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 겪은 판자촌 생활(38) 나는 구슬치기의 귀재였다 / 안희환
어릴 때 내가 참 좋아하던 것 중 하나는 구슬치기였다. 구슬은 그 자체로 예뻤을 뿐만 아니라 깡통 같은 곳에 모으기도 수월했고 또 다양한 방식으로 놀 수 있는 도구였기 때문이다. 구슬 안에 들어있는 다양한 디자인과 색상은 예술가적 안목(?)을 가진 소년에게 매혹적인 대상이었으며 나로 구슬 안을 한참 들여다보곤 하게 만들었다.
구슬을 가지고 도는 대표적인 방법은 세 가지였다. 첫째는 삼각형이라고 하는 것인데 가운데 삼각형을 그리고 그 양쪽으로 떨어져서 긴 줄을 긋는다. 삼각형 안에는 각자가 한 개 혹은 정해진 몇 개의 구슬을 놓고 그곳에서 줄을 그은 쪽으로 자신의 구슬을 던진다. 선에서 가장 가까운 아이 순서로 줄에 서서 삼각형에 있는 구슬들을 향해 손에 든 구슬을 던지는데 구슬을 맞춰서 삼각형 밖으로 나가면 그렇게 나간 구슬은 다 자기 것이 된다.
내 경우 거의 실패하는 적이 없을 만큼 구슬을 잘 던졌다. 덕분에 내 깡통에는 늘 구슬이 가득차 있었고 가게에서 파는 것보다 두 배 이상 싸게 판 덕에 용돈도 벌 수 있었다. ^0^. 문제는 점점 아이들이 구슬치기에서 나를 끼워주지 않으려 했다는 것인데 그런 것을 보면서 적당히 잃어주는 것도 투자의 한 방법이라는 것을 어릴 때부터 배우게 되었다.
둘째는 삼치기라고 하는 것인데 손바닥에 구슬들을 담고 주먹을 쥐면 상대가 숫자 중 두 개를 불러서 그것을 맞추는 것이다. 하나 둘 셋, 하나 둘 셋 이런 식으로 세다가 셋으로 끝나면 삼, 둘로 끝나면 니, 하나로 끝나면 이찌였는데 첫 번째 부른 숫자가 맞으면 따는 것이고, 두 번째 숫자가 맞으면 비기는 것이며, 숫자가 맞지 않으면 잃는 것이다.
이게 어떻게 보면 운으로 맞추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가 않다. 상당한 재치와 눈썰미가 필요한 것이 삼치기이다. 즉 실력에 따라서 많은 구슬이 오고가는 것이다. 나는 삼치기에 있어서도 귀재였다. 특별히 삼치기는 삼각형만큼 즐겁지는 않아도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었는데 한 번에 많은 수의 구슬을 딸 수도 있다는 점이다.
셋째는 벽치기인데 집 담벼락에서 구슬을 굴린 후 가장 멀리 나간 사람이 다른 아이의 구슬을 때려서 날려 보내는 놀이이다. 못 맞추면 소용이 없는 것이고 제대로 맞추면 내 구슬과 상대 아이의 구슬이 떨어진 거리만큼 유리해지는데 보통 다섯 발자국마다 구슬 한 개씩이 걸렸던 것으로 기억난다. 따라서 멀리 떨어뜨리기 위해 온 힘을 다하곤 했었다.
나는 벽치기를 하면서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되었는데 그것은 내 구슬이 상대의 구슬을 정확히 맞추었을 때보다 살짝 빗맞추었을 때 더 많은 점수를 딸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상대 아이의 구슬은 살짝 움직이고 내 구슬은 저 멀리 날아가 버리기 때문이다. 내가 원했던 목표를 정확히 맞추지 못했다고 실망할 필요가 없으며 그것이 오히려 더 큰 유익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는 것을 어릴 때부터 깨달은 나는 참 영특한 아이였던 것 같다. ^0^.
구슬치기는 지금도 사라지지 않은 모양이다. 아들 녀석이 구슬을 가지고 노는 것을 볼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삼각형을 하는 아이들은 볼 수가 없다. 벽치기를 하는 아이들도 본 적이 없는 것 같고. 그렇다고 여기저기 앉아서 삼치기를 하는 아이들도 없다. 그러면 요즘 아이들은 구슬을 가지고 뭘 하면서 노는 것일까? 동네 아이들에게 구슬치기를 가르쳐볼까?
그만두는 게 낫겠다. 아이들 놀이에 끼어드는 주책 맞은 어른 취급받을 것이 뻔하니까. 요즘 애들 의사표현도 뚜렷한데 뭔 소리 들을까 신경도 쓰이고. 그 재미있는 구슬치기의 다양성을 모르다니 참으로 안타깝다.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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