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환 설교요약

누구라도 변화될 수 있다 행8:1-3(2007. 9. 23 주일오전예배 설교)

안희환2 2007. 9. 25. 14:36

누구라도 변화될 수 있다 행8:1-3(2007. 9. 23 주일오전예배 설교)


1 사울이 그의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핍박이 나서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2 경건한 사람들이 스데반을 장사하고 위하여 크게 울더라

3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쌔 각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


지난 주간에 서울신학대학교에서 세미나가 있었다. 문화, 인터넷, 안티기독교 등에 대해 다룬 세미나이다. 성결교 역사연구소 주최로 열렸고 다른 세미나들에 비해 사람도 많이 참석하고 열기도 뜨거웠다는 말을 들었다.


발제자는 예수비전교회의 안희환 목사이다.

감사한 것. 많은 성도들이 참여해 주었다는 것. 성도들이 들어올 때 얼마나 힘이 나던지.


금요일(21일)에는 기독교 방송에서 녹화함.

10월에는 신대교수들과 학생들 앞에서 발표.


안티기독교인들이 기독교를 비난하는 내용. 11가지 항목으로 정리해 보았음.


(1) 기독교인에 의해 상처받은 일


기독교인들에 의해 상처받았던 기억들을 잊지 못한 채 그것을 안티기독교에 활용하는 내용이 있다. 필명 하이는 “내가 교회를 싫어하게 된 이유”를 밝히고 있는데 적은 헌금으로 인해 여자 집사에게 상처받은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다. 헌금을 잘 하는 아이들에 비해 차별 대우를 받았다는 것이다.


(2) 기독교 지도자들의 부도덕에 대한 공격


기독교 지도자들의 부도덕한 모습이 메스컴을 탈 경우 그것은 안티기독교인들의 중요한 자료가 된다. 예전에 교인과 불륜관계에 있다가 발각될 상황에서 에어컨에 매달려 있다가 떨어져 죽은 목사가 있었는데 안티들 세계에선 에어컨 장으로 유명하고 기독교를 공격하는데 수없이 사용되었다. 시간이 한참 흐른 지금도 에어컨장은 기독교 공격의 구실이 되고 있다.


(3) 중대형교회의 세습에 대한 비판


교회를 성장시키면서 유명세를 탄 목회자들 중 상당수가 자신이 평생을 목회한 교회를 아들에게 물려주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그로 인한 부작용은 교회와 교단에만 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도 파급효과를 미치고 있는데 기독교를 바라보는 세상의 부정적인 시각을 강화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안티기독교인들은 이 부분을 놓치지 않고 공격하는 중이다.


특별히 세습에 대한 비판은 대형교회에 집중되고 있다. 개척교회의 경우 아버지가 목회하던 교회를 이어 받는다 해도 그로 인해 얻을 수 있는 기득권이 전혀 없는 반면 대형교회의 경우 기득권이 크기에 그만큼 공격의 여지를 보이는 것이다.


(4) 세금을 내지 않는 것에 대한 비판


최근 들어 안티기독교인들이 활발한 운동을 하는 것 중 하나는 교회에 세금을 부과하자는 것이다. 액면상으로는 종교라는 틀 속에서 일을 벌여가고 있지만 그 주요 대상은 기독교인데 세금부과 운동을 벌이는 이들이 안티기독교인들이기 때문이다.


종비련(종교비판자유실현시민연대). 종교비판. 그러나 목표는 기독교. 관련 글 99%가 기독교 비난 글임.

  

(5) 권력과 밀착된 기독교의 모습을 비판


안티기독교인들은 기독교의 어두운 역사에 주목하고 있으며 그 부분을 강력하게 부각시킴으로써 기독교에 대한 이미지를 추락시키는데 한몫을 감당하고 있다. 박정희 군사정권 때 그를 위해 기도해준 것. 전두환 전대통령 때도 마찬가지임.


