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환판자촌생활

화살에 맞아 눈을 다친 소녀/ 안희환

안희환2 2006. 4. 20. 07:59
화살에 맞아 눈을 다친 소녀/ 안희환
어릴 적 겪은 판자촌 생활(24)
 
 


 

어린 시절 판자촌에서의 우리들에게 재미있고 흥미진진한 놀이들은 때로 커다란 사건으로 귀결되는 때가 있었다. 자연 속에서 자연과 더불어 거칠게 놀 수밖에 없었던 삶의 필연적인 결과라고 말하기엔 가혹한 그런 일들도 발생하는 것이다. 교육을 제대로 받을 기회도 없었고 좋은 놀이문화의 혜택을 단 한 번도 받은 적이 없다는 하소연도 무색하게 만드는 그런 일 말이다.


활을 가지고 멀리 떨어져 서로에게 화살을 쏘아대던 우리들에게 화살은 사실 그렇게 무서운 무기가 아니었다. 거리가 떨어진 상태로 화살을 쏘는데다가 늘 민첩하게 놀곤 했던 아이들에게 있어 그렇게 빠르지만은 않은 속도로 다가오는 화살은 능히 피할 수 있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사실 화살에 맞아 다치는 아이들의 경우는 전무하다시피 했다. 사건이 생기기까지는.


우리 동네에는 채상원(성만 같고 이름은 익명)이라는 내 또래의 친구가 한 명 있었는데 상당한 개구쟁이였다. 내가 장담하건데 우리 동네의 최고 말썽장이는 내가 아니고 바로 그 녀석이다. 믿거나 말거나. 그 녀석에게는 형이 하나 있었는데 나보다 두 위였고 나와 채상원 사이에 충돌이 생기면 그 형이 꼭 끼어들었기에 나는 항상 억울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동생들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한명의 이야기를 더 해야 한다. 옥지현이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 아이인데 내 막내 여동생의 친구이다. 나보다 6살 아래고 예쁘게 생긴 아이이다. 성격은 그다지 활발한 편이 아니었고 모범생이거나 우등생은 아니었지만 참하고 착한 아이였다. 나는 그 당시 아직 이성에 눈을 뜨지도 못했고 나와 나이 차이가 많이 나기도 하기에(나도 어렸으니) 별 다른 관심은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상원이가 쏜 화살이 허공을 날다가 지현이의 눈에 맞아버렸다. 재빠르게 큰 병원에 가서 조치를 취할 만큼 의식이 깨어있는 어른들이 없는 판자촌에서 지현이의 눈을 제대로 수술하지 못한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붕대를 푼 지현이의 눈은 검은자위보다 흰 자위가 많았으며 예쁜 지현이의 얼굴은 전보다 못하게 보이기 시작하였다.


어린 우리들은 그때 그 사건을 의미 깊게 생각하지 못했었다. 눈이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특별히 여자에게 있어 얼굴을 예쁘게 보이도록 하는 눈동자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헤아릴 지혜가 없었던 것이다. 그 후로도 활을 가지고 놀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 당시 우리들, 특별히 어른들의 안전 불감증이 얼마나 심각했는지 이제야 몸서리가 쳐진다.


세월이 지난 후 다신 보지 못할 것 같던 지현이를 보게 되었었다. 지현이는 그때 20대 중반이 되었는데 참 예쁘게 자라 멋진 아가씨가 되어 있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여전히 눈 한쪽에 검은자위보다는 흰자위가 많다는 것이었다. 내 애인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참 아깝고 속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형 수술이라도 하지 그러냐?”하는 소리가 목구멍에 걸려 결국은 일상적인 이야기만 나누다가 헤어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