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겪은 판자촌 생활(16) 시궁창에 버림 받은 신문 뭉치 / 안희환
인터넷
신문을 보기 시작하면서 종이 신문을 덜 보게 되었는데 그 덕분에 요즘은 신문이 어떻게 배달되는지 잘 모르겠다. 또 인터넷 신문으로 인해 종이
신문을 타격을 받지는 않을까 하는 실없는 걱정을 해주기도 한다. 공휴일에도 종이 신문이 나오는지에 대해서도 궁금한 마음이 있고
말이다.
공휴일 이야기가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공휴일에 일하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별로라는 수식어를 붙인 이유는 좋아하는 사람도 간혹은 보았기 때문이다. 일을 애인 삼아 살아가는 그런 사람 말이다. 아무튼 어린 시절 신문 돌리는 소년에게도 공휴일은 참 좋은 날이었으며 하루를 쉴 수 있다고 하는 것에 샘솟는 기쁨이 있었다.
그런데 말이다. 분명히 공휴일(일요일 말고)인데도 불구하고 신문이 나오는 때가 있었고 그런 날에 신문을 돌린다고 하는 것은 정말이지 귀찮은 일이었다. 뭐 다 노는데 나만 일한다는 상대적 박탈감 같은 것은 아니었다. 그냥 달력에 빨간 표시 되어 있는데 그날 신문을 돌린다는 것이 한없는 짜증을 유발했을 뿐이다.
한번은 내 나름대로 꾀를 냈다. 가만 보니 공휴일이라고 해서 신문이 다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구독자들은 어떤 공휴일에 신문이 나오고 어떤 날에 나오지 않는지 모르는 상황이다. 신문을 돌리는 우리들로서도 알 수가 없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다만 그 전날인가에 미리 연락을 받아서 아는 것일 뿐이니 말이다.
그래서 나는 중대 결정을 했다. ‘오늘은 신문을 돌리지 않고 내 마음껏 놀아보리라“하고. 그러기 위해서 해결해야할 것이 있었다. 신문 뭉치를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지도록 하는 일이었다. 신문 뭉치를 들고 신문사로 돌아갈 수도 없는 것이고 그렇다고 그것을 다 집으로 가져갈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그런데 쉽사리 해결책이 떠오르지를 않았다.
그때 나는 별별 생각을 다 했었다. 신문 뭉치에 날개가 돋아서 저 먼 하늘로 날아가 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 깡패 형들이 나타나서 신문 뭉치를 몽땅 빼앗아 가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 갑자기 불이 나서 신문 뭉치가 순식간에 타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 기타 등등. 그러나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 법. 가만히 상상만 하는 내게 하늘은 침묵하였다.
나는 드디어 스스로 행동하기 시작했다. 일단 신문 뭉치를 들고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그러다 발견한 곳은 하수도였다. 물이 제법 차 있었고 잘 흘러가기도 했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고 사람이 없음을 확인한 후 과감하게 하수구 속에 신문뭉치를 던졌다. 그런데 아뿔사 신문 뭉치는 아래로 흘러가지를 않고 내가 던진 자리에 남아 있는 것이었다.
가슴이 덜컹한 나는 얼른 하수구 밑으로 내려가서 신문뭉치를 저 아래쪽의 눈에 띄지 않은 곳으로 밀어 넣었다. 그때 내 심장은 소속 100km로 뛴 것 같다. 그 후로 몇 주일간 그 신문뭉치가 발각될까봐 조마조마하게 살았다. 밤에 잠도 제대로 오질 않았다.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차라리 공휴일에도 신문을 돌리는 길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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