(6) 기독교의 친일활동에 대한 비판


기독교의 어두운 과거 중 한 부분은 친일에 동참했던 역사이다. 안티기독교인들은 일본에 항거했던 기독교인들에 대해서는 침묵한 채 친일에 가담했던 기독교 지도급 인사들에 대한 언급만을 반복하는데 은연중에 기독교가 친일을 한 대표적인 종교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7) 민족주의에 호소하는 방식


안티기독교인들중 상당수는 자신들을 민족주의자로 자처한다. 그리고 묘하게도 민족주의와 단군과의 연계를 시도한다. 즉 자신들은 단군의 자손인데 반해 스스로 단군의 자손임을 포기하고 이방 잡신의 후예를 자처하는 기독교인들은 이땅을 떠나라고 하는 것이 안티기독교인들의 논지 중 하나이다. 필명 행성은 “괴독들은 이 나라에서 살지말라”라는 글에서 그 이유를 기독교인들이 단군의 후예임을 부인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일부 기독교인들의 단군상 목 자르기는 사회의 지탄을 받았다. 상식적인 면에서 용납할 수 없는 행위라 여겨졌기 때문이다. 안티기독교인들은 그런 일부 기독교인들의 행동을 적극 활용하면서 기독교의 배타성을 드러내는데 사용하고 있다. 단군상 목자르기는 내가 봐도 어리석은 짓.


(8) 타종교에 대한 기독교의 배타성


안티기독교인들이 기독교를 비판하는데 단골 메뉴로 사용하는 것 중 하나는 기독교의 배타성이다. 즉 타종교들에 대해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종교다원주의의 세상 속에서 구원의 유일성을 말하는 기독교는 독선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으며 그것이 안티기독교인들의 주 타켓이 되는 것이다. 다원화 시대에 다양한 종교들이 있는데 왜 기독교만 예수만이 구원이라며 배타적인 태도를 보이느냐는 것이다.


(9) 죄인이라고 하는 교리에 대한 비판


기독교의 교리 가운데 전적 타락의 교리는 핵심적인 부분이다. 이 교리에 대한 반발이 상당히 거세다. 사람들을 죄인이라고 하며 세상을 향해 타락했다고 하는 기독교의 가르침에 대한 반발이 안티기독교인들의 주요 관심사 가운데 하나이다. 필명 가람검은 “기독교도들의 자기 중심적 발언들....구역질난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기독교인들이 자기들 신을 사랑의 신 만들기 위해 착한 사람들을 죄인 만든다고 비난하고 있다.


(10) 하나님의 속성에 대한


예전의 안티기독교인들에 비해 현재의 안티기독교인들은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기독교를 공격하고 있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삼위일체 하나님과 그 하나님의 속성에 대한 노골적인 비난이다. 필명 오사랑은 “기독교의 맹점”이란 제목의 글에서 하나님의 용서는 터무니 없는 것이며 이기적인 것이라고 공박하고 있다. 잘못을 저질러 놓고 엉뚱한 하나님에게 용서를 받으면 피해자는 어떻게 되느냐는 논지이다. 하나님의 용서라고 하는 것이 잘못을 은폐하고 오리발 내미는 도구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 견해에 대해 간단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1) 기독교인에 의해 상처받은 일


사람 사이에 살다가 보면 상처받는 일들이 허다하다.

직장에서도 상처 받는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그러나 직장에서 상처를 받는다고 직장을 떠나진 않고 친구에 의해 상처를 받는다고 친구들과 절교를 선언하진 않는다. 아주 심할 경우에는 그럴 수도 있지만.

교회도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기 때문에 상처를 주고받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과하게 내세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반대로 기독교인에 의해 도움을 입으면 다 신앙생활하는가? 그건 그렇지 않다.


상처라는 것. 가족끼리도 수없이 주고 받는다. 교회에서 최대한 서로가 조심해야 할 부분이지만 교회가 상처주는 곳으로 몰아세우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 난 오히려 교회 때문에 도움을 얻었다는 사람을 더 많이 보았는데. 나 스스로도 어릴때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었고.


