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 겪은 판자촌 생활(13) 시장 바닥에 앉은 초등학생 / 안희환
초등학교 때 별 것을 다 해보았다. 그중 기억나는 것으로는 밭에서 배추를 뽑는 일이었다. 일손이 한참 모자란 어른들은 가끔 어린 아이들에게도 일을 거들라고 하였고 그 대가를 알고 있는 몇몇 아이들은 얼씨구나 하면서 달려들었다. 실은 그렇게 시켜주기를 바라면서 일하는 밭 주변을 얼쩡거린 것이다.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고생을 하다보면 해는 밭 너머 기아산업 자동차 공장 뒤쪽으로 사라져가고 배추뽑기를 지휘하던 아저씨는 그 커다란 손으로 우리들에게 돈을 주었다. 200원이던가 아님 300원이던가? 그때 형편상 과자를 사먹기가 어려웠고 덕분에 과자 구경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였는데 자야라는 과자 한 봉지가 20원이었으니 200원 혹은 300원은 내게 큰 돈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확실히 노동력 착취였다. 과자 하나를 500원 따져도 하루 종일 일해서 5000원 번다면 그건 너무한 것 아닌가?).
또 하나 기억나는 것은 시장에서 장사하는 것이었다. 30분 가량 뚝방을 걸어가면 조그만 재래식 시장이 있었는데 아줌마 혹은 할머니들 눈치 보면서 길게 늘어선 장사 행렬의 끄트머리에 신문지를 깐다. 시금치나 배추 등 밭에서 얻은 채소를 정성껏 신문지 위에 올려놓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애처롭게 쳐다본다. 최대한 불쌍한 모습으로... 연기력이 많이 딸렸다.
그때 시금치 조금이나 배추를 사주는 사람들이 천사처럼 느껴졌다. 그 누가 그들에게 뭐라 해도 내 눈에 그들은 마음씨 좋은 어른들이었다. 정확하게 얼마를 벌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그렇게 해서 번 돈으로 자장면 재료를 산 후 집에 돌아가서 동생들과 함께 자장면을 끓여먹었다. 라면도 맘대로 못 먹는 우리에게 자장면 맛이란 넷이 먹다 한명이 유괴되도 모를 정도로 좋았다.
나는 종종 길거리에서 채소를 파는 할머니들을 보면 아내보고 그 채소나 과일을 사자고 한다. 사실 그다지 호응이 좋지는 않다. 그렇게 산 채소나 과일은 상태가 안 좋을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아내 눈치 보느라 강요하지는 못하지만 그렇게 길가에 나란히 앉은 분들을 보면 마음 한 구석이 징하고 울린다. 특히 겨울철에는 더더욱.
오해는 마시라. 내 아내는 참 착한 여자이며 동정심이 많아서 어려운 사람들을 보면 잘 도와주는 사람이니까. 얼마 전에는 아내가 둘째 아들을 덮은 쇼울을 벗겨 추위에 떠는 한 노숙자에게 덮어주었다. 알다시피 아이 것을 준다는 게, 특별히 지금 아이를 덮고 있는 것을 준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 않은가?
행여라도 아내가 이 글을 읽으면 뒷부분이 있어야 내 명이 붙어있을 것 같아서 달은 사족이 절대로 아니다! 독자 여러분은 지혜롭게 판단해서 읽어주시기 바란다. ^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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