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환판자촌생활

학교 가다가 큰일을 경험하다/ 안희환

안희환2 2006. 5. 5. 08:55

어릴 적 겪은 판자촌 생활(40) 학교 가다가 큰일을 경험하다/ 안희환 

   

 

어린 시절 논길 사이로 학교를 향해 40분가량 걸어가는 동안 그 사이에서는 다양한 일들이 벌어지곤 했다. 그 중에 기억나는 것들을 몇 토막 이야기하고 싶다. 까마득한 옛 일인데도 선명하게 기억나는 것을 보면 그런 일들이 내 인생에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것이거나 아니면 내 머리가 기가 막히게 좋은 것이거나 둘 중 하나일 것 같다. ^0^


우선 떠오르는 한 가지는 조금 창피스러운 것인데 인간의 원초적인 욕구에 대한 것이다. 학교를 가려고 열심히 걸음을 옮기는데 집에서 급하지 않다는 이유로 처리하지 못한 큰 일이 갑자기 자신을 부각시키려고 나서는 것이다. 그것을 알아주지 않으면 더 이상 견딜 수 없도록 나를 몰아가기에 나는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논 길 사이에 화장실을 만들어 줄만큼 의식 있는 어른들이 없었다는 점이다. 지금 같으면 간이 화장실이라도 하나 마련해 놓으련만 그때만 해도 그런 것은 구경하기도 어려운지라 자연 속에서 자연스럽게 해결을 해야 하는데 그게 만만치 않은 것이다. 일단은 함께 가던 아이들을 떨쳐놓아야 하는데 들키지 않게 뒤로 빠지는 일은 꽤 번거로웠다.


겨우 뒤로 빠진 후에도 문제는 남아 있었다. 아이들이 지나다니는 논길에서 볼일을 볼 수는 없는 노릇이니 아이들이 보지 않는 장소를 찾아야 하는데 그런 장소가 널려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다행인 것은 작은 도랑이 있는 곳 위에 커다란 콘크리트 관을 묻어둔 채 그 위를 어설픈 다리로 쓰는 곳이 있었는데 그 안에 들어가 볼 일을 보면 안성맞춤이었다.


사실 그곳은 나처럼 시련을 겪은 수많은 동지들의 애환이 흔적으로 남아 있는 곳이기도 했다. 세월 속에 습기를 잃어버린 채 굳어져 있는 숱한 덩어리들이 사라지기 아쉬운 나머지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토록 처절하게 잔류 욕구를 드러내는 존재를 차마 짓밟을 수 없는 나는 조심스레 그것들을 피해 자리를 잡고 사색에 빠져 들어갔다.


시간도 공간도 멎은 채 오직 한 가지 일에만 집중하는 나는 이미 그 자체로 몰아의 경지에 들어간 것이고 시원해지는 느낌에 비로소 자유함을 얻었다. 세월이 지난 후 메슬로우의 5단계 욕구에 대해서 배우게 되었는데 왜 생리적인 욕구가 가장 첫 번째에 자리 잡고 있는지 내가 이미 경험으로 깨닫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제 급한 문제는 해소되었다. 학교로 갈 일만 남았다. 그런데 급한 일을 해결하고 나니 급하지는 않지만 중요한 한 가지 일이 더 남아 있었다. 지금처럼 휴대용 화장지를 가지고 다니는 것도 아니고 그 당시에 보통 사용하던 신문지를 가방에 넣고 다니는 것도 아니었으니 난감하기가 그지없었다. 그렇다고 어느 나라처럼 손으로 해결한 후 손을 물에 씻을 생각은 해보지도 못했으니.


결국 해결책은 가방 안에 있었다. 공책을 하나 꺼낸 후 한 장을 찢은 다음 주먹에 꼭 움켜쥔 후 매끈한 종이에 주름을 만들고 그것을 사용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신문처럼 부드럽지는 않지만(신문은 정말 부드러운 것이었다. 심한 경우 시멘트 포대를 찢어서 사용한 적도 있었으니) 그런대로 쓸만하였다.


일을 다 마친 후 고개를 살짝 들고 주위를 살핀 후 아이들이 지나가고 있으면 잠시 그곳에 더 있다가 아이들이 다 지나가고 나면 살그머니 나와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학교에 갔다. 그런 날은 뭔가가 일어날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했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다만 찢어진 공책의 흔적이 남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