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 겪은 판자촌 생활(39) 논길 옆 전투기를 만드는 공장 / 안희환
내가 살던 판자촌 집에서 학교로 가는 길은 그리 가까운 거리가 아니었다. 가로 질러가는 길은 논길이었는데 기아산업 공장(내 눈에 공룡처럼 거대했던 광명시 소하동 공장)을 옆으로 끼고 40분가량 걸어야 하는 거리였다. 때로는 친구들과 함께 때로는 혼자서 그 길을 걸어 학교를 다녔는데 멀게 생각하지는 않은 것 같다.
사실 그 길은 내게 축복의 길이었다. 보이는 것은 넓게 펼쳐진 논과 옆으로 거대하게 자리 잡은 기아산업 공장뿐이었지만 수많은 상상을 하면서 그 길을 오고 갔기 때문이다. 하늘을 날아가는 내 모습을 그리기도 하고, 내 마음에 드는 여학생(채지선인가 최지선인가 하는 여학생)과 사이좋게 지내는 광경을 연출하기도 하고, 로버트 태권브이에 올라타고 나쁜 로버트들과 싸우는 장면을 생각하기도 하면서 말이다.
참으로 유치하기 그지없는 상상일지 모르지만 원래 아이들은 유치한 게 정상이다. 아이들이 유치하지 않으면 그건 징그러운 애늙은이일 뿐이니까. 그래서 나는 정상적인 어린이답게 살기 위한 몸부림으로 그토록 유치한 상상을 계속 이어갔는데 그 속에서 나는 세상의 해보고 싶은 역할을 거의 다 해볼 수 있었고 그 역할들은 내게 행복감을 안겨다 주곤 하였다.
때로 나와 내 친구들은 일탈행위를 시도하였다. 특별히 학교를 파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런 일을 시도했는데 어차피 학원갈 일도 없는 우리들에게 시간은 넉넉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기아산업 공장 안을 몰래 들여다보는 일이었다. 물론 그 일에는 난관이 있었다. 일단 담벼락이 있는데다가 일정 거리에 초소가 있고 그 안에서 사람이 보초를 서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단한 의지를 가지고 있는 우리들은 그 초소의 감시를 피해가며(나중에 알았지만 초소에 사람이 없을 때가 더 많았다. 우리들이 공연히 겁먹은 것이었다) 담벼락 밑에까지 도달하였고 한 사람의 등을 디딤돌 삼아 담벼락을 넘어갔다. 그 안에는 고속도로처럼 넓은 도로도 있었고 거대한 건물들이 보였으며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면서 일을 보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 몸을 한없이 낮춘 채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는데 사실 그 이상을 볼 수는 없었음에도 그 안에 들어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커다란 흥분을 느끼곤 했었다. 다음에 또 들어가 보아도 그 이상은 나아가지 못했지만 들어갈 때마다 긴장한 채 가슴을 떨었던 기억이 있다.
우리들은 종종 엉뚱한 대화도 나누었다. 그 공장에서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것이었다. 우리들에게 있어 기아산업 공장은 시시하게 자동차만 만드는 곳이 아니었다. 그곳은 우리들의 관심여하에 따라 만드는 것이 달라졌는데 어떤 때는 탱크를 만드는 곳이 되었고 어떤 때는 전투기를 만드는 곳이 되었다. 그 후로 압도적인 지지를 얻으면서 장갑차가 등장하였는데 시간 따라 탱크에게 다시 그 자리를 물려주어야 했다.
얼마 전에 그 기아산업 공장이 다른 곳으로 넘어갔다는 말도 얼핏 들은 것 같은데 아직 확인을 해보지 않아서 모르겠다. 아무튼 그 공장은 탱크나 전투기나 장갑차를 만든 적이 없음이 밝혀졌다. ^0^. 글쎄 모르는 일이지. 땅 속 깊은 곳에 지하 공장이 있어서 탱크를 만들어내는지도. 아니면 마징가제트를 조립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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