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겪은 판자촌 생활(72)/ 개구리를 위한 묵념/ 안희환
충남 서산군 성현면의 큰아버지 댁은 판자촌에 있던 우리집만큼은 아니어도 나름대로 많은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이렇게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서 여러 가지 내용들이 생각나는 것을 보면 말이다. 한 동안은 그곳에서 있었던 이야기들을 더 나누어야할 것 같다. 생생하게 장면이 떠오르는데 그냥 지나치기에는 너무 아쉽기 때문이다.
큰아버지가 양봉을 하시던 것보다 늦게 시도를 하신 것은 제법 넓은 웅덩이를 파고 그 안에 가물치를 기르시던 일이다. 지금은 가물치가 약재료로 쓰이는 것을 알고 있지만 어릴 때는 그냥 잡아먹을 물고기를 키우나보다 하는 생각을 했었다. 물을 무서워하기에 웅덩이에 바짝 다가가지는 않았지만 웅덩이 가에서 물속을 들여다보면 들락거리는 가물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큰아버지는 재미있게 놀고 있는 우리들에게 가물치를 위한 특명을 내리셨다. 개구리를 잡아오라는 것이다. 개구리가 가물치의 먹이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그냥 그런 일을 시키면 개구리 잡는데 열심내지 않을까봐 그러셨는지 큰아버지는 현상금도 거셨다. 개구리 한 마리당 얼마 하는 식으로 말이다. 지금에 와서 그 액수가 얼마였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정말 목숨 걸고 개구리 사냥을 다녔던 기억만은 확실하다.
다리가 긁히기도 하고 물이 고인 곳에 발이 빠지기도 했지만 우리들은 한 마리라도 더 잡기 위해 풀숲을 헤매고 다녔다. 특별히 물가에 개구리가 많았는데 물속으로 뛰어들기 전에 개구리를 잡아야했기에 상당한 순발력이 필요했다. 나야 판자촌에서 단련된 솜씨로 개구리들을 낚아챘으니 실적이 나쁠 리가 없었다. 가장 많은 포상금도 역시 내 몫이었다. ^0^
그렇게 잡아온 개구리를 그냥 가물치에게 던져주어서는 안된다. 개구리를 잡아온 증거가 소멸되기 때문이다. 큰아버지가 늦게 돌아오시는 날에는 개구리를 담은 비닐봉지를 고이 보관해 두었다가 큰아버지가 오셨을 때 보여준 후 현상금을 받았다. 그 후에야 가물치들이 포식을 하게 되었는데 우리들에게 야속하더라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원래 사업이란 냉혹한 면이 있는 법 아닌가?
커다란 웅덩이 가에 서서 개구리 한 마리를 던지면 곧 이어 퍽 소리가 나면서 물이 퍼져나가고 개구리는 사라져 버린다. 가물치가 개구리를 물고 물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처음에는 그 광경이 충격적이었다. 조금 소름이 돋기도 했다. 가물치란 녀석이 꽤 무서운 놈이란 생각도 했다. 그러나 곧 익숙해졌고 개구리를 삼키는 가물치를 보는 것이 하나의 즐거움으로 자리잡았다.
그런 식으로 가물치의 밥이 된 개구리들이 몇 마리였던가? 정말 많은 개구리들이 내 용돈으로 변하기 위해 희생되었다. 잠시 개구리를 생각하며 묵념.. 뒷다리가 석쇠에 구워지기 위해 사망했던 개구리들과 더불어 가물치의 밥이 된 개구리까지 수많은 개구리들의 원망이 들리는 것만 같다. 개골 개골 개골 개골. 뭐 하나도 두렵지는 않지만.
이제 개구리 잡으러 뛰어다니는 일은 졸업을 했다. 용돈을 그때보다 열배 이상으로 준다 해도 이제는 옛날 같은 순발력이 없기에 개구리 잡으러 갈 생각이 없다. 개구리 잡다가 내가 먼저 갈 것만 같으니까. 세월이 많이 지난 지금도 한 여름 논이나 개울가의 개구리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지나가면 옛 추억들이 아스라이 떠오른다. 오 오 내 사랑 개구리야. 그대 내 사랑 개구리야^0^
'안희환판자촌생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잃어봐야 소중한 것을 안다/ 안희환 (0) | 2006.12.06 |
---|---|
가물치 사냥을 시작하다/ 안희환 (0) | 2006.09.15 |
땅벌, 정말 무서운 놈들이다/ 안희환 (0) | 2006.09.08 |
으깨어진 내 왼팔의 뼈와 살 / 안희환 (0) | 2006.05.16 |
아 끔찍하고 무서운 그 날이여 / 안희환 (0) | 2006.05.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