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환판자촌생활

땅벌, 정말 무서운 놈들이다/ 안희환

안희환2 2006. 9. 8. 16:05

어릴 적 겪은 판자촌 생활(71)/ 땅벌, 정말 무서운 놈들이다/ 안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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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는 왕탱이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거대한 왕탱이 못지않게 무서운 존재가 땅벌이라는 사실도 겪게 되었다. 이 일은 순전히 나 때문에 발생한 일인데 문제는 나와 동참했던 동생들과 그 외의 존재가 피해를 입은 반면에 나는 아무 피해도 입지 않았다는 고마운 사연이 있었다는 점이다.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나온다.^0^.


큰아버지댁은 산 밑에 자리잡고 있었으며 그 주변에는 집들이 없었다. 10분 가량 걸어가야 이웃집이 나타났으니 말이다. 집 주변에는 공터가 꽤 있었는데 그곳은 우리들이 노는 공간이었다. 길옆으로는 산비탈이 비스듬하게 내려다보고 있었고 공터에 인접한 산비탈 쪽에서 무언가가 왔다갔다하는 것이 내 눈에 띄었다.


바로 땅벌들이었다. 꿀을 모으는 것도 아닐 텐데 땅벌들은 부지런하게 왔다갔다했는데 그 광경은 보는 순간 나는 곧 사명감에 불타올랐다. 적을 물리쳐야 한다는...즉시 동생들(사촌 동생들 포함)을 소집했고 바가지나 양동이등에 물을 가져오게 한 다음 땅벌이 들락거리는 구멍에 물을 붓기 시작했다. 그 물살에 땅벌들은 나오지도 못한 채 침묵을 지켰다.


물을 다 부은 후 나무판자로 구멍 입구를 막은 후 땅벌들이 다 익사하기를 기다렸다. (아~ 잔인한 소년들이여). 이젠 다 죽었으려니 생각하고 나무판자를 떼는 순간 놀라운 일이 발생했다. 다 죽은 줄 알았던 땅벌들이 부활한 것이다. 쏟아져 나오는 땅벌들의 무서움이여. 부었던 물은 땅 밑으로 스며들었기에 땅벌들은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고 이에 땅벌들은 적군을 물리치기 위해 구멍 밖으로 뛰쳐나오는 것이었다.


우리들은 동시에 튀었다. 나는 길 바로 옆의 도랑을 뛰어들어 엎드렸다. 물이 고여 있는 곳이기에 옷을 버렸지만 지금 적군이 공격하는데 옷 젖는 게 문제인가? 그렇게 숨죽이며 숨어 있는데 도망가는 동생들 입에서 아얏 하는 소리들이 뛰쳐나왔다. 땅벌에 쏘인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지난 후 나는 멀쩡한 모습을 한 채 도랑 밖으로 나왔고 동생들이 땅벌에 쏘여 아파하는 모습을 보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큰 문제가 발생했음을 알게 되었다. 우리가 물을 부은 땅벌의 아지트 옆에는 조그만 공터가 있고 그 공터에 큰아버지께서 염소 두 마리를 키우고 계셨는데 적군을 쫓아 돌진하던 머리 나쁜 땅벌들이 염소들도 우리와 같은 편인 줄 알고 무차별적인 공격을 했던 것이다. 그 두 마리 중 한 마리는 새끼를 낳아야할 시점이었는데 땅벌들에게 여러 방을 쏘인 채 스러져버린 것이다.


우리들은 발을 동동 구르며 사태 해결을 위해 작전회의를 했지만 뾰족한 수가 나오지 않았다. 염소가 얼마나 비싼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어도 큰아버지께서 그 염소들에 대해 얼마나 신경을 쓰시는지는 알 수 있었기에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운명의 시간을 기다려야만 했다. 벌에 쏘인 동생들도 아픈 것보다는 혼날 것에 대해 더 신경을 쓰는 눈치였다.


드디어 사건의 전말을 다 아신 큰아버지. 우리는 눈물이 찔끔 나도록 혼이 났고 혼이 나는 동안에는 땅벌과의 전투에 대해 깨끗하게 잊어버렸다. 폭풍과도 같은 시간이 지나간 후 나는 일상적은 삶으로 돌아갔고 벌에 쏘인 동생들은 그제야 아파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런 동생들을 보면서 신속하게 도랑 속으로 뛰어 들어간 나의 선경지명을 느끼며 살그머니 미소를 지었던 기억이 있다.


지금까지도 땅벌에 쏘여 스러졌던 그 염소가 어떻게 되었는지를 모르겠다. 내 생각으로는 다시 회복이 되어 새끼를 났던 것 같은데 그게 분명하지를 않다. 혹시라도 운명을 달리했다면 이제라도 고인에게 명복을 빈다. (아~ 염소이니 고인은 아니겠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