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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제조업, 한국에 떨고 있다는데...박용하 산은경제연구소 경제조사팀장 기사100자평(14) 페이스북 트위터 미투데이 요즘 싸이 공감 조선블로그 MSN

안희환2 2011. 7. 26. 17:13

日제조업, 한국에 떨고 있다는데...

  • 박용하 산은경제연구소 경제조사팀장

입력 : 2011.07.26 15:21 / 수정 : 2011.07.26 15:25

박용하 산은경제연구소 경제조사팀장 /조선일보DB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아주 흔했던 일이다. 일본에 가는 한국 여행자들은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일제(日製) 전자제품을 사오는 것이 유행(流行)이었다. 비디오, 오디오 제품은 물론, 카메라, 캠코더, 시계, 전자계산기 등등 품목을 가리지 않았다.

일제(日製)는 디자인이 깔끔하고, 고장이 적었다. 값이 국산에 비해 턱없이 비싸도 인기가 높았다. 국산제품은 대부분 비교 대상이 되지 못했다.

일제 밥솥은 특히 인기였다. 전기밥솥은 부피가 어지간히 커 국제선을 오가기엔 여간 부담스러운 물건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일명 코끼리 밥솥이라 불리던 일제 밥솥은 포기하기 힘든 아이템이었다. ‘부엌의 품위가 달라진다’고 했다.

그러나 이제 상황은 딴 판이 됐다. 덩치 큰 코끼리 밥솥을 사오는 한국 주부는 찾아볼 수 없게 됐다. 오히려 우리나라의 중소기업이 일본에 밥솥을 수출하는 세상이 됐다. 다른 일본 전자제품에 관심을 갖는 사람도 크게 줄어들었다. 용산, 테크노마트 등 전자상가에서 일본 제품을 찾기가 쉽지 않게 됐다.

지난 7월 17일. 묘하게도 우리의 제헌절(制憲節)인 이날 일본의 경제일간지인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는 한국기업들이 일본의 전기, 조선, 자동차 시장을 빼앗아 가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것도 1면 톱기사로, 지면의 절반을 할애하면서 노골적인 경계심을 나타냈다.

신문은 우선 엔고(高)로 일본 제조업이 타격을 받으면서 한국에 세계시장을 뺏기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일본차 수준으로 품질이 향상된 한국의 현대자동차는 유럽시장에서 판매를 늘리고 있고, 삼성중공업은 자원운반선(資源運搬船) 등의 수주(受注)에서 일본을 압도한다고 전했다.

특히 7월 FTA(자유무역협정) 발효로 유럽연합(EU)에서의 관세인하로 한국제품 가격 경쟁력이 더 높아진 반면, 일본내 전력 부족 상황이 길어지면서 일본기업은 더욱 힘든 상황을 맞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일본 산업계가 가장 충격적으로 받아들인 것인 자동차 분야다. 현대자동차(기아자동차 포함)는 올 상반기 미국시장에서 56만 7900대를 팔아 미국시장 점유율 9%를 기록했다. 토요타(12.8%), 혼다(9.6%)의 턱밑까지 추격했다. 같은 기간 유럽 25개국에서는 현대차가 33만 6000대를 팔아 점유율 4.7%로 토요타를 0.7%포인트 앞섰다.

사무기기에서도 이런 현상은 나타난다. 사무기기는 전통적으로 일본이 가장 자부하는 분야다. 제록스, 리코, 캐논사(社)는 고급기술을 앞세워 세계시장을 휩쓸었다. 그러나 그들을 제치고 이제는 삼성전자가 출하기기수(出荷機器數)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는 이를 ‘이변(異變)이라고 표현했다.

조선(造船)에서도 한·일의 명암이 엇갈렸다. 컨테이너선이나 벌크선 등 기존 경쟁력이 떨어졌던 저부가가치 선박은 물론 높은 기술수준이 요구되는 LNG선이나 심해유전 개발용 시추선 등에서도 한국이 압도적인 차이로 수주를 따냈다. 일본은 현재 같은 배를 수주해도 한국에 비해 가격경쟁력이 30% 떨어진다고 볼멘소리를 하고 있다.

일본기업들은 스스로 6중고(重苦)에 허덕이고 있다고 말한다. 엔고(高)와 글로벌 온실가스 배출 규제, 통상정책의 부진, 중과세, 제조업에 대한 강한 규제, 전력부족 등이 이들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한국에 시장을 내주는 이유가 다 설명되지는 않는다. 한국의 제조업은 ‘태생적인 한계’를 극복했다고 할 수 있다. 일본 제조업이 기술경쟁력과 값싼 인건비를 토대로 한 중국의 가격경쟁력에 밀릴 수 밖에 없는 구조, 이른바 넛크래커(nut cracker, 호두까는 기계) 현상, 샌드위치 위기론을 보기 좋게 이겨낸 것이다.

비결은 무엇일까. 어떤 전문가는 한국이 독창적인 생산기술을 갖춘 것에서 찾는다. 전자·자동차 등에서의 역전현상은 일본 기업들이 리스크가 큰 기술에 집착한 반면, 한국은 보편적 기술을 잘 소화해 글로벌 시장을 주도했다는 것이다.

IMF 외환위기 이후 다져진 제조업의 경쟁력과 위기대처 능력에서 보다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위기를 거치면서 강화된 내부구조개선 노력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지난 2009년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은 이미 한국 제조업의 가능성을 간파했다. 그해 5월 그는 “한국에는 우량기업이 많아 추가로 투자하기 위해 기업을 찾고 있다”고 말했었다. 투자의 귀재는 독자적인 기술에 위기대처 능력까지 갖춘 한국 기업에 주목한 것이다.

자, 그럼 우리는 여기서 만족하면 될 것인가. 아니다. 지금이 가장 중요하다. 자만심을 경계해야 할 때다. 과연 우리가 일본 제조업을 제쳤다고 할 수 있을까. 일본 제조업은 1백년 역사를 가졌다. 니케이 기사엔 일본의 엄살이 엿보인다.

◆ 박용하는?
산은경제연구소 경제조사팀장. 연구소 내 국제경제팀장을 거쳐 구미(歐美) 경제파트를 이끌었다. 한때 국내 일간지에서 경제부·국제부 기자로 다양한 경험을 하기도 했다. 산업은행에선 국제금융부, 국제업무부, 외화자금부, 자금거래실, 런던지점 등에서 근무하며 국제업무를 두루 섭렵했다. 서울대학교 국제경제학과와 고려대 대학원 경제학과를 졸업했고, KAIST 금융공학과정을 거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