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마시던 청년이 탁월한 설교자로(게리 윈즈 목사님)/ 안희환
탁월한 말씀의 사역자들을 볼 때마다 부러운 마음이 생깁니다. 어떻게 하면 저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있게 묵상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저렇게 심금을 울리는 메시지를 전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들이 물밀 듯 밀려드는 것입니다. 나름대로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저 자신의 부족함을 보게 되면서 더 열심히 말씀을 연구하고, 더 무릎을 꿇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됩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말씀의 사역자는 스펄전 목사님이십니다. 직접 그분의 설교를 들은 적은 없지만 스펄전 목사님의 전기를 읽을 때마다 그 엄청난 말씀의 능력을 상상하면서 전율하게 됩니다. 철저하게 기도의 삶을 살았던 설교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에 인생을 걸었던 설교자, 굳을 대로 굳은 마음들을 말씀의 방망이로 부쉈던 설교자인 스펄전 목사님의 삶을 따라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것입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저에게 요즘 깊은 감동을 안겨주었던 목사님이 계십니다. IHOP의 창립자이신 게리 윈즈 목사님이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몇 차례의 설교를 들으면서 많은 은혜를 받았는데 마음 깊은 곳까지 파고드는 말씀의 능력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가슴이 뜨거워지고 하나님을 더 깊이 생각하게 되는 제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게리 윈즈 목사님은 설교 원고를 따로 가지고 설교하지 않는데도 삼천포로 빠져 흐름을 놓치는 일이 없었습니다. 상상력을 동원하여 본문의 내용을 보다 깊이 들여다보도록 설교하였는데 마치 영상을 보는 것처럼 선명한 메시지였습니다. 다양하게 인용하는 성경 말씀이 기록된 것을 보고 하는 것이 아니고 기억하고 있던 것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것이기에 인상 깊었습니다.
이제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은 게리 윈즈 목사님의 방황기와 그것이 중단되었던 계기에 대해서입니다. 놀랍게도 게리 윈즈 목사님이 젊은 시절부터 영성이 깊고 성결한 삶을 살았던 분은 아니었음을 듣게 되었습니다. 맥주를 마시고 방탕한 삶을 살았고 그런 삶은 학교의 명예를 훼손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학교 측에서는 게리 윈즈 학생를 정학시킬 것인지 회의를 열기까지 했는데 다행히 다시 기회를 주는 것으로 결정되었습니다.
어느 날 게리 윈즈 학생은 고개를 숙인 터벅거리며 교정을 걷고 있었습니다. 그때 맞은편에서 교수님 한 분이 걸어오시는 것이 보였습니다. 게리 윈즈는 그 교수님과 부딪히고 싶지 않았기에 자신이 가던 길에서 비켜나 교수님과 부딪히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런데 그 교수님 역시 자리를 이동하여 게리 윈즈가 있는 쪽으로 마주 왔습니다.
게리 윈즈를 마주친 교수님은 학교의 명예를 실추시킨 게리 윈즈를 질책하지 않았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로 타이르지도 않았습니다. 왜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지 조목조목 설명하지도 않았습니다. 충분히 그렇게 하실 수 있는 자격과 위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교수님은 게리 윈즈를 향해 책망의 말을 꺼내지 않았던 것입니다. 다만 게리 윈즈를 꼭 껴안고 “잘 왔다. 환영한다. 게리야”라고 말했으며 어깨를 툭툭 치며 격려하고는 가버리셨습니다.
게리 윈즈의 마음속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 것은 바로 그때였습니다. 성령님께서 게리 윈즈의 마음을 만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제가 게리 윈즈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면서 느낀 따듯한 마음의 깊숙한 곳에 자신을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여준 그 교수님의 사랑이 있었다고 생각되었습니다. 게리 윈즈 목사님은 그 교수님을 통해 자녀들을 향해 변함없이 손을 내밀고 계신 아버지의 사랑을 느끼게 되었고, 그 사랑에 변화가 되었고, 이제 그 사랑을 전하는 설교자가 된 것입니다.
낮이나 밤이나 집 나간 탕자를 기다리시던 아버지. 그 많은 돈을 흥청이며 탕진하고는 돼지 냄새를 풍기며 돌아온 탕자를 알아보고 먼 곳에서 달려가 부둥켜안으신 아버지. 아들 자격 없으니 종들 중 하나로 여겨달라는 탕자의 말에 종들을 시켜 가락지를 끼우고, 신을 신기고, 옷을 입히고, 송아지를 잡아 잔치를 벌이게 하신 아버지. 사람의 변화는 질책과 꾸지람을 통해서가 아니라 가슴 깊이 느끼는 아버지의 마음, 아버지의 사랑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을 다시 한 번 배우게 되었습니다.
게리 윈즈 목사님과 마주 앉아 식사를 하면서 결코 권위적이거나 상대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넉넉함이 풍겨 나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제 경우 성품이 날카롭고 공격적인 면이 있는데 그런 저의 모습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저 역시 아버지의 사랑과 마음을 경험하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그 마음을 더 깊이 경험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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