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환의 칼럼

밥투정하면 굶겨라/ 안희환

안희환2 2006. 9. 6. 16:06

밥투정하면 굶겨라/ 안희환  

 

    

 

어릴 시절, 새들의 제왕인 독수리가 그 새끼를 절벽 아래로 떨어뜨린다는 말을 들었을 때 참 잔인한 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뒤이어 큰 독수리가 다시 새끼 독수리를 낚아채서 창공을 향해 올라간다고 했을 때 아~ 떨어뜨려 죽이는 것은 아니구나 하고 안심을 했었습니다. 그런 과정의 반복이 독수리를 독수리되게 한다는 것을 마저 들었을 때 정말 대단하네 하며 감탄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사실 얼마나 어린 시절이었는지는 모르겠음).


그러고 보면 제왕은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닙니다. 편안하게 누워서 먹고 마시고 즐기면서 제왕이 되려하고, 제왕으로서의 권위만 즐기려 하면 곧 그 힘을 다 빼앗기고 말 것입니다. 성경에서 고생을 숱하게 하다가 왕이 된 다윗과 처음부터 왕자로 출발하여 호의호식하다가 왕이 된 솔로몬의 수준 차이는 왕이 되기까지 얼마만큼의 대가를 지불했느냐에 따라 나는 것이라고도 생각합니다.


세월이 한참 지난 오늘날에도 원리는 비슷하다고 봅니다. 자식을 사랑한다면 여행을 하게 하고, 고생도 하게 하고, 힘든 과정도 겪게 해야한다는 말에 전적으로 찬성합니다. 사실 요즘 아이들의 나약성과 의존성은 다른데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그 부모들의 과잉보호에 기인합니다. 소중하기에 애지중지하는데 그것이 오히려 소중한 아이를 무능력하게 만들어버리는 것입니다. 해 달라는 대로 다 해주고 오냐 오냐 하니 그 아이들이 어떻게 자립심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문제는 그런 현상이 아이들이 커가는 과정에서만 나타난다는 것이 아니고 대학을 졸업한 후에도, 또 결혼을 할 때에도, 더 나아가서 결혼 이후의 생활 속에서도 나타난다고 하는 점입니다. 자녀들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부모들이 많다고 하니 말입니다. 그 와중에 부모의 삶은 자녀들을 위해 저당잡힌 채 고생만 실컷 하다가 빈털터리 황혼만 남는 처량한 신세가 되기도 하는데, 그런 인생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깁니다.


40이 다 된 후에도 노모에게 손을 벌리며 살아가다가 줄 돈이 없다는 이유로 노모를 구타한 패륜아의 이야기가 신문지상에 오르내립니다. 사회의 최상 엘리트라 할 수 있는 교수의 지위에 올랐으면서도 그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엉뚱한 짓을 하다가 마침내 아버지까지 죽인 끔찍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런 자녀들이라면 키우는 보람이 무엇이며 그들을 위한 수고와 땀과 눈물은 얼마나 서러운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한 마디로 말해 다 부질없는 짓이라고 생각합니다. 고등학교나 대학을 공부하는 것까지는 최선 다해 돕되 그 이후부터는 스스로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도록 다그치기라도 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 고생하는 것이 안쓰럽다고 하나 둘 돕기 시작하면 결국 그런 삶에 익숙해질 것이고, 그 후로도 계속 그와 같은 원조를 기대할 것이며, 그것이 채워지지 않을 경우 불만이나 원망을 토로하기도 할 것입니다.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때로 부모들은 냉정해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전에 한참 선배가 되신 분에게 들었던 자녀 교육 이야기가 있습니다. 자녀들이 참 지혜롭고 야무지게 자랐는데 그 비결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스스로의 삶을 꾸려나갈 수 있도록 했다고 합니다. 그중 인상 깊은 것 하나는 아이들이 반찬투정하면서 밥을 안먹었을 때 아예 밥을 굶겼다는 것입니다. 한두 끼 굶더니만 배고파서 난리가 났는데 그 다음부터 밥상만 차리면 정신없이 먹는다는 것입니다.


만약 밥을 안 먹는 아이들이 불쌍하다고 생각되어 빵을 사주거나, 반찬을 새로 해주거나, 밖에 나가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을 주문해주었다면 그 아이들은 그 후로도 반찬투정하면서 밥상머리를 피곤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릅니다. 당장 굶는 것은 안쓰럽지만 그 아이의 미래를 위해 때로는 매몰찰 만큼 몰아가는 것도 필요한 것입니다.


제가 아는 어르신 한분이 있습니다. 이분은 60대 후반의 건축업을 하시는 분인데 재력이 어느 정도는 있는 분입니다. 최근에 빌라를 8채 지었고 지금은 양평에 전원주택을 지은 후 분양을 하는 중입니다. 빌라들 중 6채가 남아 있는 상태인데 그 아들들 중 아직 집이 없어 고생하는 아들들이 있습니다. 그중 하나는 결혼을 한 후 셋방살이를 하는데 그 어르신은 자신의 아들에게 집을 내주거나 하지를 않았습니다.


가만 보면 참 서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또 한 면에서 보면 그 어르신이 참 잘하시는 것이란 생각도 듭니다. 아들부부는 맞벌이를 하고 있는데 둘다 열심히 땀 흘려 일하고 있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굶어죽을 판국이니 최선 다해 돈을 버는 것입니다. 빈둥거리면서 부모에게 손 벌리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에 더 그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삶이 몸에 벤 후 나중에 집을 주어도 늦지는 않을 것입니다.


만약에 부모가 자신에게 무엇인가를 내어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부모를 향해 원망하고 불평한다면 그것은 자녀를 제대로 키우지 못한 증거이기도 할 것입니다. 또 그 정도 수준의 자녀라면 부모가 큰 도움을 주어도 고마움을 뼛속 깊이 느끼지도 못할 것이고, 그렇게 내어준 물질이 자녀의 일생에 도움이 되지도 못할 것입니다. 다만 틈 날 때마다 부모에게 손을 내미는 못된 버릇만 키워줄 수 있는 것입니다.


제게는 아이들에게 물려줄 돈도 부동산도 없습니다. 설혹 있다 하더라도 자녀들이 그것을 의존하고 기웃거리는 꼴은 보지 않을 것입니다. 밥투정할 때 숟가락 들고 쫓아가서 먹이는 아내를 말린 적이 있는데 배가 고파지니 잘 먹습니다. 스스로 하지 않을 때 그 대가를 치르게 하니 어린 아이임에도 정신을 차립니다. 고등학교나 대학까지는 부양할 것입니다만 그 후로는 스스로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도록 하는 것이 부모나 자녀 모두에게 윈윈 전략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