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의 장례식을 치르며/ 안희환

수없이 목격하면서도 쉽게 적응이 되지 않는 것이 죽음인 것 같습니다. 세상에 와서 저마다의 한 평생을 살다가 마지막 숨을 들이키지 못해 죽은 자가 되고 마는 인생, 원하든 원하지 않는 누구나 겪어야 하는 통과의례인 것입니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지어다”라는 성경의 내용처럼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인생인데 뭘 그리 버둥거리며 살까 하는 생각을 떠올려 보기도 합니다.
지난 화요일의 일입니다. 현리에 갈 일이 생겼습니다. 부목사인 김덕준 목사님, 작은 교회 운동의 김명균 목사님, 채수철 장로님, 그리고 제가 동행을 하였습니다. 그날 채장로님으로부터 형님이 돌아가셨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몇 년 전 아내를 암으로 잃고 이제 형님을 잃은 채장로님의 눈에서 슬픔이 떠다니는 것만 같았습니다. 이북에서 오신 분이라 일가친척이 많지 않기에 더 그렇게 보였습니다.
현리에서 돌아온 후 함께 장례식장인 용인에 가려고 했는데 갑자기 함께 갈 사람들을 부르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기에 다음 날로 연기하였습니다. 내일 오후 12시경에 김명균 목사님과 크리스찬 투데이의 김대원기자님을 만나기로 했기에 오후 2시에 용인을 향해 출발하기로 하였고 김덕준 목사님에게 갈 수 있는 사람을 알아보라고 하였습니다.
다음 날 새벽입니다. 1부와 2부를 마친 시점에 김목사님이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오순예 권사님의 남편이 돌아가셨다는 것이었습니다. 오권사님의 남편인 김금식님은 오랜 세월 아파서 누워 지내는 중이었습니다. 오권사님이 먹을 것을 가져다주지 않으면 굶을 수밖에 없을 만큼 몸이 쇠약해져 있었습니다. 그 동안 오권사님은 불평 한 마디 없이 남편의 뒷바라지를 하였는데 이제 그 남편이 운명한 것입니다.
모든 일정을 중단하고 아침에 교인들과 함께 대림성모병원에 갔습니다.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리고 가족들을 위로해주었습니다. 11시가 조금 지난 시간에 15인승 프레지오를 타고 용인으로 향했습니다. 채장로님의 형님 장례식에 갔다 오기 위해서입니다. 채장로님의 형님이 다니던 교회에서 장례식을 다 진행하기에 저는 한번 예배를 인도하는 것 외에 특별히 할 일이 있지는 않았습니다.
점심 식사 후 교회를 향해 출발했는데 도착하고 나니 생각보다 시간 여유가 있었습니다. 한 시간 정도 서재에 있다가 대림성모병원으로 향했습니다. 5시에 입관예배를 드리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병원에 도착해보니 입관을 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대화에 실수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용인까지 갔다 와야 하니 입관을 다 해놓고 있으면 돌아와서 입관예배를 인도하겠다고 했는데 우리가 도착한 후 입관도 하고 예배도 드리는 줄 알았던 모양입니다.
입관이 끝나길 기다렸다가 입관예배를 드렸습니다. 자주 경험하는 장례식이지만 역시 장례식엔 슬픔이 밀려옵니다. 말씀을 전하면서 하나님의 위로가 함께 하시기를 원했고, 남은 가족들이 서로 사랑하며 복음 안에서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온 가족들이 눈물로 입관예배를 드렸습니다. 입관 예배 후 교회에 가서 수요예배를 드렸습니다.
다음 날입니다. 새벽예배를 마치고 집에 들러 아침 식사를 한 후 아내, 김덕준 목사님과 함께 임영남 성도님이 입원해 계신 보라매 병원에 갔습니다. 축농증 수술을 받기로 한 날인데 수술 전에 기도해주려고 서둘러 간 것입니다. 그런데 수술 일정이 너무 빨라져서 이미 수술실에 들어간 다음이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수술 이후에 다시 들르기로 하고 교회로 향했습니다.
