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름발이 토끼같은 지도자를 원한다/ 안희환
우화는 그냥 재미있는 이야기 정도가 아니라 상당한 교훈을 담고 있는 내용들이 많습니다. 우화형식을 빌어 깨달음을 주는 이야기들이 많은 것입니다. 이현주씨의 [모퉁이돌]에는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가 실려 있는데, 이 우화는 지도자들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특히 많은 교훈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그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평화로운 토끼 나라에 커다란 뱀이 나타났습니다. 토끼 나라의 평화가 깨졌습니다. 뱀은 매일 매일 토끼를 잡아먹었습니다. 토끼들은 그 뱀과 싸워 이길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토끼들은 너무나 무서웠기 때문에 집 밖으로 나갈 엄두를 내지 못하고, 문을 닫아걸고 공포 속에 살았습니다.
그 때 이미 뱀에게 그 사랑하는 짝을 잃고, 그 자신의 왼 쪽 발 하나도 뜯긴 절름발이 토끼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이 토끼는 곰곰이 생각하였습니다. “이건 도무지 사는 것이라 할 수 없다. 어떻게 하면 예전의 평화로운 토끼나라를 회복 할 수 있을까?” 절름발이 토끼는 하나의 결론에 도달하였습니다. “토끼나라의 평화를 되찾으려면 저 흉악한 뱀을 없애는 길 밖에 없다”.
절름발이 토끼는 오래 고뇌하였습니다. 그리고 오직 한 길 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토끼는 문을 열고 집밖으로 나갔습니다. 토끼는 울긋불긋한 버섯이 많이 피어 있는 숲으로 갔습니다. 토끼는 그 아름다운 버섯을 마구 마구 뜯어먹었습니다. 머리가 어찔어찔하였습니다. 토끼는 절름거리며 뱀 굴로 갔습니다.
토끼는 뱀 굴 앞에 서서 “이 못된 뱀아, 나와 봐라, 이 나쁜 놈아!” 하고 소리쳤습니다. 뱀이 슬- 슬- 슬 기어 나와 절름거리는 토끼 모양새를 보고는 아니 이놈이 미쳤나! 하였습니다. 뱀은 마침 배도 출출한 판인데 어쨌든 잘 됐다 하고 덥석 한 입에 절름발이 토끼를 삼키고, 제 굴로 도로 들어가 엎드렸습니다.
그리고 뱀은 그 굴에서 영원히 나오지 못하였습니다. 토끼 나라에는 다시 활기찬 자유와 넘치는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절름발이 토끼는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토끼 나라에 평화를 가져다 준 것입니다(웃음님의 글에서 수정). 생각으로만이 아닌, 말로만이 아닌 행동으로 나라 전체를 살리는 위대한 모습을 보여주었던 것입니다.
지금 우리나라가 위기 가운데 있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주변의 강대국들 틈바구니에서 줄다리기를 하는 것이 만만치 않습니다. 나라의 경제는 밑바닥으로 곤두박칠치다 못해 땅 속으로 파고드는 중입니다. 신용불량자의 숫자는 여전히 엄청난 수를 자랑하고 있고, 노숙자들의 모습은 여기저기서 쉽게 발견됩니다.
어디 그 뿐입니까? 도박공화국이라고 해도 무색하지 않을 만큼 사행성 오락실이 전국에 퍼져 있습니다. 제대로 단속하지 않고 오히려 돈을 받아 챙긴 경찰과 공무원들이 부지기수입니다. 부부싸움이 과도하다 못해 납치 살인 등으로 이어지는 일이 빈번해지고 있습니다. 10대들은 그야말로 거칠 것 없는 행동을 표출하면서 어른들을 불안하게 하고 있습니다.
개인, 가정, 사회, 직장, 나라 모든 부분에서 총제적인 위기라는 말을 수없이 하기도 하고 듣기도 하는 우리들의 시대. 어떤 면에서 보면 참으로 암담한 시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어떻게 해야 이런 수많은 어려움들을 극복하고 이 나라를 살기 좋고 아름다운 나라로 바꿀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저절로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고민과 고뇌만으로는 아무 것도 이룰 수 없습니다. 독버섯을 잔뜩 먹고 독사를 향해 돌진해 들어가 큰 소리를 치며 자신을 삼키기를 기다리는 절름발이 토끼와 같은 행동하는 사람이 필요한 것입니다. 자기 실속 다 챙기고 자기 살 길 다 열어놓고 위험한 장소를 다 피한 후 안전지대에 서서 나라 걱정하는 듯이 큰소리치는 것으로는 아무 것도 이룰 수가 없는 것입니다.
젊은이들을 많이 상대하면서 배우는 것이 있습니다. 말만 하고 행동하지 않는 지도자, 떠벌리기만 하고 희생할 줄 모르는 지도자의 말에는 그다지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말을 그럴듯하게 해도 속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도자가 먼저 앞장서서 위험하고 좁은 길을 걸어갈 때 뒤돌아보면 함께 따라오고 있는 청년들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회의 각 분야, 더 나아가서 나라의 각 분야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현대인들은 듣고 싶어하는 것이 아니라 보고 싶어합니다. 먹으면 죽을 줄 알면서도 모두를 위해 독버섯을 입에 넣고 과감하게 씹어 삼키는 삶을 보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사라지면 아무 것도 누릴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모두에게 평화를 주기 위해 사지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는 그런 삶을 보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이제 대선이 다가올수록 지도자라고 자청하는 사람들이 나라를 위하는 척 온갖 큰소리를 내면서 어디에 줄을 서야 자손대대로 출세와 성공의 가도를 달릴까를 연구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누가 철새라 하든 말든 자리만 차지하고 느긋하게 기다리면 소문은 곧 지나가는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 하에 뻔뻔한 얼굴을 여기저기 들이밀고 다닐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이제 사라져야 합니다.
나라의 총제적인 위기는 진정한 지도자의 부재에서 온다고 생각합니다. 저마다 지도자라고 주장하며 자신을 따르라고 말하는 사람은 많은데 움직이는 지도자, 행동하는 지도자, 헌신하는 지도자, 희생하는 지도자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 그것이 우리나라의 가장 큰 문제일 수 있는 것입니다. 절름발이 토끼같은 지도자를 기다려 봅니다. 속히 그 모습을 보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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