교훈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평화를 만드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같은 자가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고 선언했습니다. 평화를 위해서 그가 이 땅에 오시고 평화 때문에 죽으신 분 예수 그리스도는 먼저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화평을 이룩하였고 다음으로 인간들 상호간의 화해를 이룩하였으며 우리가 서로 화목하며 서로에게 놓여 있는 갈등과 시기와 질투와 미움과 경쟁을 없애고 화해와 화목을 이루는 평화의 길에 나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는 다는 것은 이 땅에서 예수의 뒤를 따라 화목케 하는 일에 헌신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분열이나 이별이 아니라 하나되는 것이요 화해하는 것이요 끊임없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한다 하면서 용서하지 않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사랑한다 하면서 화해하지 않고 마음속에 독을 품고 있는 사람은 예수와 아무 관계가 없는 사람입니다.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는 자가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화평함이 거룩함입니다. 거룩한 신앙은 화평의 열매를 통해 하나님께 인정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