(2) 기독교 지도자들의 부도덕에 대한 공격


기독교 지도자들의 부도덕에 대해서는 나도 분노한다. 특별히 돈독 오른 목사들을 혐오한다. 교회 돈 가지고 총회장 되려고 안달하는 사람들 보면 목사란 생각이 들지 않는다. 여자 문제로 교회를 추락시키는 이들도 마찬가지이다. 사모와의 문제나 유혹하는 여자들 때문이라고 변명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변명이 안 된다. 본인 스스로가 목사라는 것을 잊은 것 외에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반대되는 측면. 좋은 목사님들이 많다. 이름없이 빛도 없이 성도들을 섬기며 이웃에게 사랑을 베푸는 분들이 많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분들에 대한 언급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 벌써 형평성에서부터 큰 문제가 있는 것이다.


(3) 중대형교회의 세습에 대한 비판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비판적인 안목을 가지고 있다. 특별히 이어받은 젊은 목사님들에게 불편한 마음이 없지 않다. 세습으로 인해 교회들이 한꺼번에 욕먹는 것을 보았다면 설혹 자신이 하는 일에 부끄러움이 없다 하더라도 기득권을 포기하면 안 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문화적인 차이도 있다. 미국의 경우 빌리그레이엄 목사님의 거대한 사역을 그 아이들이 이어받았지만 그런 것으로 비난하는 분위기는 없다. 문제는 능력이 되느냐 하는 것이다. 능력이 안 되면 문제가 되도 능력이 되면 더 이상 문제 삼지 않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그런 부분에 민감하다.


또 하나 생각할 것. 어렵고 힘든 교회나 사역을 이어가는 분들도 있다. 재미있는 것은 이런 분들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다는 것이다. 고생과 어려움을 이어받는 것은 잠잠하고 큰 것을 이어받으면 난리를 피는 것, 그것은 분명히 이중잣대이다.


(4) 세금을 내지 않는 것에 대한 비판


세금 문제에 있어서는 적극적인 홍보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할 것이다. 교회에 내는 헌금은 기부금 성격을 가진다. 이미 세금을 낸 사람들이 교회에 헌금을 하는 것이기에 거기에서 또 다시 세금을 내게 한다면 이중과세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이것 가지고 또 물고 늘어지지만). 또한 교회의 재정이 영리를 위해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도 부각시켜야 할 것이다. 누가 뭐래고 개신교가 사회봉사를 가장 많이 한다. 국가보조를 이야기 하는데 그래고 마찬가지이다. 어차피 국가보조 있으니 다 하면 될 것 아닌가? 그러나 만만치 않다. 어차피 많은 비용이 추가로 들러간다. 개신교 하나가 카톨릭, 불교 등 다른 모든 종교를 다 합한 것보다도 배 이상으로 더 많은 사회 봉사를 한다.


월드 비전.

기아대책. 불교에서도 참여하고 싶어하는데 길이 없다는 주지도 있었음.

장기기증.

헌혈.

다 기독교가 압도적으로 많음.


(5) 권력과 밀착된 기독교의 모습을 비판


착각을 하는 부분이 있다. 권력에 밀착하는 이들은 기독교 지도자 일부이지 기독교 전체가 아니다. 특별히 일반 대다수 성도들은 전혀 상관이 없다. 반대로 독재에 저항한 사람들 중에 기독교인들도 많이 있다.


단 조심할 것이 있다. 잘못에 대해서는 합리화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분명한 회개가 있어야 한다.


(6) 기독교의 친일활동에 대한 비판


이 부분은 정말 웃기는 일이다. 친일활동을 한 이들이 분명히 있지만 더 많은 이들이 독립을 위해 투쟁하였다. 독립선어 기초자들 중 가장 많은 이들이 기독교인들이다. 교회는 일본에 동조하지 않은 것으로 인해 폐쇄조치를 당하기도 하였다.


주기철 목사님. 신사참배 거부.

조만식 선생. 오산학교를 통한 지도자 양성. 독립운동. 물산장려운동.

안창호 선생.


(7) 민족주의에 호소하는 방식


단군이 우리의 시조라는 주장. 터무니없음. 기독교에 외세이기 때문에 떠나라는 주장. 웃기는 이야기. 그렇게 따지면 불교도 외세이다. 그런데 불교는 비판하지 않는다. 그리고 더 재미있는 사실은 안티기독교 하는 이들 중에 불교인들이 있다는 것이다.


