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 겪은 판자촌 생활(12) 안양천을 건너 전진 앞으로 / 안희환
우리가
살던 지역은 1년이 가도 신선한 뉴스가 없는 곳이었기에 아직 호기심이 왕성했던 우리 어린 친구들은 늘 새로운 걸 찾아내려도 안달이었다. 그런
우리들의 눈에 놀라운 광경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안양천 건너, 철길 건너, 작은 산이 깎이기 시작한 것이다. 무시무시한 기계들의 소리가 안양천
건너, 고수부지 지나, 뚝길 넘어 즐비하게 늘어선 판자촌에도 들려온 것이다.
사연이즉 아파트 공사였다. 작은 산을 깎아낸 후 그 위에다 아파트(한양 아파트)를 짓는 것인데 시간 따라 드러나는 아파트의 위용은 널빤지로 대충지어 만든 집에 사는 우리들에게 거대한 성처럼 보였다. 그 성에는 아리따운 공주가 살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난관을 헤치고 공주를 구해내면 저 큰 성에서 공주와 행복하게 살 것이라는 공상은 나만 했을까? ^0^
아파트가 거의 다 지어질 무렵 우리들은 아파트 정복이라는 위대한 계획을 세웠다. 네명인지 다섯명인지 기억이 가물거리지만 우리들은 온갖 장애물을 뛰어넘어 아파트의 엘리베이터라고 하는 것을 타보고 오기로 작정을 한 것이다. 우리는 머리를 맞대고 치밀한 계획을 짜다가 치밀한 계획이 안 나오길래 무대뽀의 계획으로 변경하였다.
바지를 걷어올리고 가장 얕은 곳을 찾아 힘겹게 안양천을 건넜다. 선두는 발을 잘못 디뎌 옷이 젖은 고귀한 희생을 치러야했다. 그 다음은 철길이었다. 촌놈답게 기차를 무서워한 우리들은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죽을 힘을 다해 철길을 달려서 반대편으로 갔다. 그 후엔 긴장되는 가슴을 진정시켜가며 언덕을 기어올랐고 마지막 난관인 울타리도 극복하였다. 장하다.
그런데 난관은 또 있었다. 성을 지키는 용(경비원)이 우리를 적발하고는 사정없이 불을 쏘아댔다(고함 소리). 우리는 도망을 쳐서 경비원이 안 보이는 곳에 숨어 있었다. 그게 몇 시간이었을까? 두근거리는 심장을 눌러가며 살금살금 아파트 안에 들어가서 엘리베이터를 타는 순간 우리는 그대로 영웅이었다. 돌아가서 이 모험담을 만방에 알리리라 다짐하였고...
지금에야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도 에스컬레이터를 타는 것도 다 싱거운 일상의 일이지만 생전 처음 엘리베이터를 타던 그 순간의 감격은 어느 누구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세월 지나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보던 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두근거림을 주었으니까. 이제 어딜 가도 그런 스릴과 감격은 없다. 서서히 나이가 들어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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