교회에 도착한 후 교인들과 함께 대림성모병원에 갔습니다. 김금식님의 가족들을 위로해주기 위해서입니다. 함께 모여 위로예배를 드리고 교인들을 교회에 태워다 준 후 아내, 김덕준 목사님과 함께 여의도로 향했습니다. 박천석집사님을 심방하기 위해서입니다. 박집사님은 사업을 크게 하던 분인데 부도를 맞아 고생을 하다가 다시 재기하고 있는 중입니다. 이제 수입도 생겨서 아내에게 생활비도 주고, 아들에게 용돈도 줄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참으로 잘 되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식사 마치고 차를 마신 후 보라매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임영남 성도님의 축농증 수술은 잘 끝나있었습니다. 손을 잡고 간절히 기도해 주었습니다. 심방을 마치고 아내는 학교로 향했고 저는 교회로 가서 잠시 시간을 내어 글을 썼습니다. 8시부터는 성도들을 제자훈련 시키는 시간인데 언제나 그렇듯이 말씀을 나누면서 얻는 기쁨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다음 날은 새벽 4시 45분에 모여 대림성모병원으로 향했습니다. 5시에 발인예배를 인도하였고 예배 후 영정과 관이 먼저 나가고 그 뒤를 따라 유족들이 지나가는 동안 통로 벽에 나란히 서서 “하늘 가는 밝은 길이 내 앞에 있으니”라는 찬양을 불러주었습니다. 마음이 울컥했습니다. 눈물짓는 유족들의 모습이 가슴을 아프게 했습니다. 그래도 감사한 것은 천국의 소망이 있다는 것인데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가를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5시 30분에 벽제 화장터로 향했습니다. 7시 3분에 화장을 시작하였고 김금식님의 몸이 불에 타는 동안 그것을 눈물지으며 지켜보는 가족들을 위해 예배를 인도하였습니다. 설교는 따로 하지 않았고 계속 찬양을 불러주었습니다. 한줌 밖에 남지 않은 김금식님의 몸을 항아리에 담아 충주에 있는 묘지로 향했습니다.
도착한 충주의 묘지는 무척 컸습니다. 제가 평생 보아온 묘지들 중 가장 컸습니다. 온 산이 다 묘지로 덮여있었습니다. 쓸쓸해야할 묘지도 그렇게 대규모가 되니 장관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산 정상 부근에 올라가 하관예배를 드렸는데 추위에 몸이 덜덜 떨렸습니다. 유족들은 더 추웠을 것입니다. 눈물이 볼을 타고 내려갔으니 말입니다. 저 역시 눈물을 흘리고 말았습니다. 김금식님의 따님이 울며 말했습니다. “아빠 잘 가. 아빠 미안해.”
산 밑으로 내려온 후 유족들에게 위로의 말을 전하고 서울로 향했습니다. 몸이 너무 아프고 힘들어서 서재에 있는 소파에 누워 있다가 몸이 계속 가라앉을 것 같아 산책을 나갔습니다. 산책 중 전화가 왔는데 현경이였습니다. 함께 이야기하고 싶어 하기에 산책을 하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현경이는 지금 “행동하는 양심”이라는 NGO에서 일하고 있는데 내년에는 필리핀에 가서 활동하게 됩니다.
예배당에 올라가서 개인기도 시간을 가진 후 금요예배를 드렸습니다. 몸이 아픈 상황에서 오늘 설교는 제가 아니라 박영진 선교사님이었는데 참 다행이란 생각도 들었습니다. 11시에 공식적인 기도회가 끝나고 그 후로는 개인기도시간이 이어지는데 체력이 따라주지 않아서 11시 30분 정도까지 기도한 후 서재로 내려왔습니다. 끙끙거리며 다음 날 새벽예배 설교를 준비하고 글 한편을 마무리하니 1시가 넘었습니다.
다음 날 새벽예배를 드리고 서재에 와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이제부터 내일 있을 주일 예배를 위해 설교를 준비해야 합니다. 내일 오후에는 다른 교회에 가서 설교를 할 것이고요. 늘 피곤할 만큼 바쁘게 사셨던 예수님을 본받아서 최선을 다해 살려고 하는데 늘 부족한 마음뿐입니다. 다만 온 힘을 다해 주님을 섬기고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섬기려 하는 마음을 주님이 기쁘게 봐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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