김해경씨. 단군교 교주. 무당들의 우두머리급. 그가 예수님을 믿고 목사님이 됨.

능력으로 보아도 귀신들이 예수님만 못하다고 함. 당연한 이야기.


민족주의 말하는 이들이 정말 단군을 섬기나? 아님. 기독교 비난하는 구실일 뿐임. 그들이 정말 민족을 사랑하고 공헌하나? 그렇지 않음. 교회를 욕하기 위한 수단일 뿐임.


(8) 타종교에 대한 기독교의 배타성


이 부분에 대해서는 반박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구원자로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기 때문이다. 인간이 심판을 받는 것은 죄 때문이다. 죄를 해결해야 비로소 심판을 피하고 구원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의 노력과 수단 지혜와 수고로는 죄를 해결할 수 없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것이다.


예수님은 여러 종교 창시자들 중 한명이 아니다. 4대 성인 중 한명이 아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죽음을 이기고 사신 분이며 우리 죽음의 문제를 해결해주신 분이다.


공개적으로 배타적인 태도를 보이거나 단군상 목을 자르거나 하는 것은 미련한 짓이지만 예수님이 모든 것의 모든 것이라는 것은 포기할 수 없는 사항이다.


(9) 죄인이라고 하는 교리에 대한 비판


이 부분은 지금만이 아니라 오랫동안 기독교를 비판하는 무기가 되어 왔다. 심지어는 기독교 내에서도 전적 타락을 부인하는 모습들이 있었다. 펠라기우스라는 초기의 이단이 그것이다.


정직하게 생각하면 인간이 죄인임을 안다.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며 선보다 죄로 기울어 있다는 것을 말이다.


하나님을 만나면 더 분명해진다. 하나님은 빛이시고 빛 앞에서는 모든 것이 밝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10) 하나님의 속성에 대한


성경을 많이 인용하는 안티기독교인들. 부로 부정적인 측면에서. 그런데 내용들을 읽다보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내용이 많이 잘못 해석하거나 시대적인 배경을 무시한 것들로 가득하다. 신학대학에서, 대학원에서, 박사학위 과정으로 공부하면서도 극히 일부만 배울 뿐인 성경은 다 아는 듯이 말하는 것을 보면 사람이 저렇게 교만할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참 속상하고 화가 나기도 했던 것. 교회를 무너뜨리고 파괴하려는 시도.

가끔 그런 기도가 나오기도 함. “하나님 왜 내버려 두십니까? 시범 케이스로 한 명만 혼을 내주셔도 뭔가 정신을 차릴 일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그러다가 이미 잘 알고 있는 본문을 가지고 설교하게 되었다.

스테반을 향해 돌을 들고 치는 무리들. 그 무리들을 향한 스테반의 기도를. 나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된다.


아무튼 스테반은 순교를 당했다. 경건한 사람들은 그 일로 인해 살퍼한다. “2 경건한 사람들이 스데반을 장사하고 위하여 크게 울더라”


인간적으로 가슴 아픈 스테반의 죽음 앞에 마음을 상하게 하는, 아니 솔직히 말해서 분노하게 하는 한 사람의 모습이 등장한다.


1. 사울의 잔인함.


바로 사울이다. 그 잔인함에 몸서리가 쳐진다.


“1 사울이 그의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핍박이 나서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3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쌔 각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


1) 스테반의 죽음을 마땅히 여김.


돌에 맞아 죽었는데.

배형규 목사님이나 심정민 형제의 죽음을 마땅히 여긴 사람들.


아 이게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구나.


죄악이고 강퍅한 마음의 모습.

적어도 일단은 애도를 표해야 하는데.


2) 큰 핍박이 일어남.


사도 외에는 유대와 사마리아와 모든 땅으로 흩어짐.


얼마나 힘들었을까?

삶의 터전을 다 빼앗겼으니.


집 문제로 인해 고민하는 사람들.

직장 문제로 인해 고민하는 사람들.

왕따 당하는 것으로 인해 고민하는 사람들.


3) 사울이 교회를 잔멸함.


교회를 완전히 없애려고 하는 시도.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결박하여 옥에 넘김.


