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환판자촌생활

양말 한 켤레의 행복 / 안희환

안희환2 2006. 3. 15. 22:15

어릴적 겪은 판자촌 생활(14) 양말 한 켤레의 행복 / 안희환 



가정 형편이 어려웠던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신문을 돌리기 시작하였다. 나중에는 자전거를 타고 돌려서 많이 좋아졌지만 처음에는 걸어다니며 신물을 돌려야 했는데 그게 보통 힘든 게 아니었다. 처음에 거뜬히 들었던 신문의 무게가 갈수록 무거워지는 것이다. 이상하게 신문은 줄어드는데 무게는 늘어가는 마법에 걸린 것이다.


양쪽으로 옮겨가며 신문을 들지만 그것도 별 효과가 없다. 나중엔 어느 쪽으로 들든지 힘들기가 매일반이었다. 특별히 비라도 오는 날이면 그야말로 온 몸이 엉망이 되었다. 신발엔 물이 들어가고, 옷에는 흙탕물이 튀고, 다만 신문을 적시지 않으려는 필사적인 투쟁을 할 뿐이었다. 젖은 신문을 갖다주면 화난 아저씨나 아줌마의 잔소리를 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참 기쁘던 때가 있다. 명절 같은 때 신문이 오기를 기다렸다가 양말이라도 하나 주면서 힘을 내라고 하는 아줌마 천사들을 만날 때이다. 그런 날이며 갑자기 신문의 무게가 확 줄어든다. 신문을 돌리는 시간도 짧아진다. 기분이 들떠서 더 빠른 속도로 신문을 돌렸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런 날은 무리를 했기에 몸이 더 피곤했지만 마음은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사실 나에게 선물이라고 하는 것은 그리 익숙한 것이 아니었다. 내가 처음으로 선물을 받아본 기억은 초등학교 4학년 때이다. 아버지는 사우디 아라비아에 노동자로 일하러 가셨었는데 고생 끝에 어느 정도 돈을 벌어 오셨고(금방 까먹으셨지만) 건전지로 가는 비행기 하나와 자동차 하나를 사오신 것이다(애들은 넷인데 ^0^). 그 후로는 선물 받은 기억이 또 없고...


그런 내게 양말 한 켤레는 겨우 양말 한 켤레가 아니라 정말로 소중한 양말 한 켤레였던 것이다. 그렇게 들어온 몇 켤레의 양말을 품에 안고 행복에 겨운 꿈을 꾸며 자던 나였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나보다 훨씬 순수하고 깨끗했던 것 같다. 지금은 양복을 선물 받아도 어린 시절 양말을 받던 것 보다 기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면서 다 면역되어도 감사하는 마음은 면역되지 말았어야 했는데 하는 씁쓸함이 느껴진다. 어디서 잃어버려든지 그때의 순수함을 다시 찾을 수 있다면 내가 가진 것들 중 많은 것을 대가로 지불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가난해도 행복을 꿈꾸며, 초라해도 감사할 줄 알며, 고달파도 힘있게 걸을 수 있었던 그 날이 오늘따라 많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