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환사랑이야기

어머니, 병든 내 어머니/ 안희환

안희환2 2009. 10. 23. 09:46

어머니, 병든 내 어머니/ 안희환

 

 

병원진료실 앞에서 초조하게 기다리시는 어머니의 모습이 제 마음을 아리게 했습니다. 어머니는 파킨슨 병으로 고생하고 계시는데 그것만으로 부족해서 눈에 문제가 생긴 덕에 치료를 받는 중입니다. 양쪽 눈이 황반변성으로 인해 시력이 약해지는 상황인데 특히 오른쪽 눈의 경우 노인성 황반변성과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하여 잘 보이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파킨슨 병의 후유증으로 어머니는 현재 다리를 절고 계십니다. 왼쪽 팔을 움직이시는데 부자연스러우시고요. 거기에다가 눈까지 흐려지시면 다니시고 활동하시는데 얼마나 불편할까 하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좋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태연하게 계시는 모습이 더욱 더 제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이틀 전에는 레이저 치료를 받았고 오늘은 눈에 주사를 맞으셨는데 꽤 아프셨던 모양입니다. 그런 어머니를 부축하며 주차장으로 향했습니다.

 

차를 몰고 모셔다 드리면서 옛날 생각이 났습니다. 어머니 하면 떠오르는 생각들.

 

1.

가방을 들고 학교에 갔다 집에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기아산업 공장 옆에 있는 밭에서 어머니는 땀을 흘려가며 풀을 뽑고 계셨습니다. 술과 노름에 절어 지내시는 아버지 때문에 어머니는 우리 4남매를 먹여 살리시기 위해 일을 하셔야만 했던 것입니다. 친구들과 함께 집으로 향하다가 등을 웅크린 채 일하시는 어머니를 보면서 그때는 왜 슬퍼할 줄도 몰랐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2.

막내 여동생이 어머니의 가계부를 어쩌다가 발견했었습니다. 가계부를 보는 순간 한참을 울었다고 합니다. 그곳에는 10원, 20원까지 상세하게 적혀 있었는데 다 자녀들을 위해 사용하신 것이지 어머니를 위해 사용한 돈이 10원도 없었다고 합니다. 여동생은 그 이야기를 여러 차례 이야기하였는데 그때마다 눈동자에 눈물이 어렸습니다. 여동생이 그토록 어머니를 끔찍하게 생각하는 것은 가계부의 영향이 큰 것 같습니다.

 

3.

한때 방황하던 셋째 동생이 어느 날 제게 말했습니다. “형. 나는 엄마가 슬픈 듯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면 미칠 것 같아. 차라리 소리 치고 화를 내면 좋겠어. 나는 엄마의 그런 눈이 제일 무서워.” 지금 그 동생은 열심히 일을 하고 있으며 어머니를 무척이나 존경하고 있습니다. 제 기억으로도 자녀들을 향해 분노하시거나 윽박지르신 적이 없으신 어머니는 저희 4남매가 존경하는 분이십니다.

 

4.

아버지가 술을 마시고 오셔서 집안을 난장판으로 만드실 때 어머니는 소리 한번 지르지 않으셨습니다. 뒤집어진 밥상을 바로 하시고 방바닥에 흩어진 밥알과 반찬들을 치우시면서 짜증 한번 내지 않으셨습니다. 자녀들은 어머니의 입에서 아버지를 욕하는 소리를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어머니는 그저 우리들을 모아놓으시고는 눈물을 안으로 삼키며 기도하셨는데 그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5.

장마철이 되면 우리 가족이 살던 판자촌은 온통 물바다가 됩니다. 떠다니던 온갖 오물들이 갈라진 판잣집 틈새로 물과 함께 들어옵니다. 서면 초등학교에 피난을 갔다가 돌아오면 어머니는 유달리 말을 잃으신 채 집안을 정리하시느라 정신이 없으십니다. 원래 말이 많지 않으신 어머니이시지만 장맛비로 피해를 본 후에는 더 말이 없으신 어머니. 그 이유를 세월이 한참 지난 지금에야 알 것 같습니다.

 

6.

아버지가 달라지기 시작한 때가 언제인지 정확하게 알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확실히 변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술과 담배를 끊으셨고 노름도 손에 대지 않으셨습니다. 한 번에 성공한 것은 아니지만 점차로 아버지는 그 모든 것을 깔끔하게 청산하셨습니다. 그로부터 세월이 많이 지났고 이제 부모님은 가게도 하나 소유하셨고 45평짜리 아파트도 마련하셨습니다. 아파트는 판잣집과 비교하면 궁궐과도 같습니다.

 

이제 넉넉해진 집안 형편, 그런데 어머니의 몸이 건강하질 못하십니다. 먹고 사는 것을 걱정하지 않을 만큼 되었는데 아버지를 그토록 놀랍게 변하게 하셨던 어머니의 몸이 이젠 너무나도 삐걱거리고 있는 것입니다. 차를 몰아 모셔드리는 동안 흘깃 쳐다보는 어머니의 옆모습이 참 많이도 초라해 보입니다. 눈가의 주름 하나하나에 담긴 삶의 무게가 느껴지면서 제 어깻죽지가 가라앉습니다.

 

동생들이 셋이나 있지만 어머니 병원 모시고 가는 것은 제가 전담하고 있습니다. 한번 병원에 모시고 갈 때마다 죄송한 마음이 백만분의 일씩이라도 덜어지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다른 곳에서는 10분만 시간을 낭비해도 속상한데 어머니가 진료를 다 받으시기까지 몇 시간을 기다리면서도 그 시간이 아깝지 않습니다. 넉살이라도 좋으면 기다리는 동안 재미있는 이야기라도 해드리련만 그냥 함께 있어드리는 것만으로 만족하고 있습니다.

 

어머니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