교회를 없애려는 시도. 끝없이 계속됨.


유대인들.

로마시대.

일제시대.

6. 25 때.

공산주의자들은 정말 심하게 핍박. 지금도 중국같은 나라에선.


그리고 이런 일에 앞장서는 이들이 있음.



2. 변화되는 사울.


1) 바울이 됨. 9장에 나타남. 그런데 미리 생각해보는 것임.


누가 그리하셨는가? 하나님.

그런 역사가 일어난 통로는? 바로 비참하게, 힘없이 죽은 스테반. 그의 기도.


이 말씀이 내게 얼마나 위로와 힘이 되었는지 모른다.

사실 요즘 내 안에는 아픔이 많이 있음.

개인적인 아픔도 있고, 그보다 큰 교회적인 아픔도 있고, 그보다 큰 나라적인 아픔도 있음.

너무 마음 아프지 않은가? 하나님의 영광이 땅에 떵어지는 것이.

피조물이 창조주 하나님을 향해 모독하는 것이.


수요중보기도팀이 기도하면서 나의 그 마음을 알게 됨. 하나님이 알게 하심.

인간적으로 가까워도 나를 위해 기도하지 않으면 모르는 것 기도를 통해 알게 하시는 것임. 그리고 더 기도하게 하시는 것임.


더 많은 기도자가 필요. 하다 말다 하는 사람 말고. 사명감 가지고 기도할 사람.

그런 사람이 한 명 더 늘음.

도혜정. 말해야겠다는 생각. 성령의 감동. 종종 그럴 때가 있음. 여러분들 중에도 들은 사람이 있음. 아무튼 혜정이보고 느닷없이 귓속말을 함. 오늘 그냥 가지 말고 기도하라고. 중보기도 모임에 참석. 끝나고 신이나서 내려옴. 방언받았다고. 이젠 기도를 계속 하겠구나 하는 생각.


요즘 은혜를 받은 미정이.

전에는 내 설교하는 것 보고. 왜 저러시지? 이해가 안 갔다고 함.

수련회 참석. 환상을 봄. 내가 엎드려 있는 모습. 내 기도를 할 때면 마음이 아픔, 가슴이 미어짐. 중보기도 하라고 함. 그걸 알면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음. 알바 끝나면 하기로 함.


정말이다. 마음이 많이 아프다. 악하고 교만한 사람들 때문에.

그런데 오늘 본문의 내용이 내게 소망을 줌.


그런 사람들도 변화될 수 있다.


다메섹에서 만나주신 하나님. 주님의 충성된 일군이 됨. 위대한 주의 종이 됨.


2) 사람은 변화될 수 있다.


시내 중심가 빈민촌에서 청소년 사역을 하고 있는 친구로부터 한 십대 소년. 그는 뉴욕의 빈민가 출신으로 내 친구가 인솔했던 교회 수련회에 1주일간 참석을 했다. 그 기간에 그는 섬기는 사람들의 사랑에 마음이 녹아 그리스도인이 되었고, 그가 뉴욕 집으로 돌아가자 사람들은 그에게 어떻게 해서 예수를 믿게 되었느냐고 물었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사람들이 나를 걱정해주고 돌봐주던 그 모습 때문이었죠. 모든 사람들이 다 나와 나에게 일어나는 일에 관심을 보여주었어요. 지금까지는 아무도 날 그렇게 사랑해주지 않았어요"


