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번에는 학교 가는 일에 발생한 큰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는데 이번에는 또 다른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려고 한다. 학교로 가는 40분가량의 논길은 넓은 길이 아니다. 아마 시골에서 살아본 사람이라면 논길이 얼마나 좁은지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가는 그런 길인 것이다.
따라서 우리 판자촌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줄 서서 다니는 것을 철저하게 실천하는 모범 어린이들이 될 수밖에 없었다. 두 줄로 가다가는 한 명이 논두렁에 발을 빠뜨려야하니 어차피 두 줄이나 세 줄로는 갈 수도 없지만 말이다. 따라서 손을 잡고 학교를 가는 일은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 외곽으로 멀리 돌아가면 손잡고 다니는 것이 가능했지만 그건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이고.
그런데 그렇게 논길로 다니는 학교 길에는 변수가 발생하기도 했다. 나란히 줄서서 가거나 천천히 가기 싫은 아이들이 달리고 싶을 때 발생하는 일인데 앞사람을 지나쳐가야 하니 아슬아슬하게 비껴가곤 하다가 여차하면 논두렁에 빠지고 마는 것이다. 그러면 발과 종아리와 엉덩이는 누런 황토색 진흙으로 찐득거리는 상황이 된다.
집에 돌아오는 길이라면 얼른 집으로 돌아가서 씻으면 되는데 학교로 가다가 그런 일이 발생하면 그야말로 골치 아파진다. 집에 가서 옷을 갈아입고 나오면 지각을 해서 혼이 날 것이고 그 상태로 가면 역시 선생님의 꾸중을 들을 뿐 아니라 하루 종일 찌뿌둥한 상태로 지내야만 하기 때문이다.
여름철인 경우 학교 수돗가에 가서 물로 진흙을 씻어낸 후 햇볕에 말리면 금방 마르긴 한다. 양말은 대충 빨은 후 창가에 올려두면 금방 다시 신을 수 있다. 문제는 진흙덩어리를 다 털어내도 누런 진흙색깔만은 빠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학교 수업이 끝나고 집에 돌아가기까지엔 계속 그 상태로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가울 무렵엔 일이 좀 더 복잡해진다. 날이 선선하기 때문에 물로 씻어낸 후 젖은 옷을 입고 있다 보면 온 몸에 추위가 덤벼든다. 쉬는 시간에 장난치느라 뛰어다닐 때는 몸에 열이 나서 상관이 없는데 수업 시간에 가만히 앉아있으면 온 몸이 으슬으슬 떨리는 것이다. 그 때문에 나는 어릴 때부터 수업시간보다 쉬는 시간을 더 좋아했던 것 같다. ^0^.
그렇게 혼이 난 후에도 난 결코 조심하지 않았다. 자랑스럽게도 그런 일은 드물지만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것이다. 사람이 초지일관의 자세가 있어야지. 또 아이들이라고 하는 존재 자체가 얌전하기만 하면 그게 병든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을 가진(사실 그때 그런 것을 생각해보지도 않았지만 잠재의식 속에서) 나는 그렇게 논두렁과 찐한 교제를 나누곤 했던 것이다.
내 아내는 아이들이 흙바닥에 앉는 것을 보면 질색을 한다. 먼지가 묻는다마 뭐라나. 그러면 나는 아이들 편을 든다. 아이들은 흙과 더불어 놀아서 정서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건강한 것이라고 하면서. 결코 나를 보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그것은 확실한 부작용으로 이어지는 첩경이기 때문이다. ^0^
젖은 바지를 입고 추위에 떨면서 수업시간을 인내하던 나의 옛모습을 생각하니 빙긋 웃음이 나온다. 꽤 귀여운 개구쟁이의 모습이 아닌가? 귀엽다는 말에 거부반응이 생기는 분들이 있다면 주소를 보내주시기 바란다. 잘생기고 귀여운 귀공자(?)의 사진을 우편으로 보내드리도록 하겠다. 설마 진짜로 주소를 쓰는 사람은 없겠지? ㅎㅎㅎ
(사실 좀더 정확히 표현하면 논두렁 옆으로 빠진다고 해야겠지만 우리가 그냥 쓰던 말 그대로 논두렁에 빠진다고 표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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