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환의 칼럼

자녀에게 목숨 걸 필요 없다 / 안희환

안희환2 2006. 8. 9. 17:44

자녀에게 목숨 걸 필요 없다 / 안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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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기 전 아내 될 사람에게 다짐을 받은 것이 있습니다. 결혼 후에 자녀들이 생기더라도 자녀들에게 너무 몰두하다가 부부 사이가 소홀해지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배우자를 자녀들에 비해 가볍게 대하다가 부부 사이가 소원해지고 자녀들이 다 장성한 후에는 정작 효도를 받지도 못한 채 부부 사이도 서먹해져버리는 일들이 많다고 들었었기 때문입니다.


마침내 자녀들이 생겼습니다. 큰 아들은 이제 초등학생이고 작은 아들은 아직 진학하지 않은 상태입니다. 나는 다짐한대로 아내를 최우선에 두고 지냈습니다. 그런데 아내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이 우선이고 남편은 뒷전인 것입니다. 사실 이것 때문에 서운해 하기도 했고 아내에게 투덜거리기도 했지만 이제 모성은 어쩔 수 없는가보다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내가 아이들에게 목을 맨 채 행동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얼마 전 노후 대책에 대한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수입이 없는 상태에서 높은 물가의 한국 상황이기에 노년이 되면 꽤 많은 돈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상당수 사람들이 그런 노후대책을 전혀 준비하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아니 준비하지 않는 게 아니라 못하고 있다는 것이 옳은 표현일 것입니다. 그 덕분에 힘들고 고달픈 노년기를 보내는 이들이 많은 것입니다.


중요한 점은 노년을 대비하지 못하는 주요한 이유들 중 하나가 자녀들을 위한 교육비 지출이 너무 크다는 점이었습니다. 초등학생은 그나마 나은 편이지만 중학생부터 학원이다 과외다 하면서 많은 액수의 돈이 지출되는 것입니다. 고등학생이 되면 그 지출 규모는 더 늘어나고 대학생이 된 후에는 정말이지 막대한 액수가 나가야만 합니다. 정말 가난한 사람은 대학공부 하기가 어려울 만큼 비싼 등록금인 것입니다.


여기에 더해 자녀를 유학 보내는 경우 국내에서 대학을 보내는 것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천문학적인 액수가 소요됩니다. 때론 자녀를 뒷바라지하기 위해 어머니가 함께 외국으로 가고 아버지는 홀로 남은 외기러기가 되어 돈 보내주는 기계처럼 쓸쓸한 신세로 전락합니다. 부부간에 서로를 보살피며 여가도 즐기며 오붓한 생활을 해야 하는데 자녀들을 위해 그런 시간들을 모두 희생하는 현실인 것입니다.


문제는 그렇게 키운 자녀가 부모의 헌신과 희생을 알고 효도할 줄 아느냐 하면 그게 아닌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마치 자기가 잘나서 공부도 하고 출세도 하고 성공도 한 것처럼 으스대면서 부모님께 고마워할 줄 모르는 배은망덕한 사람들이 실제로 있는 것입니다. 그런 자녀를 둔 노부모의 보람이란 아무 것도 없을 것입니다. 후회와 절망으로 점철된 노후를 보내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부모가 자녀 교육의 열정이 남달랐습니다. 부모는 큰마음을 먹고 아들을 미국으로 유학 보냈습니다. 아들의 학비와 생활비는 막대한 돈을 필요로 했고 그것을 공급하느라 부모의 허리는 새우등처럼 휘었고 재산은 거의 다 소진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천만다행으로 그토록 공을 들인 아들이 성공하였습니다. 미국의 대기업에 취직하였는데 넉넉하게 살 수 있는 형편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미 가진 돈 쓰고 나이도 들은 부모는 한국에서 먹고 살 길이 막막해졌습니다. 마침내 그토록 사랑하고 자랑스럽게 여기던 아들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성공해서 잘 살게 된 아들은 어떻게 부모를 대했을까요? 그 아들은 부모가 살 수 있는 아파트 한 채를 마련해주었습니다. 그러나 모시지는 않았습니다. 찾아가거나 따듯하게 보살피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아내와 자식들 하고만 희희덕 거리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살 돈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는 상태이기에 늙은 부모는 어려운 형편이 되고 말았습니다. 사는 게 어려우니까 교회에서 구제해주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견디다 못한 아버지는 아들에게 자존심을 굽히고 전화를 했습니다. “얘야 내 형편이 이렇구나. 너 공부시키느라 내가 이렇게 되었으니 돈 좀 보내주려무나.” 아들은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아버지 미국은 사회보장제도가 잘되어 있어서 굶어죽게 하지 않습니다. 내일 사회보장 사무실로 가셔서 등록하시면 그곳에서 극빈자 보조금이 나옵니다. 가서 신청하세요.”


그게 다였습니다. 아들은 그 말과 함께 전화를 끊어버렸습니다. 아버지는 이미 통화가 끊긴 전화기를 내려놓지 못하고 엉엉 울었다고 합니다. “아! 내가 이런 꼴을 보려고 자식을 키웠단 말인가? 내가 이런 꼴을 당하려고 자식을 보냈단 말인가?.”그러나 아무리 탄식을 해봐도 지나간 세월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남은 것은 가난하고 쓸쓸한 노년 생활뿐이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이야기가 극단적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사실 이 보다 더한 일들도 많이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사연들이 이 나라의 부모님들에게 있을 것입니다. 그 부모들 중 하나가 내 부모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몸이 움츠려들기도 합니다. 또는 내가 그런 부모가 되면 어떻게 하나 하는 기우를 해보기도 합니다.


조금 냉정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자녀들에게 목숨 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도울 수 있는 대로 최선을 다해 자녀를 보살펴야 하겠지만 힘에 지나도록 무리할 필요는 없으며 부부간에 오붓한 생활을 전혀 가지지 못할 만큼 희생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여가도 즐기고, 여행도 다녀보고, 노후를 위한 연금이나 저축도 가능하면 들어두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그나마도 형편이 되는 사람에 한에서 가능한 일이겠지만 말입니다.


자녀들이 소중한 것은 사실이지만 남편이 아내를, 아내가 남편을 더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는 것도 인생을 지혜롭게 사는 한 비결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배우자와 자녀에 대한 사랑을 비교하느냐며 항의할 분들이 있을지 모르지만 누가 뭐래도 노년에 등을 맞대고 서로 위안을 삼을 수 있는 대상은 자녀들보다 남편 혹은 아내일 것입니다. 아직 배우자가 살아있다면 둘 사이의 사랑을 가꾸고 추억을 심는 작업을 이제부터라도 해나가길 제안해 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