그는 전에도 복음을 들은 적이 있지만 그 수련회에 참석하기 전에는 한번도 하나님의 사랑이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지나는 시카고의 깨어진 가정 출신이었다. 그녀는 열 두 살 때부터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곧 환각제를 마시기 시작했고 다시 정맥에 히로인을 주사하기 시작했다. 교회의 설교는 그녀에게 있어서 언제나 지루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어느 한 교회의 형제 자매들이 그녀를 하나의 인간으로서 관심을 갖게 대해주기 시작했을 때 비로소 그녀에게는 하나님의 사랑이 와닿기 시작했다. 그녀는 그 형제 자매들이 정말로 자기를 그 모임의 한 식구로 원한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었다. 그녀가 그들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난 후에야 그녀는 하나님께서 그녀를 사랑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다는 등의 말들이 귀에 들어오고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아프리카의 마마쿼란드라고 하는 지방은 험악한 곳으로 유명했다. 그곳에서 힘 꽤나 쓰기로 악명이 높은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헷텐탓'이라고 하며, 그 곳 사람들은 누구나 잘알고 있었다. 어찌나 악명이 높은지 케이프 타운 주지사가 누구든 헷텐탓을 체포하는 사람은 미화 500달려의 상금을 주겠다고 발표까지 했었다. 그러나 헷텐탓의 일당은 바람처럼 나타났다가 바람같이 사라지곤 했기 때문에 잡을 수 없었다. 


어느 날 '로버트 모팻'이란 선교사가 케이프 타운에 나타나서 그 험하기로  이름난 마마쿼란드 지방으로 선교활동을 하러 들어간다고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그때 케이프  타운의 주지사는 로버트 모팻 선교사에게 “헷텐탓이란 자의 일당은 악한사람이므로 선교사님을 잡아서 죽인 다음 해골로 잔을 삼아 술을 마실 것입니다.”라고 경고를 했다. 모팻 선교사는 마마쿼란드라고 하는 지방에 들어가서 선교활동을 하게 되었다. 그가 목적하는 것은 한 가지였다. 하나님의 사랑 하나만 전하는 것이었다. 다른 것은 필요가 없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고 마마쿼란드 주민들이 변해가기 시작했다. 선교활동을 한지 여러 해만에 로버트 모팻  목사님께서 처음으로 케이프 타운을 방문하게 되었을 때 헷텐탓과 동행을  하게 되었다. 케이프 타운 지사가 그들을 보고 감탄했다. 입을 벌려 하는 말이 “기독교의 복음이 기적을 생산했습니다” 하더라는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사랑은 기적을 만드는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다.


이 성봉 목사가 21세 되던 해 6월 24일 주일이었다. 그는 그날 교회로 가는 대신에 수레에 광일을 잔뜩 싣고 평양으로 갔다. 이때 어머니는 눈물로 권유했으나 뿌리치고 평양에 간 그는 밤이 늦도록 술친구들과 어울리다가 함께 마차를 타고 동네 묘 앞을 지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가 오른쪽 다리가 통증이 오기 시작하더니 그가 집에 왔을 때는 친구들의 등에 엎혀오게 되었다. 어머니는 주일을 지키지 않는 때문이라고 크게 꾸짖었지만 그는 도리어 반항하고 어머니 말씀을 듣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병은 골막염이었고 다리를 절단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막상 죽음 앞에 두고 곰곰이 생각하면 할수록 허무한 인생이었다. 거기에다 자기의 지난날 저질렀던 패역과 반항, 불순종과 교만, 이 모든 것이 한꺼번에 그의 머리에 가득차 그를 괴롭히기 시작하여 마침내 자기는 죄인인 것을 깨달았다. 이젠 죽어도 회개하고 죽어야 하겠다는 생각으로 이불을 적시며 흐느껴 울고 있을 때 어머니가 들어오신 것이다.


그는 그대로 무릎을 꿇고 "어머니 이 불효자식을 용서해 주세요.  저의 이 많은 죄를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실까요.  어머니 저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하고 통회하기 시작했다. 그는 그 자리에서 완전히 하나님께 항복하고 하나님께서 살려주시면 몸을 주께 바치고 불쌍한 인간들에게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전하겠다고 서원하였다.  그는 모든 악습을 끊어 버리고 참평안을 찾았다.  병이 완쾌되지 신학을 하여 큰 부흥사가 되었다.



결론


변화에 대한 이야기.


은정이. 까칠하다고 함. 그게 없어짐. 정말 많이 변함. 우전도사님도 같은 이야기.

혜정이. 현실적. 많이 달라짐.

재신이. 소심했었는데 달라짐. 용기가 생김. 담대함. 적극적이 됨. “예수님 믿으면 변하긴 하네요”. 예수 믿는 것은 복이라고 말해줌.


누구든지 변화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